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에 덜미 잡힌 13년 전 성폭행범 경찰관의 끔찍한 두 얼굴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객원기자 2024. 10. 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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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비단 근무할 때 술 취한 여성 뒤따라가 범행
증거인멸 했지만 13년 후 노래방 무단침입으로 DNA 걸려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계획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대부분은 '완전범죄'를 꿈꾼다. 해당 범죄사실이 수사기관에 발각되지 않거나 만약 발각돼도 증거가 불충분해 형사처벌을 피하려는 꼼수다. 실제 적지 않은 사건이 범인을 잡지 못해 영구 미제로 남았다. 국내 3대 미제사건으로 알려진 '개구리소년 살해암매장 사건' '이형호군 유괴살인 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화성 사건만 범인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러나 범죄자들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피할 수 없고, 눈부신 과학수사의 발달로 미세한 증거물로도 범인을 가려내기 때문이다. 영원히 미제로 남을 것 같던 사건이 속속 해결되고 있는데, 이것도 과학수사 덕분이다. 완전범죄를 노리던 범죄자들이 진보한 과학수사 앞에서 덜미가 잡히고 있는 것이다. 최근 검거된 성폭행범 경찰관도 완전범죄를 노리다 결국 꼬리가 잡혔다. 

ⓒ시사저널 임준선·freepik

수사지식 활용해 자신의 범행 철저히 은폐

2011년 7월 어느 날 서울 강남구의 한 주택에서 여성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술에 취해 길을 걷던 여성을 발견하고 뒤를 밟아 집까지 쫓아갔다. 비틀거리며 집에 도착한 여성이 현관문을 여는 순간, 범인이 나타나 뒤에서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술에 취한 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여성은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쉽게 제압당한다. 범인은 범행 후 냉정하고 차분하게 움직였다. 

먼저 알몸 상태인 피해자에게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닦도록 강요했다. 보통 성폭행 범죄에서는 피해자의 몸에 범인의 정액이나 체액 등이 묻어나는데 이를 우려해 피해자의 신체에 남겨졌을 DNA를 없애려고 한 행동이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장에 있던 증거물들은 싹쓸이해 가방에 집어넣었고, 바로 신고하지 못하도록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얼마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우선 피해자의 집 주변과 도로에 설치된 CCTV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서울에는 며칠째 장마가 계속됐고, 도주로 주변에 있던 CCTV가 작동하지 않아 범인의 인상착의와 동선을 파악하는 데 실패한다. 경찰은 집 안을 정밀 감식했지만 범인의 체모와 지문 등을 확보하지 못했다. 마지막 희망은 피해자의 몸에서 범인의 DNA를 채취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피해자의 몸을 깨끗이 닦은 상태여서 검출될지는 미지수였다.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경찰은 과학수사기법을 동원해 DNA 채취를 시도했다. 천만다행히도 피해자의 몸에서 미세한 DNA가 나오면서 수사에 활기를 띤다. 경찰은 'DNA 신원확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일치하는 사람이 있는지 찾았다. 범인이 여기에 등록돼 있다면 체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DNA가 일치하는 우범자는 없었다. 범인이 초범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해 결국 미제로 남는다. 그렇게 13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오랫동안 자신에게 수사망이 좁혀오지 않자 범인은 완전범죄가 됐다고 방심했던 것일까. 

지난 5월13일 오전 6시쯤 서울 은평구의 한 노래방에 정체불명의 남성이 무단 침입한다. 이때는 노래방 영업이 끝난 시간이었다. 약 3시간 동안 안에 머물던 그는 오전 9시쯤 나왔다. 이 모습은 노래방 건물 인근에 설치된 CCTV에 그대로 포착됐다. 당일 새벽 4시 반에 퇴근했다가 밤에 출근한 노래방 주인은 출입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는 의아했다. 퇴근할 때는 분명 잠근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자기 눈을 의심했다.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니 뒤진 흔적이나 도난당한 물건은 없었다. 카운터에 있던 돈통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영업이 끝난 뒤 청소를 했는데도 조명이 어지럽혀져 있고, 비품이 여기저기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노래방 주인은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라고 판단하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과학수사대는 현장 감식을 통해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DNA를 채취하고,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보냈다. 얼마 후 국과수는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통보한다. 이 DNA가 13년 전 강남 미제 성폭행 사건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미제사건을 해결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CCTV 등을 토대로 추적했고, 사건 발생 3개월 만에 붙잡는다. 그의 정체는 바로 현직 경찰관이었다. 서울경찰청 기동대 소속인 A경위(45)였다. 2006년 순경으로 임용된 A씨는 성폭행 당시에는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청와대 경비단 소속이었다. 서울경찰청 산하이면서 대통령 경호처의 지휘를 받는 조직으로 경찰 내에서는 요직으로 꼽힌다. 

요원들은 철저한 신원조회를 통해 선발되는데, A씨의 경우 범행 당시 이미 청와대 경비단 소속이어서 걸러지지 않았다. A씨는 범행 후 수사지식을 활용해 증거를 인멸하고, 지금까지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두 얼굴로 살아왔던 것이다. 경찰은 A씨의 범행사실이 드러나자 그를 직위 해제했다. 

