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 Now] "치료 못받을라"… 韓출장 꺼리는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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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인 중에 중견 규모의 무역 업체를 하는 기업인이 있다.
일본 우익 사이트 등에서 '응급실 뺑뺑이' '환자의 절규' 등의 단어로 최근 문제가 되는 한국 의료 시스템을 지적하는 내용을 읽다 보면 이미 대한민국 의료는 붕괴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희생했으니 일본도 뭔가를 하자'는 말은 쏙 들어가고, '동맹인 미국과도 특별한 이벤트를 안 했다' '무엇을 합의해도 3년 뒤에는 딴소리할 것'이라는 냉소적인 얘기가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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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뺑뺑이' 등 지적하며
日우익사이트서 공포감 조성
오피니언 리더들 우려쏟아내
회복됐던 양국관계 긴장 위기
일본 지인 중에 중견 규모의 무역 업체를 하는 기업인이 있다. 한국 쪽 사업이 많고 한류에도 관심이 많아서 특파원 부임 초기부터 좋은 관계를 맺어 왔다.
지난주 같이 식사하는데 그는 얼마 전부터 직원들의 한국 출장을 자제시키고 있다고 했다. 될 수 있으면 전화나 이메일, 영상을 통해서 진행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소수 인원이 출장을 간다고 한다.
뜬금없는 얘기에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의료계 사태를 이유로 들었다. 그는 "한국에서 사고를 당하면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들었다"며 "한국이 도대체 왜 이런 나라가 됐냐"고 되물었다.
모든 것에 조심하고, 확인된 것을 다시 확인하는 일본인들의 습성을 볼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끄러움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일본 우익 사이트 등에서 '응급실 뺑뺑이' '환자의 절규' 등의 단어로 최근 문제가 되는 한국 의료 시스템을 지적하는 내용을 읽다 보면 이미 대한민국 의료는 붕괴 상태이기 때문이다.
1977년 시작해 12년 만에 전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를 제공한 것이 한국이다. 독일이나 일본보다 훨씬 빠른 기간에 시스템을 갖췄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부러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대한민국 의료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의 자랑거리를 붕괴 상태로 만들어버린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불통과 독선으로 똘똘 뭉친 정부일까, 이기적이란 소리를 듣는 의료계일까, 남의 일 보듯이 하는 거대 야당일까. 좋은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갈등 조정에 실패해 문제를 키운 정부가 1차 책임자가 아닐까.
일본 오피니언 리더들은 최근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대한민국 보수 정부의 미래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지지율 20%에 무너진 것처럼 한국도 정권 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경우 극적으로 좋아진 한일 관계가 다시 과거 정부 때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인지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에 대한 일본 측 반응이 최근 신통치 않아졌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희생했으니 일본도 뭔가를 하자'는 말은 쏙 들어가고, '동맹인 미국과도 특별한 이벤트를 안 했다' '무엇을 합의해도 3년 뒤에는 딴소리할 것'이라는 냉소적인 얘기가 오간다.
더욱 걱정되는 부분은 새롭게 출범한 이시바 시게루 내각이다. 이시바 총리가 가진 한일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역사 인식은 자민당 주류 목소리에 묻혀 버릴 가능성이 크다.
되레 국방력 강화를 주장해온 이시바 총리의 신념이 자민당 극우와 상승 작용을 일으켜 한일 간 긴장 관계를 증폭시킬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이럴 때 우리 정부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예민한 한일 관계에서 지지율 20%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승훈 도쿄 특파원 thoth@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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