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관계의 연속… 아름다움은 균형과 조화 속에 있다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오랜 세월 바람에 마모된 돌멩이
천연 보석처럼 찬란한 표면 지녀
관계의 힘 통해 비범해지는 이치
유리구슬이 주변 풍경 투영하고
물방울 소리가 내면을 물들이듯
관객은 작품과 공간 속에서 호흡
◆단단함은 깨뜨리지만, 유연함은 침투한다
투명한 유리구 중 몇몇은 안이 비어 있는 껍질이고 또 다른 몇몇은 내면이 가득 찬 덩어리다. 전자는 뚫어 둔 구멍에 숨을 불어넣어 부풀리고, 후자는 단단한 유리구슬 위에 고온고압의 물을 분사하여 없던 구멍을 낸다. 꽉 찬 구슬 내면에 상처 없이 곧은 직선의 길을 내기 위해서는 물의 힘이 필요하다. 거듭 내려앉는 빗방울이 커다란 바위 위에 물길을 내듯, 단단함은 견고함을 깨뜨리는 반면 유연함은 그 내부에 조용하게 침투한다.
◆‘빛나는 돌’… 켜켜이 쌓인 관계의 찬란함
조각가 오유경(45)이 이달 2일부터 20일까지 용산구 소재 전시공간 APO프로젝트(정고은 디렉터)에서 자신의 9번째 개인전 ‘빛나는 돌(Shining Stone)’을 연다. 올해 제작한 신작 6점을 조명하는 자리다.
전시장 초입에 놓인 ‘바람의 탑(Pagoda of Baram, 2024)’과 ‘베지터블 메모리(Vegetable Memory, 2024)’는 서로 대구를 이루는 조각이다. 원형과 사다리꼴 등 동일한 기하학적 형태로 제련된 목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여 두 작품의 지지대를 세웠다. ‘바람의 탑’에서 나무 지지체는 정지한 형태의 좌대이지만, ‘베지터블 메모리’의 그것은 거꾸로 뒤집힌 형태로서 관객이 모서리를 잡고 돌리면 바닥에 놓인 원판이 둥글게 돌아가는 회전형 구조물로 재해석됐다. 재료가 ‘무엇’인지보다 ‘어떻게’ 조합하는가에 초점을 둔 조형이다.
출품작 중 ‘맺고 있는 연결 상태(Being Connected, 2024)’의 한쪽 귀퉁이에 놓아둔 작은 돌이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여름 작가가 부탄에서 주워 온 돌멩이는 천연 보석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표면을 지니고 있다. 가늠할 수 없는 세월 동안 축적된 무엇이 발에 채는 돌로 하여금 이토록 신비한 빛을 품도록 했을까. 모든 평범한 것들은 관계의 힘을 통하여 비범해진다. 오랜 시간 제 몸에 반짝임을 모아 온 광물처럼, 오유경의 조각들은 자신의 가느다란 뼈대 위에 찬란한 유리구를 켜켜이 쌓아 올린다. 각기 다른 투명도와 색채의 구슬들이 오랜 세월 바람에 곱게 마모된 돌멩이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연상시킨다.
오유경은 2002년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를 졸업한 후 2006년 프랑스 파리8대학 대학원에서 조형예술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ENSBA)에서 현대미술의 거장 주세페 페노네에게 조형예술학을 사사하여 국가학위(DNSAP)를 졸업했다. OCI미술관(2011), 스페이스K(2015), 챕터투(2017), 아트소향(2020), 플레이스막2(2021), 얼터사이트계선(2021)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둘 이상의 존재가 맺는 관계의 연속 가운데, 아름다움은 주로 독립된 각자가 아닌 서로의 균형과 조화 속에서 생성된다. 유리구슬의 표면은 주위의 풍경을 투영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빛깔을 바꾸어 내고, 물방울 소리는 시시각각 다른 이유로서 듣는 이의 내면을 물들인다. 오유경이 최근의 작가노트에서 밝히기를 언제나 “작품과 공간은 서로 에너지를 교환”한다. “땅이 달구어져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현상처럼 서로가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시공 속에서 비로소 “관객은 호흡”한다.
다시 한 번 전시장 위로 물방울 소리가 떨어진다. 부드럽고도 또렷하게, 오늘의 공기를 두드려 자신이 지나갈 물길을 내려는 듯이. 그 맑은 울림은 나의 오늘과도 오롯이 관계 맺는다. 복잡다단한 하루의 끝자락에 반짝이는 유리구슬 표면에 맺힌 잔상이 끼어들고, 보이지 않는 물기 또한 스며든다. 부드러운 은유로서, 유연한 예술의 언어로서 우리의 날들을 연결하는 숨길을 내어 두려는 듯이.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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