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악마 셰프’ 앨빈 렁 “음식에서 중요한 것은 선악이 아닌 오직 맛”

이정수 기자 2024. 10. 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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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2스타의 앨빈 렁 “맛의 ‘극한’ 추구해야 혁신 가능”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內 웨이루와의 프로모션 위해 방한
중국과 한국의 독창적 식문화 결합해 새로운 맛 선보인다
세계 최정상급 셰프 중 한명인 앨빈 렁(Alvin Leung). 마스터셰프 캐나다 심사위원으로도 유명한 그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 내 고급 중식당인 웨이루와의 프로모션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프로모션 기간은 10월 5일부터 13일까지. /조인원 기자

여기 자신을 ‘악마(Demon)’라 부르는 셰프가 있다. 바로 앨빈 렁(Alvin Leung). 요리에 관심이 있다면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악마라 칭하다니 다소 도발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 의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사악함과는 거리가 멀다.

‘데몬(Demon)’이라는 단어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어로 ‘장난기(playful)’를 뜻한다. 그가 말하는 악마는 신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요리라는 ‘놀이’를 통해 기발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지은 별명이다.

그 별명만큼이나 그의 첫인상도 잊기 힘들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염색한 단발머리와 보랏빛 선글라스는 단번에 그가 평범하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홍콩 출신의 그는 미슐랭 2스타인 ‘보 이노베이션(Bo Innovation)’을 필두로 두바이, 싱가포르, 캐나다 등 세계 각지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익스트림 차이니스(X-treme Chinese)’라는 요리 장르를 개척한 셰프로도 유명하다. 도발적이고 실험적인 요소가 가득한 그의 요리는 단순히 전통 중국요리를 재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분자 요리 등 다양한 새로운 기법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집중한다. 그는 ‘놀이’를 넘어 이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하는 데에 열정을 쏟고 있다.

웨이루의 홀 전경. /웨이루

다만 그는 재미만 추구하지 않는다. 과감한 시도가 빛을 발하려면 그 근본인 맛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맛이 있고 없음은 그가 혁신과 무모함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척도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 ‘놀이터’는 웨이루(Wei Lou)다. 강남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34층에 위치한 웨이루에서 그는 이번에도 새로운 놀이를 구상 중에 있다. 많은 호텔 중 이곳을 택한 이유로 그는 ‘최상의 곳에서 최고의 요리를 하고 싶다’는 점을 꼽았다. 그의 가치를 입증하고 도전하기에는 최적의 무대란 뜻이기도 하다.

지난 5일부터 8일간 진행되는 프로모션을 통해 렁은 그동안 갈고닦은 중식의 정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물론 한국 지역 특색에 맞게 살짝의 ‘터치’도 가미됐다. 가장 한국적인 재료들인 꼬막, 게장, 한우 등을 중국요리 내에서 찾아내는 것도 묘미다.

특히 푸와그라를 중국 황주에 절여 게장 알을 올린 메뉴가 그렇다. 한 입 넣자마자 가금류 간 특유의 녹진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어서 게장의 별미인 알의 고소함이 그 감칠맛을 폭발시킨다. 분명 강할 것 같았던 중국 간장과 황주 소스는 기를 펴지 못하고, 은은한 향만 남기며 뒷맛을 잡아준다. 땅과 바다의 내장이 만들어내는 이 묵직함은 첫입부터 머리를 쨍하게 만든다.

푸와그라를 중국 황주에 절여 게장 알을 올린 메뉴. 가금류의 녹진함과 게장의 고소함이 만나 색다른 맛을 낸다./ 조인원 기자

떡과 꼬막을 중국식 발효 소스로 비벼낸 메뉴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고소한 크림소스는 꾸덕꾸덕한 치즈 맛을 머금고 있다. 진득함 속 떡과 꼬막은 서로 쫄깃함을 대결하듯 그 존재감을 뽐낸다. 중국식 발효 소스가 나중에 느껴지며 새콤하게 마무리된다.

흑마늘, 김, 송이버섯을 곁들인 한우 요리도 별미다. 한우는 씹을수록 잘 익은 과즙처럼 입속에서 터지는데, 김 특유의 향이 이를 가볍게 감싼다. 이어 뒤따라오는 흑마늘 향이 자칫 과할 수 있는 육향을 눌러주며 조화를 이룬다. 절인 송이버섯은 응축된 향이 그 아래 버섯 퓨레(Purée)와 만나며 왜 가을 송이가 최고임을 알린다. 한입 삼키고 나면 육향 속에서 송이의 솔향이 입안에 자연스레 퍼진다. 조선비즈는 앨빈 렁 셰프를 지난 4일 웨이루에서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이름은 앨빈 렁, 일명 ‘데몬(Demon)’ 셰프로도 불린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해 이 길을 걷게 됐다. 많은 셰프들이 어머니의 요리를 통해 음식에 눈을 떴다곤 하는데, 나는 달랐다. 안타깝게 우리 어머니의 요리 솜씨는 그 정성과 비례하진 않더라 (웃음). 남들에게 영감을 받기보단 스스로 공부하며 맛을 터득해 나갔다. 현재 미슐랭 2스타인 ‘보 이노베이션(Bo Innovation)’과 ‘데몬 덕(Demon Duck)’ 등을 운영하고 있다.”

―데몬 셰프라는 별명은 무엇인가?

“악마를 떠올리기 쉬운데, 여기서 데몬은 다른 의미다. 그 어원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장난스러운(playful)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개인적으로 요리 안에선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야기, 콘셉트, 영감 모두 개인의 상상력을 통해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이런 별명을 지었다. 내가 중요시하는 규칙은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다.”

