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자국 도시 67곳 불태운 美장군에 훈장 준 日총리
최대 100만명 사망 부른
미군에 훈장 준 두가지 이유
지금 한일 관계가 좋다지만 살얼음 같다. 양국 어느 쪽이든 집권 세력이 바뀌면 곧 무너질 것만 같다. 일본의 최근 총리 선거를 봐도 그렇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의 단골 참배객인 다카이치 사나에가 1차 투표에서 승리하며 당선 직전까지 갔다. 그는 신사 참배를 "조국을 지킨 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면서 가해의 역사를 애국으로 합리화한 바 있다. 그가 당선됐다면 한일 관계는 악화됐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같은 결과가 예상된다. 민주당은 거리 곳곳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죄악을 잊지 말자고 한다. 그걸 잊으면 일본에 또 당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선명하다. 이처럼 일본의 강경 우파는 가해의 역사를 축소하려고 하고, 한국의 좌파는 그 가해를 국제범죄로 더 생생하게 부각하려고 한다.
이 같은 인식의 차이는 인간 본성상 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심리학자 바우마이스터의 실험이 그걸 보여줬다. 실험 참가자에게 가해와 피해의 경험을 서술하게 했더니 그 내용이 극명히 갈렸다. 가해자는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택할 만한 방식으로 대응했을 뿐이다. 사과했고 지난 일로 돌릴 때"라고 썼다. 반면 피해자는 "그 행동은 오랜 학대의 역사에서 최근의 사건일 뿐이다. 그 피해는 막대해 고칠 수 없다"고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서술은 각각 일본과 한국의 역사 인식과 닮았다.
그러나 기억이 다르다고 계속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양국은 기억의 차이를 딛고 화해할 수 있을까. 1964년 일본 정부가 미군 장성 커티스 르메이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한 사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일본 야당은 훈장 수여에 반대했는데 그럴 만도 했다. 커티스는 1945년에 전략폭격부대를 이끌고 일본 도시 67곳을 불태운 사람이다. 시작은 도쿄였다. 소이탄으로 중심가 40㎢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후 도쿠시마의 85%, 도야마의 99%도 불태웠다. 최대 100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런데도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지난 일"이라며 르메이에게 훈장을 줬다.
그 훈장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미국에 보내는 '값비싼 신호'다. 일본인 수십만 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이에게 훈장을 줄 정도로 미국과 협력을 원한다는 신호다. 일본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기에 값비싼 것이다. 미국은 그 훈장에서 협력을 바라는 일본의 진심을 보았을 것이다.
둘째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말한 '망각의 축복'이다. 처칠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듬해인 1946년 "유럽이 파멸로부터 구원받으려면 과거의 모든 범죄를 망각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 상처에서 생겨난 증오를 끌고 갈 여유가 없다"고 했다. 사토 총리가 르메이의 일본 폭격에 대해 "지난 일"이라고 한 것도 처칠이 말한 '망각의 행위'로 볼 수 있다.
한일 관계에는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일본은 한국에도 '값비싼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일본이 정말 화해를 원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절대 안 될 일이다. 동시에 한국에는 '망각의 축복'이 필요하다. '식민 지배'라는 사건 자체는 잊을 수 없겠으나 그 사건에 결부된 증오와 피해의식의 감정은 잊어야 한다. 계속 그 감정에 붙잡혀 있다면 과거의 감옥에 갇혀 미래를 창조적으로 설계할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일본이 가해자이기에 피해의 기록을 쉽게 잊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볼 일이 아니다. 폭격으로 사망한 수십만 명의 분노를 뒤로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욱이 그들 개개인은 역사의 가해자도 아니다. 가해자는 한때 일본을 사로잡은 군국주의의 광기다. 그 광기를 막을 수 있는 건 민주주의뿐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국가인 한일 양국의 협력이 더욱더 필요한 것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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