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다양성의 힘: 내부 총질을 허하라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주4일 혁명’ 저자 2024. 10. 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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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주4일 혁명’ 저자

한 농부가 옥수수 씨앗을 심었다. 한 종류만 심었다. 심기도 쉬웠고, 관리도 간단했다. 그해 여름, 가뭄이 닥쳤다. 옥수수밭은 타들어 갔다. 수확은 전무했다. 옆집 농부는 달랐다. 다양한 씨앗을 심었다. 가뭄에 강한 종자, 비를 견디는 종자, 늦게 익는 종자까지. 가뭄도, 폭우도 그의 밭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자연은 단일성을 거부한다. 생명은 혼돈에서 꽃핀다. 단일 혈통은 약하다. 잡종 강세는 생명 본질이다. 다채로운 식물이 어우러진 땅이라야 생명력이 넘쳐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모든 구성원이 같은 방향만 바라보는 조직? 겉보기엔 질서정연하다. 한 치 어긋남이 없다. 하지만, 무채색과 무표정의 획일성에 숨이 막힌다. 맞다, 죽은 꽃에는 향기가 없다. 파도 없는 바다는 죽은 바다다.

모두가 똑같은 목소리를 내야 조직이 단단해진다고? 커다란 오해다. 엄청난 착각이다. 혁신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교차해야 한다. 서로 다른 시선들이 부딪쳐야 한다.

AI의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모델은 이름부터 흥미롭다. ‘적대적 생성 신경망’이다. 두 개의 네트워크가 끝없는 경쟁을 벌인다. 하나는 ‘생성자’, 다른 하나는 ‘판별자’다. 생성자는 가짜 이미지를 만든다. 판별자는 진위를 가려낸다. 생성자가 만들어낸 초기 이미지는 조악하다. 판별자는 쉽게 가짜를 찾아낸다. 생성자는 점점 더 교묘해진다. 판별자를 속이기 위해 진짜 같은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판별자도 날카로워진다. 점점 더 정교한 안목으로 거짓을 찾아낸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두 네트워크는 함께 발전한다. 서로에게 적대적인 두 신경망 시스템이 끊임없이 상호 경쟁하고 학습하며, 함께 성장하는 구조다.

서로의 움직임에 맞추어 점점 더 아름답고 점점 더 정교한 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따로 없다. 서로에게 반대하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결국 그들은 함께 나아간다. 최고의 춤이, 그렇게 완성된다. 조직 내에서도 이런 춤이 필요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비판적 시선 또한 필요하다. 둘이 서로 끊임없이 충돌하며 진화할 때, 조직은 성장한다. 혁신은 서로 다른 이질적 요소들의 결합으로 시작되는 법. 반대가 없으면 혁신도 없다. ‘내부 총질’이 아니라 ‘내부 총질 말라는 윽박질’이 위험한 이유다.

나와 다른 목소리를 억누르면 다양성은 사라진다. 반대 의견을 묵살하는 조직은 독재로 치닫는다. 독재는 획일성을 강요한다. ‘다름’을 위협으로 간주한다.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의 목소리만 남은 조직에 혁신이 있을 리 없다.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오케스트라는 단조롭고 지루하다. 음악은 여러 음(音)들의 어울림이다. 각기 다른 소리들이 조화를 이룰 때, 조직도 활기를 띠며 살아난다. ‘내부 총질 말라’는 으름장은 그 생명력을 파괴한다. 다양성을 잃은 조직은 더 이상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없다.

혁신의 씨앗은 다양성이다. 이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나무로 자란다. ‘다양성의 나무’는 강하다. 거센 변화의 비바람에도 쉬이 쓰러지지 않는다. 유연하게 적응한다. 단일 사고에 매몰된 ‘획일성의 나무’는 딱딱하기 그지없다. 변화에 취약하다. 위기에 속수무책이다.

재즈는 아프리카 리듬과 유럽 화성이 어우러진 음악이다. 퓨전 요리는 미각의 새 지평을 연다. 도시의 활력은 다문화에서 나온다. 언어는 섞이면서 더욱 풍성해진다. 맞다, 고립된 창작은 없다. 모든 창작은 서로의 경계를 허물며 진화한다. 문화도, 예술도, 기술도 그러하다. 닫아서는 답이 없다. 열어야 한다.

서로 다른 경험과 아이디어가 한데 모여 혁신의 물줄기를 만들어낸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듯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위기를 기회로 빚어내는 다양성의 힘이다.


다양성은 조직의 숨결이다. 하나의 생각만 고수하는 조직은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길을 잃는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얽혀야 한다. 서로 다른 시선들이 섞여야 한다. ‘말 한마디면 되는 조직’은 그래서 위험하다. ‘여러 마디 말이 오가는 조직’이라야 한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혁명적 변화의 시기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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