앨빈 렁 셰프의 크림소스를 얹은 꼬막. 꼬막 아래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떡이 놓여 있다. / 조인원 기자

―익스트림 차이니스의 장르에 대해 설명해달라.

“한계점으로 밀어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적당한 선도 필요하다. 번지점프로 예를 들자면 뛰어내리는 행위는 한계에 도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안전줄이 너무 짧으면 제대로 그 스릴을 느끼지 못하고, 반면 너무 길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아슬함을 유지해야 스릴이 극대화된다. 사람들은 다 각자만의 안전 공간(Comfort Zone)이 있다. 맛도 마찬가지다. 이 선을 넘는 순간 나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익스트림 차이니스는 그 아슬한 경계 속에 나오는 맛의 절정을 추구한다.”

―이번 웨이루에서 내보이는 음식들은 어떤 것들인가.

“웨이루는 고급 중국 음식점이다. 그렇기에 이번엔 초점을 중국 음식에 뒀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도 포함했다. 특히 간장게장의 알을 푸와그라와 같이 내오는 메뉴는 이번 프로모션을 위해 특별히 고안한 메뉴다. 떡볶이와 꼬막을 이용한 요리도 있다. 경험하지 못했던 나만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메뉴들은 오직 웨이루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자신한다. 기대해도 좋다.”

―한국 음식의 매력은 무엇인가.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식문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음식의 온도감, 질감, 맛도 고루 다룬다. 또한 고추장, 간장, 된장은 한 눈으로 보기엔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그 복합적인 맛은 숙성과 발효를 통해서만 쌓을 수 있다. 홍어와 같은 메뉴도 즐길 줄 안다는 것도 그 입맛이 심상치 않다는 증거다. 삭힌 홍어를 세 번 먹어봤지만 아직도 어렵더라. 쿰쿰한 암모니아마저 즐긴다니. 어쩌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의 입맛은 나보다 더 까다로울지 모르겠다. (웃음)”

앨빈 렁의 흑마늘을 곁들인 한우 꽃등심. 가을을 맞이해 송이 버섯과 버섯 퓨레를 함께 접시에 올렸다. / 조인원 기자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한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 중 하나다. 이곳은 그저 인터컨티넨탈이 아니다. 웅장하다는 의미(Grand)가 붙어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팀원들의 헌신과 서비스도 흠잡을 곳이 없다. 보면 알겠지만 난 최고에 대한 기준이 까다롭다. 이곳은 그 기준을 충족시켜 줬다. 최고의 서비스와 시설을 자랑하는 만큼, 이젠 내가 음식으로서 내 음식이 이곳과 어울린다는 것을 증명할 차례다. 난 도전을 좋아한다.”

―심사위원, 셰프, 일상에서의 앨빈 렁의 모습은 각각 어떠한가.

“TV 프로그램에서 엄격한 모습 때문에 나를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일상 속 나는 모두와 똑같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 다만 그 선호도가 남들과 다를 수 있을 뿐이다. 난 스쿼시를 좋아하고 미키마우스 시계를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심사위원으로서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심사는 맞고 틀림의 영역이다. 내 개인의 선호도가 평가에 영향을 줘선 안된다. 셰프로서도 마찬가지다. 셰프는 ‘내’ 입맛이 아닌 ‘손님’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야 한다.”

―음식에서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음식은 일단 맛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접시에 열정도 쏟아야 한다. 열정 자체가 성공의 척도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열정이 없이는 성공으로 가기 힘들다. 마스터셰프 캐나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심사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참가자한테 화를 내거나 다그쳤던 이유는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다.”

'악마(Demon) 셰프', '익스트림 차이니스(X-treme Chinese)'의 창시자로도 알려진 앨빈 렁 셰프가 조선비즈와 지난 4일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조인원 기자

―당신의 삶을 음식이나 레스토랑으로 비유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 내 삶을 표현한다면, 눈을 가리고 음식을 맛보는 레스토랑일 것이다. 음식이 입에 닿기 전의 긴장감과, 맛을 본 순간의 감탄. 예측할 수 없는 신선함을 선사하고 싶다. 또 내 삶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크리스마스 만찬과 비슷하고 싶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축하하는 순간들이다. 하지만 인생이 늘 즐겁기만 하지는 않다. 마치 크리스마스 때 칠면조를 완벽하게 굽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그 칠면조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순간, 그 과정이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돌아보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지금에 오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살아오면서 많은 실패를 겪었다. 미슐랭 3스타에서 2스타로 내려왔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좌절을 통해 배운 것은 다시 일어나는 법이었다. ‘결코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지킬 수 없을뿐더러 욕심이다. 삶은 그렇게 흐르지 않는다. 다만 또 좌절을 겪었을 때, 더 빠르게, 또 효과적으로 회복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난 앞으로도 또 실패할 것이다. 다만 이전만큼 두렵지 않다. 더 빠르게 이겨낼 것을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한국을 다시 방문하게 돼 기쁘다. 한국 식문화가 발전하는 것도 많이 봐왔다. 몇몇 레스토랑은 이제 예약하기도 어렵더라. 좋은 현상이다. 한국은 언제나 관심이 가는 나라다. 자주 좋은 기회로 찾고 싶다.”

☞앨빈 렁(Alvin Leung) 셰프는

▲보 이노베이션 (Bo Innovation) 現 오너 셰프 ▲더 데몬 셀레브리티 (The Demon Celebrity) 現 공동 오너 셰프 ▲미쉐린 2스타 셰프 ▲익스트림 차이니스 (X-treme Chinese) 창시자 ▲마스터셰프 캐나다 (MasterChef Canada)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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