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이중섭 함께한 '신사실파' 백영수, 재조명 열기 후끈
김환기-유영국-이중섭-장욱진 등 한국 화단의 '슈퍼스타'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1950년대 국내 화단의 혁신을 보여준 '신사실파(新寫實派)'의 동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신사실파의 동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백영수 화백이다. 그는 1970년대 후반, 홀연히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둥지를 틀고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프랑스 시절 화폭을 장식한 감성과 통찰, 향년 96세의 나이로 타계한 2010년 중반까지의 궤적을 한눈에 돌아보는 전시가 있다. 바로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뮤지엄 웨이브(MUSEUM WAVE)에서 열리고 있는 백영수 작가의 특별전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백영수 특별전 전시명은 '<아망(兒望): 아이의 꿈>'이다. 기존 2024년 9월 29일까지 전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관람객들의 요청에 힘입어 10월 31일까지 연장전시를 결정했다.
■ 김환기-이중섭-장욱진-유영국-이규상 등 6인 '신사실파'...한국미술계의 거장
백영수는 1940~1950년대의 한국미술계의 거장들인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유영국, 이규상 화백 등과 함께 1947년 창립한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했다.
'신사실파'란 전통적인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현대적 감각으로 당시의 현실을 담아내고자 한 예술운동이다. 김환기가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수립, 6.25 등 격동기를 거치며 5년 동안 3회에 걸쳐 전시회를 개최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사실파는 비록 짧은 기간을 활동하고 해체되었지만 참여했던 6인의 화가들이 남긴 예술적 족적은 한국미술계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백영수가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34년간 프랑스 체류도 한몫했다. 그는 프랑스로 떠나 본격적으로 작가생활을 하던 1980년대부터 작품세계가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번 전시 또한 백영수의 1980년대 이후 작품들에 집중한다. 작가의 예술적 세계와 철학적 성찰을 심도 있게 조명한다.
한국에서 그는 6.25 전후 사회적 혼란을 배경으로, 가족이 지니고 있는 그 의미와 개인의 내면을 깊이 탐구한 작품을 발표했다. 프랑스 시절부터는 추상적-상징적인 표현을 주로 사용하여 인간 존재의 본질과 그 내면에 대한 성찰에 몰두했다.
가령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모자(母子)'는 '모자 관계'와 '집'이라는 공간은 생명과 보호의 상징임과 동시에, 내면의 고뇌, 안식의 공간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전시 제목 <아망(兒望): 아이의 꿈>은 아이의 순수한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처럼, 백영수의 작품속에서 드러나는 따뜻함과 희망,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 탐구를 상징한다.
■ 프랑스로 훌쩍 떠나 본격적으로 작가생활...'집'이라는 안식의 공간 탐구
이번 전시의 포인트는 백영수의 전성기인 1980년 프랑스 시절부터 귀국 후 타계까지의 예술적인 변화를 조명하는 것이다. 단순한 시각적 감동뿐 아니라,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철학적 사유를 담겨 있다.
그의 화가의 프로필도 녹록지 않다. 해방 이후 최초의 국전인 '조선종합미술전'의 심사위원과 '대한미술협회' 상임위원을 맡았다. 1977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요미우리 아트센터 전속계약 화가로 34년간 활동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갤러리를 비롯한 22번의 초대전 및 단체전, 살롱전 등에 100여 차례 참여했다.
백영수의 작품에는 엄마와 아들 즉 '모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집'도 중요 소재다. 프랑스에서 백영수는 자기만의 독특한 모성애의 세계를 표현해냈고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바로 잘 알려진 '모자상' 시리즈다. 이는 모성애에 대한 동경과 채워지지 않은 욕망인 '백일몽'으로 대변되는 상징이다.
그의 화폭에는 타원형의 둥근 얼굴과 정다운 녹색을 위주로 어린아이의 순진함과 단순하고 평온을 담겨 있다. 그리고 가족은 지상의 유일한 행복 거처다. 모두 각각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세상의 진리와 인간의 존재적 고뇌를 상징한다.
그는 2000년대 이후는 '여백' '창문' 시리즈의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2011년 파리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 신사실파 중 가난과 외로움 등 공감 이중섭과 매우 친해
백영수는 신사실파 중 이중섭과 특히 친했다. 경제적으로나 가정환경으로나 가난하고 외로운 처지가 비슷했다. 말수가 적어도 서로 가깝게 느꼈다. 서로 그림도 주고받았다. 그림체도 비슷해질 정도로 교감했다.
'황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가족과 함께 제주도 등지에 머물며 담뱃갑 은박지로 그림을 그리는 등 작품활동을 했다. 이듬해 생활고로 시달린 아내가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뒤 부두노동자 등으로 전전했다. 이후 조현증세(정신분열증세) 등을 보이다가 1956년 요절했다.
백영수는 일제강점기 두 살 때 일본으로 어머니를 따라 건너간 뒤 오사카미술학교를 나온 미술영재 출신이었다. 이중섭이 일본으로 떠나 요절한 이후 그는 50년대 잡지와 신문 등 출판미술의 주역으로 활약하던 시기를 뒤로 하고 훌쩍 프랑스로 떠났다.
그는 프랑스에서 모성을 바탕으로 한 가족도와 반추상 구도의 자연 그림을 그리면서 장년기와 말기에 특유의 애잔하고 서정적인 화풍을 정립하게 된다. 그의 그림은 일상 속 가족과 부드러운 선과 따뜻한 색감이 조화되는 유대감과 안정감을 강조한다.
백영수의 가족 그림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조세희의 소설집의 표지그림으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도시의 재개발로 인해 밀려나고 고통을 겪으며 삶을 사는 다섯 가족 얘기다. 영화와 TV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국내 출판계에서 문학 작품으로 처음으로 300쇄를 돌파한 작품이다.
신사실파 마지막 생존 작가였던 백영수는 자신의 미술관을 의정부에 개관 후 두 달 만인 2018년 6월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이 미술관에는 그의 작품 약 400점이 있으나 공간이 좁아 상당수는 수장고에 있다. 2016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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