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전력망법 손놓은 사이···송전선 10건 중 4건 지연
산업委 넉달 넘도록 논의 없고
지자체장은 표심 눈치 하세월
"특별법 통과 서둘러야" 지적
국내에서 송전선로 건설 지연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제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5월 말 임기를 시작한 22대 국회는 여야 모두 전력망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송전선로 부족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뿐이었다. 전력망 특별법을 다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금까지 해당 법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전력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없다. 정치권 특유의 말잔치에 그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국회가 미적대는 사이에 경북 영주(풍기) 분기 송전선로 건설 사업 같은 장기 지연 사례는 속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풍기와 양북 이외에 신청주·문백 송전선로 사업도 납골묘를 지나간다는 민원에 철탑 위치를 바꾸면서 사업 면적이 957㎡ 감소했다. 154kV 문경 선로와 345kV 신청주 선로는 각각 24개월과 12개월 공기가 연장됐다. 공사 기간이 늘어나는 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적시 전력 공급에는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박희석 국회 산자중기위 수석전문위원의 검토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월 확정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주요 전력망 사업 31건 중 12건이 지연되고 있다. 사유별로는 △지역 주민 민원 5건 △인허가 지연 4건 △시공 여건 2건 △전력 수요 고객 사유 1건 등이다. 인허가 지연 대다수가 지역민 눈치를 보는 기초 지방자치단체장의 판단에 따른 것임을 감안하면 상당수 사업이 지역 차원의 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초고압 송전선로를 포함한 송변전 설비가 설치되는 지역과 수혜를 보는 지역이 달라 지자체 간 이해 득실이 기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과학적인 검증이 끝났지만 전자파 발생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한몫한다. 경기 하남 동서울변전소만 해도 서울경제신문이 한전 및 한전 전력연구원과 함께 변전소 보안 울타리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0.0389~0.0407µT(마이크로테슬라)에 그쳤다. 국제 기준인 200µT의 약 0.02%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역 주민들과 일부 지자체는 ‘묻지 마 반대’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변 경관 훼손 우려를 제기하는 사례도 많다. 이에 정부는 송전설비주변법 제정 10년 만에 송전선로·송전탑·변전소 주변 지역에 대한 지원금 단가를 18.5% 인상하기로 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갈수록 첨예해지는 지역 간 이견을 중재하고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같은 첨단 산업 전력 수요 공급을 적시에 하려면 한전이 아닌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게 전력 업계 안팎의 조언이다. 실제로 전력망 특별법은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전력망 확충 범정부 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해 관계자의 의사결정 과정 참여를 의무화하고 도로·철도 등과 송전선을 함께 건설하는 방안도 담겨 있다. 산업부는 전력망 특별법이 통과되면 현재 13년 이상 걸리고 있는 345㎸ 송전선로 건설 사업 기간이 수년 이상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345㎸ 송전선로 기준 표준 공기는 9년이다. 박 수석전문위원은 “전력망과 유사한 국가 핵심 사회 기반시설인 철도나 도로는 주관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입지 선정 단계부터 적극 주도하고 있다”며 “전력망 역시 정부 차원에서의 중재·조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전력망 구축 사업은 국가전략산업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특정 지역에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도 없는 만큼 전력망 특별법이 하루속히 통과돼 갈등을 조정하고 전력망 구축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세종=유현욱 기자 abc@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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