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51] 변화의 시작
20세기 중반, 가장 혁신적인 당대의 미술을 열정적으로 후원했던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은 1951년, 고국 미국이 아니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미술관을 지어 자신의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18세기 대저택을 구입해 만든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은 베네치아 중심 수로인 카날 그랑데에 면해 있다.
미술관의 작은 정원에 어둠이 내리면 이탈리아 미술가 마우리치오 난누치(Maurizio Nannucci·1939~ )의 네온사인이 환히 빛난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으면 장소의 변화에 따라 시간이 변하고, 그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면 급기야 미래가 변한다는 뜻이 된다. 피렌체에서 태어나 미술 학교를 졸업한 난누치는 베를린의 실험 극단에서 무대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예술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전위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예술을 개척했다. 그가 택한 소재는 언어. 단순한 말의 힘을 깨닫게 된 건 그가 연극 무대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일 게다. 시어(詩語) 같은 난누치의 작품이 강렬한 네온사인을 타고 미술관에 흐르면 주위의 공기마저 색다르게 느껴진다.
사람이 살아가며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공간, 시간, 인간의 삼간(三間) 중 그나마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공간이라고 했다. 난누치가 ‘삼간’을 알았을 리 없지만, 다른 어느 곳이 아닌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는 ‘장소의 변화’가 가져올 시간과 인간, 그리고 미래의 변화를 상상하는 게 무척 자연스럽다. 피카소와 칸딘스키가 즐비한 전시실 창밖으로 도로가 아닌 큰 물길이 출렁이고, 차량 대신 크고 작은 배들이 바삐 오가는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딴 세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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