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세계속으로] ‘중동’은 지리가 아닌 문화적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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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한 전쟁이 꼭 1년이 되었다.
팩스 브리태니커의 뒤를 이어 20세기 세계의 패권으로 부상한 미국이 중동의 개념을 이어받아 널리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국, 중국, 일본은 체제도 다르고 성향도 제각각이지만 '중동'이라는 영미 제국주의의 문화적 유산을 열심히 추종한다.
두 나라 외교 부처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중동'은 유일한 문화적 개념이기에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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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표현·개념들, 과거 인식 반영 알아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동’(中東·Middle East)은 유럽인들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반영하는 명칭이다. 이 표현이 등장한 것도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 팽창 시대였고, 표현을 만든 이도 당시 최강 식민주의 세력이었던 영국이다. 영국의 관점에서 가까운 근동(近東), 다음에 중동, 그리고 멀리에는 극동(極東)이 있었다. 원래 영국인들의 ‘중동’에는 인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은 오토만제국이 지배하는 유럽의 발칸반도도 근동이라고 불렀다. 근·중·극동은 모두 지리의 탈을 썼으나 사실은 ‘야만’을 지칭하는 문화적 개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토만제국이 사라지면서 근동이 없어졌다. 동아시아에서도 근대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스스로 극동이라고 부르는 초현실적 부조리는 사라졌다. 근동과 극동은 역사의 뒤안길로 버려졌는데 중동만 남아 놀라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팩스 브리태니커의 뒤를 이어 20세기 세계의 패권으로 부상한 미국이 중동의 개념을 이어받아 널리 사용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본다면 미국에서 아라비아반도는 중동보다는 극동에 가깝지만 말이다. 미국은 문화적으로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치자.
심지어 동아시아에서도 중동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유행이다. 한국, 중국, 일본은 체제도 다르고 성향도 제각각이지만 ‘중동’이라는 영미 제국주의의 문화적 유산을 열심히 추종한다. 세 나라 언론은 무차별적으로 ‘중동’이라는 명칭을 즐겨 사용하는 듯하다. 한국의 외교부나 일본 외무성의 조직도를 보면 ‘중동’이라는 지역이 버젓이 등장한다. 두 나라 외교 부처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중동’은 유일한 문화적 개념이기에 흥미롭다. 나머지는 모두 유럽·아프리카 등 대륙이나 태평양과 같은 대양의 순수 지리적 명칭을 따른다.
일부에서는 중동 대신 서아시아나 서남아라는 지리적 명칭을 종종 사용한다. 20세기 중·후반에 독립한 신생국들의 반(反)제국주의 정서를 반영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중국의 외교부는 조직도에서 서아시아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서구 제국주의에 반대해 대립각을 세우는 공산주의 국가의 특징일 터다.
아이러니의 극치는 서아시아 현지에서조차 중동이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서아시아 사람들은 아랍 세계나 이슬람권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하지만 아랍은 문화적 개념이라 터키나 이란을 제외하게 되고, 이슬람은 종교 개념으로 범위가 너무 넓어 북아프리카와 동남아의 인도네시아까지 포괄하기에 부적절하다.
이미 일상 속에 굳어버린 명칭을 굳이 바꿔야 할까. 조지 오웰의 소설에 등장하는 빅 브러더처럼 특정 언어를 강제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표현과 개념들이 얼마나 과거의 왜곡된 지배 관계와 인식을 반영하는지를 깨닫는 일은 중요하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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