美 빅테크 독점 막아라… ‘AI 주권’ 전쟁 시작됐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4. 10. 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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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 AI] [上] AI 모델 다툼
그래픽=백형선·Midjourney

지난달 1일 프랑스 파리 시내 한적한 뒷골목, 4m가 넘는 돌담을 끼고 있는 작은 문을 열자 앞마당이 널찍한 프랑스식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뜰 곳곳에서 사람들이 캠핑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동네 사랑방’ 같은 이곳은 최근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공지능(AI) 연구소 ‘큐타이’다. 직원은 12명에 불과하지만, 모두 빅테크 AI 연구소에서 일하다 온 박사급 AI 인재다. 작년 11월 설립된 큐타이는 프랑스 대표 억만장자로 꼽히는 CMA CGM 그룹(물류 기업)의 로돌프 사드 회장과 자비에르 니엘 CEO, 구글의 에릭 슈밋 전 CEO가 1억유로씩 총 3억유로(약 4400억원)를 후원해 탄생했다. 지난 7월 70가지 이상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감정을 담아 다양한 프랑스어 톤과 악센트로 말하는 음성 AI ‘모시(Moshi)’를 공개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설립 반년여 만에 챗GPT를 위협하는 AI 음성 비서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미국 빅테크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초거대 AI’를 직접 만들겠다’며 뛰어드는 기업과 연구소가 최근 세계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오픈AI·구글·메타 같은 미국 기업들이 수십조 원을 투자해 만든 AI와 직접적인 시장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목적이 아니다. ‘미국 빅테크가 AI 인프라를 독점하도록 둘 수 없다’며 AI 주권(소버린·sovereign)에 방점을 둔 프로젝트들이다.

프랑스·영국·독일 등 유럽 주요국과 중국·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우선 정부 차원에서 수조 원을 지원해 자국의 소버린 AI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최근 정부 재원으로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민간 투자 확대를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에릭 슈밋 전 구글 CEO는 최근 “AI는 자본·기술, 강력한 정부 지원이 결합된 강대국 게임”이라며 “문제는 AI 기술이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이 되리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번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AI 시대의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경고다. 소버린 AI를 중심으로 한 후발 국가들의 본격 생존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프랑스의 소버린 AI

프랑스는 미국 이외에 소버린 AI 구축 성공 모델을 보여주는 대표 국가로 꼽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2년 말 챗GPT 등장 이후 프랑스 기업들과 국영기업들의 적극적인 AI 기업 투자를 주문했다. 그 결과 미스트랄을 비롯해 풀사이드, H(홀리스틱)와 같은 굵직한 프랑스 AI 스타트업들이 탄생했다. 미스트랄AI는 작년 4월 설립과 동시에 수천억 원을 투자받았다. 이들이 만든 초거대 AI 미스트랄은 오픈AI의 챗GPT, 제미나이(구글), 라마(메타) 등 쟁쟁한 빅테크 초거대 AI 모델과 성능에서 어깨를 견주며 세계 톱5 AI로 꼽힌다. 남프랑스에서 지중해로 부는 바람이라는 말(미스트랄)처럼, AI 업계에 프랑스 바람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기술 산업이 발달한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소버린 AI 개발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핀란드 스타트업 사일로 AI는 유럽연합(EU)의 모든 공식 언어를 포괄하는 거대 언어 모델(LLM)을 개발한다. 특히 모국어인 핀란드어를 비롯해 덴마크·아이슬란드·노르웨이· 스웨덴어에 특화된 AI 개발이 목표다. 독일 AI 스타트업 알레프알파도 작년 말 650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받았다. 독일 총리실의 강력한 지원 아래 보슈·SAP와 같은 독일 대표 기업과 기관들이 나섰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알레프알파는 챗GPT 대항마를 개발할 계획이다.

그래픽=백형선

◇한국 4년간 65조원 투자

이런 노력에도 초거대 AI 개발과 성능 경쟁에서 가장 앞선 국가는 미국이다. AI 평가 기관의 평가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프랑스의 미스트랄 정도를 제외하고 미국 빅테크의 초거대 AI가 성능 상위 10모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AI 민간 투자 부문에서도 1위 미국(672억달러)이 2위 중국(78억달러)의 약 9배 수준을 AI 에 쏟아붓고 있다. 이 분야에서 한국은 연간 14억달러를 AI에 투자해 상대적으로 뒤처진 형국이다.

정부는 AI 도약을 위해 지난달 26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고, 4년간 총 65조원 규모로 민간 AI 투자를 유도해 AI 3대 강국으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민관 합작 투자를 바탕으로 최대 2조원 규모의 ‘국가 AI 컴퓨팅 센터’를 구축해 AI 반도체(GPU)를 현재의 15배 수준으로 보유하고, 아태 지역 대표 AI 안전 연구소를 설립해 글로벌 AI 리더십을 확보하는 등 구체적인 행동 계획도 발표했다. 김진형 KAIST 명예교수는 “소버린 AI는 기업에 자금·인력적으로 상당한 부담이고, 마냥 정부 주도로만 할 수 없는 기술”이라며 “국가적 투자와 기업의 의지, 국민적 관심이 한데 모여야 하기에 중장기 안목의 세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버린(Sovereign·주권) AI

개별 국가와 지역 차원에서 개발하는 인공지능(AI)으로, 자국 언어와 문화, 사회, 가치관 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AI를 말한다. 챗GPT처럼 영어, 서구권 문화 중심의 AI가 아닌 각 나라의 상황에 맞는 AI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개발되고 있다. 아시아(한국, 일본), 유럽(프랑스, 핀란드, 이탈리아 등), 중동의 국가들이 최근 앞다퉈 자국 AI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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