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나 무대 통째 옮겨와 … 새 역사 쓰죠"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감독인
제피렐리가 연출한 오페라 재현
"인생서 가장 아름다운 무대"
12~19일 KSPO돔에서 공연
지난 4일 찾은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 내부는 초대형 오페라 '투란도트'를 올리기 위한 분주함과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지게차 등 각종 중장비와 조명, 곧 무대에 올라갈 대형 세트와 수십 명의 한국인·이탈리아인 스태프로 발 디딜 틈 없는 와중에 '뚱땅뚱땅' 공사장 소리도 쉴 새 없이 울렸다. 불과 일주일 뒤면 12~19일 총 8회(월요일 제외)에 걸쳐 푸치니의 아름다운 오페라 '투란도트'가 울려 퍼질 터였다. 이곳에서 만난 연출가 스테파노 트레스피디(54)는 "작품만 갖고 오는 게 아니라 베로나 아레나를 옮겨온다는 의미가 있다"며 "오페라 공연의 새 역사를 쓴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트레스피디의 말처럼 이번 공연은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인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원형 극장에 올라가는 무대 세트와 제작진을 그대로 서울에서 구현하는 프로젝트다. 푸치니 서거 100주년, 한·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며 100여 년 전통의 베로나 축제가 사상 처음으로 내한한 것. 통상 2000석 내외인 오페라 전용 극장이 아닌 1만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에서 선보이는 만큼, 기존의 오페라 애호가에게도, 오페라를 자주 접하지 않았던 관객에게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20세기 연출계 거장 고(故) 프랑코 제피렐리의 화려하면서도 고전적인 미감이 돋보이는 대형 무대가 관전 요소로 꼽힌다. 제피렐리는 2019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제자이자 연출 보조였던 트레스피디가 재연출한다. 현재 이 작품은 베로나 축제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등에서 상연되는데, 서울에서도 원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 트레스피디는 "제피렐리는 초대형 규모 속에서도 세세한 부분을 다듬는 연출가였다"고 회고했다. "아시다시피 제피렐리는 '말괄량이 길들이기'(1967년), '로미오와 줄리엣'(1968년) 등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죠. 영화의 연출 방식을 오페라에도 접목했습니다. 관객들은 때론 멀찍이서 관조하듯, 때론 '줌인'해 들어가듯 다양한 시야를 경험할 수 있죠."
'투란도트'는 국내외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트레스피디는 제피렐리 연출작을 두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투란도트를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무대는 어둡고 위축돼 있는 백성들의 세상과 황금빛으로 치장된 위풍당당한 공주 투란도트의 세상으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곳에서 냉혹한 공주 투란도트는 자신에게 청혼하는 왕자 칼라프에게 죽음을 건 수수께끼를 내고, 칼라프를 짝사랑하는 시녀 류의 헌신을 지켜보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트레스피디는 "공연 초반엔 백성들의 세상만 보이다가 벽이 열리면서 화려한 무대가 등장하는데 그 장면이 관객들 뇌리에 가장 크게 남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트레스피디는 제피렐리에 대해선 "내 인생을 바꾼 사람"이라며 "그가 없었다면 나도 이 자리에 없었다"고 단언했다. "솔직히 지금도 그와 협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여전히 같이 작업했던 때의 영상을 보면서 옆에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말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95년 베로나 축제의 '카르멘' 무대였다. 베로나 태생인 트레스피디는 단역 연기자였고, 제피렐리는 이미 세계적 연출가였다. 트레스피디는 이때의 만남을 계기로 오페라 연출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베로나는 작은 도시거든요. 거기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베로나 극장은 너무나 친숙한 장소고, 나도 그곳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장소죠. 실제로 무대에 기여한다면 큰 자부심을 갖게 되고요. 저 역시 어렸을 때부터 몸 쓰는 것엔 일가견이 있었기에 법학도였음에도 우연히 연기를 시작했는데, 제피렐리를 만나고는 '그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고대 로마 유적이기도 한 베로나의 아레나는 지금까지 놀라운 음향을 선사하며 전 세계 관객들을 끌어모으지만, KSPO돔은 오페라 공연을 올리기엔 도전적인 장소다. 트레스피디는 "무대 기초부터 새로 지어야 하는 등 베로나와는 환경이 다르긴 하다"면서도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고 했다. 확성 장치가 불가피한 음향 환경에 대해선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해 음악감독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오렌, 한국 측과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양국의 스태프들이 함께 일하는 것을 보는 것도 감동적"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전쟁이 화두인 이때 이곳에선 대화와 협업을 통해 하나의 문화예술을 창조해내고 있다는 게 행복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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