쩡판즈 '초상'·이만익 '일출도' 등 4점…정부는 세금 걷고, 시민은 예술 향유

유승목 2024. 10. 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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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을 상속세 대신 납부하는 미술품 물납제 도입은 국내 미술계의 숙원 사업이었다.

개인이 소장 중인 중요 미술품의 해외 유출을 막을 뿐 아니라 국내 미술관의 컬렉션을 풍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속세 등 세금을 미술품으로 대납하는 모습은 해외에선 익숙한 광경이다.

1896년 최초로 미술품 물납제를 시행한 영국은 지난해 1050만파운드(약 183억원)에 달하는 르네상스 시대 청동상을 상속세 대신 받아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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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물납제 1호 탄생
미술품 상속인 10점 물납 신청
전문가 두달간 감정해 4점 허가
업계 "납부세액 30억 넘을 듯"
8일 현대미술관 수장고로 반입
서양화가 이만익의 ‘일출도’.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미술품을 상속세 대신 납부하는 미술품 물납제 도입은 국내 미술계의 숙원 사업이었다. 개인이 소장 중인 중요 미술품의 해외 유출을 막을 뿐 아니라 국내 미술관의 컬렉션을 풍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1월 1일 제도 도입 이후 첫 번째 사례가 나옴으로써 향후 미술품 물납제가 더 활성화될 것으로 미술계는 기대하고 있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영국, 프랑스, 일본 같은 문화강국은 일찌감치 시행한 제도”라며 “국가 재정 확보라는 개념을 넘어 문화예술 경쟁력 측면에서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쩡판즈의 ‘초상’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한 미술품 상속인은 지난 1월 서울 서초세무서에 10점의 미술품 물납을 신청했다. 이에 문체부는 4월 ‘미술품 물납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에 착수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등 내부 인력과 분야별 민간 전문가 일곱 명으로 구성된 심의위는 현장실사를 시작으로 두 달간 네 차례 회의를 거쳐 4점에 물납 적정 의견을 밝혔다. 문체부는 이를 바탕으로 관계부처 협의회를 열어 심의 결과를 최종 의결하고 관할 세무서를 통해 물납 허가를 통지했다. 이들 작품은 8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수장고에 반입된다.

4점의 작품은 아시아에서 가장 작품값이 비싼 생존 작가 중 한 명인 중국 쩡판즈가 그린 ‘초상’ 2점을 비롯해 서양화가 이만익의 ‘일출도’, 추상미술 거장 전광영의 ‘Aggregation 08-JU072BLUE’다. 보존 상태와 활용 가치, 역사·학술·예술적 가치 등을 종합 고려할 때 상속세를 갈음할 가치가 있다는 게 심의위의 설명이다.

쩡판즈 작품 2점은 해외 컬렉션이 빈약한 국립미술관의 상황을 고려해 물납을 받아들였다. 이 작품은 지난해 케이옥션 미술품 경매에 추정가 11억5000만~15억원을 달고 출품됐다. 쩡판즈는 2013년 그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홍콩 경매에서 약 250억원에 낙찰돼 당시 아시아 현대미술 최고가를 쓰는 등 중국 현대미술의 기수로 평가받는다.

1988년 서울올림픽 미술감독을 맡은 이만익의 작품은 1990년대 초기 화풍이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봤다. 전광영의 작품은 총 2점을 심의했는데, 이 중 시장 선호도가 높고 보존 상태가 양호한 작품만 적합 판정을 받았다. 나머지 물납 신청 작품 5점은 보존 상태와 감정가액 적정성 측면에서 물납 대상으로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났다. 미술 감정업계에선 4점의 미술품으로 납부한 세액이 30억원을 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상속세 등 세금을 미술품으로 대납하는 모습은 해외에선 익숙한 광경이다. 1896년 최초로 미술품 물납제를 시행한 영국은 지난해 1050만파운드(약 183억원)에 달하는 르네상스 시대 청동상을 상속세 대신 받아 눈길을 끌었다. 1968년 제도를 도입한 프랑스는 파블로 피카소 유족에게서 상속세 대신 200여 점의 작품을 받아 파리에 피카소 박물관을 세웠다. 영국 테이트모던, 프랑스 루브르 등 전 세계 유명 미술관도 컬렉션 상당수를 세금 대신 받은 작품들로 채웠다.

미술계에선 미술품 물납제가 활성화되면 문화예술 향유권이 커지고 한국 예술의 위상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물납 작품들을 소장하는 국립현대미술관만 해도 연간 300만 명이 넘게 방문하고 ‘프리즈 서울’ 같은 굵직한 미술행사가 열릴 때면 해외 ‘큰손’ 컬렉터와 미술계 주요 인사가 들러 전시를 둘러본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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