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육아휴직’ 말고 ‘육아파견’
“휴직하면서 뭐 했어요?”
육아휴직을 했다고 하니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들을 때마다 난감했다. 육아휴직 때 ‘뭔가’ 했어야 하나? 난감했던 이유는 정말 ‘육아’만 했기 때문이다. “육아만… 했는데요.” 목소리가 모기 날갯짓만 하다.
마이크 타이슨이 그랬다. “누구나 매 맞기 전까진 계획이 있다”고. 물론 계획이 있었다. 휴직 기간에 남들처럼 주식 공부도 하고, 때로는 운동을 하며 방만해진 몸을 돌아보겠다고. 아이가 선사해준 시간인 만큼 시간 날 때마다 놀아주고, 맛있고 영양 많은 집밥도 잔뜩 해주겠다고.
계획이 무너지기까지 얼마 안 걸렸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학교에 가면 오전 9시다. 등교 전 약 40분간 ‘집중 육아’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미 심신이 피곤하다.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틈틈이 청소, 빨래 등 가사노동을 한다. 오후 2시부터는 ‘대기 모드’다. 하교하는 아이를 데려오고, 학원에 데려다준다. 또 데려오고, 또 데려다준다. 기다림과 ‘셔틀’이 반복된다. 중간중간 가사노동은 계속된다. 시간이 계속 분절되니 진득이 ‘뭔가’를 하기가 어렵다.
5시가 되면 집에 오는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가 시작된다. 저녁 준비를 해 먹이고 나면 8~9시가 넘는다. 하루가 그렇게 빨리 갈 수도 있다는 걸, 일을 쉬는데도 몸이 고달플 수 있다는 걸 휴직하고 알았다. 그나마 손이 덜 가는 8세, 12세 아이들을 돌보는데도 이렇다. 육아는 ‘노동’임이 틀림없다.
경상남도는 최근 ‘경력단절여성’이란 용어를 ‘경력보유여성’으로 변경했다. 기존 경남도의 ‘경력단절 예방 조례’는 ‘경력유지 조례’로 바뀌었다. 서울 성동구는 가사·육아 등을 경력으로 인정하고, 해당 경력을 보유한 여성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공무원의 경우 최대 3년까지 가능한 육아휴직 기간을 모두 경력으로 인정하는 새 인사제도가 내년부터 시작된다. 가사와 육아를 노동의 경력으로 인정하는 움직임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같은 변화가 지자체의 조례 안에서만, 소수의 공무원에게만 머물도록 둬선 안 된다. 여성에게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이참에 ‘육아휴직’이란 말부터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다. 지금은 말 그대로 ‘휴직(일을 쉬는 것)’의 개념이다보니 제도가 여전히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에 갇혀 있다. 육아휴직제도의 세부 규정 대부분이 휴직을 쓰는 노동자보다 고용주의 편의를 우선하도록 마련된 배경이다. 법에선 노동자가 육아휴직으로 인해 여러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승진 연한을 따지거나 급여 산정 과정에서 육아휴직 기간을 경력에서 제외하는 회사가 태반이다. 여전히 육아휴직을 쓰려면 회사 눈치가 보이고, 훗날이 걱정되는 이유다.
육아휴직은 고용주가 베푸는 혜택이 아니다. 휴직을 쓸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는 한, 허가가 필요한 사안도 아니다. 엄연히 법으로 보장하는 제도이자 노동자 권리다. 하물며 ‘찔끔’ 논란이 있는 육아휴직급여 재원도 고용주 곳간이 아닌 고용보험이다. 육아휴직 개념을 일을 쉬는 게 아니라 노동(육아노동)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인구가 줄다 못해 소멸위기로 접어든 시대에 육아노동이 갖는 가치는 월등하다. 그래서 제안한다. ‘육아휴직’보다 ‘육아파견’이란 말은 어떤가.
송진식 전국사회부 차장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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