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한글 지킨 선비처럼 올차게 자란 나무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가람 이병기(李秉岐·1891~1968) 선생의 생가가 있다. 선생이 태어나고, 고단했던 삶을 마친 곳이다.
선생은 어린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는 내내 이 집을 떠나서 살았다. 오로지 한글을 지키고, 우리 전통 문학장르인 시조를 되살리기 위해서 분주했던 탓에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선생에게 고향집은 오래도록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 집에 돌아온 것은 1957년 창졸간에 맞이한 뇌출혈로 활동이 어려워진 뒤였다.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찾아온 고향집에서 그는 사랑채에 머물렀다. 사랑채 앞, ‘승운정(勝雲亭)’이라고 이름 붙인 모정(茅亭)은 선생이 하늘을 바라보며 해바라기하던 자리다.
승운정 앞에는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독특한 모양으로 살아남은 탱자나무다. 2001년에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된 이 탱자나무는 선생의 조부가 집을 지은 기념으로 심은 200살 쯤 된 큰 나무다.
탱자나무는 흔히 줄기와 가지에 돋는 날카롭고 억센 가시 때문에 산울타리로 심어 키우는 나무다. 그러나 이 집에서는 탱자나무를 조경수로 심어 키웠고, 나무는 사람의 뜻을 따라 순하면서도 올차게 잘 자랐다. 오래된 탱자나무 중 이병기 생가의 탱자나무만큼 아름다운 수형을 갖춘 나무는 흔치 않다.
‘이병기 생가 탱자나무’는 여느 탱자나무가 뿌리 부분에서부터 여러 개의 줄기로 나뉘어 자라는 것과 달리 하나의 줄기가 곧게 뻗어오른 것부터 독특하다. 1.6m쯤 높이에서 나뭇가지가 6개로 나뉘면서 넓게 퍼져 둥근 형상의 수려한 모습을 갖췄다. 나무높이는 5m를 넘고, 줄기둘레는 60㎝, 나뭇가지 펼침폭은 5m나 된다.
날카로운 가시를 품었지만, 전체적으로 온유한 생김새로 자라난 특별한 탱자나무에서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이병기 선생의 흔적을 짚어보아야 할 한글날 즈음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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