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인권과 교권 사이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10. 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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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학교 학생들이 지난 6월14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아름 | 초등교사·동화작가

교문 앞에 서면 가슴이 졸아들었다. 한 손에는 자, 다른 손에는 가위를 들고 있는 학생부 선생님을 보면 괜히 긴장됐다. 왜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머리가 귀밑 2센티미터보다 긴 걸 발견했는지, 왜 그 시간에 문을 연 미용실이 없는지 원망스러웠다. 목을 길게 빼고 최대한 머리카락이 짧아 보이게 애쓰며 교문을 지나면서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학생으로 16년간 학교에 다니면서 교칙을 크게 어기거나 기억에 남을 만한 벌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가 공포의 공간이고, 경쟁의 공간인 것은 늘 불가사의했다. 선생님들이 아무리 단속해도 몰래 머리를 기르고 파마를 하고, 교복을 줄여 입을 아이들은 다 했다. 모의고사 성적을 모두가 보는 게시판에 붙여 놓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도 공부를 할 만한 애들은 하고, 안 할 만한 애들은 안 했다.

교사가 되어 다시 학교에 돌아왔을 때, 교칙에 체벌조항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조항에는 매의 길이와 굵기가 정해져 있었고, 교육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단서가 적혀 있었다. 매를 맞는 것도 싫었지만 때리는 주체가 되는 건 더 당황스러웠다. 사람이 사람을 때릴 수 있고, 그게 교칙에 나와 있다는 것, 그 이상함을 나만 느끼는 건가 싶어 불편했다. 공포로 얼어붙은 교실을 만드는 것과 가지각색의 아이들과 마음의 결을 맞춘 교실을 만드는 것은 분명 달랐다.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환경에서만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몇년 안 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고, 체벌은 금지됐다. 오래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그때는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을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통제의 대상으로 여겼던 구시대와의 투쟁의 결과물로 보였다.

불과 10여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학생인권조례’라는 명칭이 달리 보이는 것은 지금 교실 현장에서 진정한 배움을 가로막는 문제의 양상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학생들을 한명의 온전한 인간으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르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회에서 한 인간에게 권리를 부여할 때는 의무도 함께 부여한다. 한 사람의 권리가 다른 사람의 권리와 부딪칠 때 그것을 조정할 의무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까지 주지시키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과거 교육이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폭압적이었던 점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분명한 변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사회화 단계에 있는 학생에게 제대로 된 의무와 한계 없이 권리만을 알려주는 교육은 필연적으로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다.

여러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의 원인으로 지적되어 개선의 논의도 거치지 못하고 폐지 수순을 밟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학생의 인권은 분명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생의 권리가 확장될 때 그에 대응하는 개념들, 즉 학생의 의무, 교사의 인권과 교육권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그러한 방임이 교육의 서비스화를 표방하는 사회적 흐름과 함께 교권 추락의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권리와 의무, 학생과 교사의 권한은 학교 현장에서 서로 복잡하게 얽혀 나타나고 한쪽이 확장되면 필연적으로 다른 쪽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들 요소는 모두 학교라는 기관이 어린아이를 완전한 성인으로 성숙시키기에, 사회화라는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여전히 이들 사이의 균형을 잡고 현실적으로 개선하려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걱정스럽다.

10월16일은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일이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보는 후보와 “학생권리의무조례”를 마련하겠다는 후보가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학교 안에서 주체 간에 생겨나는 다양한 역학관계를 이해하고 학교의 순기능을 되찾는 방향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넓은 시야를 가진 후보가 당선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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