A씨를 넘겨받은 검찰은 그가 다른 범죄에도 관련됐는지 수사에 들어갔다.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분석하고 경찰청이 운영하는 지문검색시스템(AFIS)을 통해 미제사건 지문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등 추가 수사를 벌였으나 다른 범행은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은 A씨를 성폭력처벌법 위반(주거침입강간)과 건조물침입 혐의로 구속기소하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할 현직 경찰관 신분을 망각하고 반복적으로 중대 강력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죄에 상응하는 중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자칫 완전범죄가 될 뻔했던 성폭행 사건이 과학수사 기법을 통해 범인을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경찰관의 탈을 쓴 A씨의 범죄행각도 막을 내리게 됐다.

영업이 끝난 노래방에 몰래 들어가고 있는 경찰관 A씨 ⓒSBS 뉴스 화면 캡처

DNA 대조로 속속 해결되는 미제사건들

이처럼 DNA 분석기법은 성폭행 사건을 해결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 범인 이춘재도 발전된 DNA 분석을 통해 범인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반경 3km 이내에서 10여 차례의 성폭행을 저지르고 피해자들을 엽기적으로 살해했다. 피해자는 13세 소녀부터 71세 노인까지 다양했다. 

이 사건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화성 지역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대대적인 경찰력을 투입하고도 용의자를 좁히지 못했다. 심지어 사건 내용이 영화로까지 제작됐다. 그러다 사건 발생 33년 만인 2019년 9월 범행 현장 증거물에서 나온 DNA와 이춘재의 DNA를 대조한 결과 동일 인물로 나왔다. 경찰은 이춘재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그를 불러 범행을 추궁했다.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하던 이씨는 속속 드러나는 증거 앞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인정했다. 당시 이춘재는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장기 수감돼 있었다. 이씨는 14건의 살인과 30여 건의 강간과 강간미수 사건에 대해 자백했다. 

지난해 12월에는 70대 남성 B씨가 DNA 대조 분석을 통해 17년 전 미제 성폭행 사건의 범인으로 드러났다. 그는 2006년 6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에 침입해 혼자 있던 여성을 성폭행했다.

당시 경찰은 인근에 CCTV가 없는 데다 현장에서 확보한 체모 DNA와 일치하는 정보가 없어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성폭력 장기 미제사건을 전수조사하며 당시 발견된 DNA와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아내면서 범인의 윤곽이 드러났다. B씨는 2011년 서울 구로구에서 강도 범죄를 저질렀다가 구속되면서 DNA 정보를 저장했는데, 이게 성폭행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했던 것이다. 

이에 앞선 2월에도 19년 전 20대 정신장애 여성을 유인해 성폭행한 60대가 DNA 분석을 통해 덜미가 잡혔다. 

경찰 과학수사대 관계자가 지문 채취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체 정보의 보고 DNA로 몽타주 제작도 가능

2010년 제정된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검찰청과 국과수는 각각 형 확정자, 구속 피의자 또는 범죄 현장에서 채취된 DNA를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고 있다. 이 정보들은 다른 사건으로 검거된 범인들의 DNA와 대조·분석을 거쳐 과거 미제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는 데 활용되고 있다. 

과학수사가 나날이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성폭행 미제사건이 확 줄어들었다. 성범죄자들의 증거인멸 방법도 다양화되고 있지만 DNA 수사를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성범죄자들의 주요 증거인멸 방법으로는 범행 후 피해자의 몸을 씻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다 옷과 이불, 침대보를 세탁기로 세탁하고, 테이프를 이용해 떨어진 체모를 수거하고, 청소기를 돌려 먼지 하나까지 챙겨 나오고 있다. 심지어 정액이 묻은 침대 시트를 오려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해도 DNA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다. 미세 DNA 하나만 있으면 범인을 식별해낼 수 있는 수준이 됐다.

DNA는 인체 정보의 보고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뿐만 아니라 체질과 질환에 관한 정보도 담겨 있다. 때문에 범죄 현장에서 DNA 확보는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DNA 검사 기술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다. 과거에는 DNA 분석으로 신원만 확인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추하는 '행동 수준' 분석도 가능해졌다. 범죄 현장에서 발견한 DNA로 범인의 나이와 행동방식 등을 그려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또 범죄 현장에서 채취한 DNA를 통해 몽타주를 만드는 기술로까지 발전했다. 여러 사람의 얼굴을 3차원(3D) 카메라로 촬영한 뒤 DNA 염기서열에 따른 얼굴 특성을 비교하는 방식이다. DNA를 활용하면 나이에 따른 얼굴 변화도 가능하다. 세월이 흘러 얼굴이 변한 장기 미제사건의 범인 몽타주도 이런 기법으로 만들 수 있다.

현재 범죄와 관련한 신원 확인을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유전자 감식(DNA)' 외에도 '지문 감식'이 있다. 경찰청은 지문과 DNA 식별 기술에서 세계에서도 뒤지지 않는 역량을 보이고 있다고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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