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택배 9시간 뛰고… 손에 쥔 건 1만1900원”

노지운 기자 2024. 10. 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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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빈곤율 1위인데… 최저임금도 못받는 ‘일자리’ 태반
지하철택배원, 시급 3000원꼴
하루 배송건수 1~2건밖에 안돼
“식당 꿈도 못꿔 주먹밥으로 끼니”
‘공공형’ 경로당 중식 도우미
두 명이 40명분 식사준비·정리
“매일 두 시간씩 초과 근무해야”
버스비 아끼려 두 발로… 지난달 12일 ‘노인 일자리 사업’ 민간형에 참여하고 있는 지하철 택배원 이상열(77) 씨가 서울 영등포구 한 꽃집에서 배송 물품을 수령받은 뒤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다.

올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은 정부의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사실상 최저임금도 안되는 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를 통해 저소득·고령 노인들의 소득을 보충한다는 취지가 무색한 것이다. 내년이면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은 1위인 상황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의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인 일자리 사업 ‘민간형 일자리’에 참여 중인 이상열(77) 씨는 6년째 ‘지하철 택배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주 업무는 꽃배달이다. 이 씨는 첫 아이가 3살일 때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4년 동안 배관공으로 근무했고 귀국하고 나서는 화랑을 차려 수십 년 동안 운영했다. 하지만 그림 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접어들면서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병원비 등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수소문하던 중 주민센터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을 소개받았다. 물건 배달은 모두 지하철에서 이뤄진다. 지하철은 무료 승차가 가능하지만, 버스는 무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전 8시 서울 마포구 공덕역에서 대기하다 주문이 떨어지면, 15분 거리에 있는 거래처 꽃집으로 걸어서 이동한다. 지난달 12일 첫 배송을 완료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2시간 20분. 수익은 배송료 7000원에서 15%의 수수료를 뺀 6150원이었다. 이 씨는 이날 오후 5시까지 두 건을 배송했고, 총 수익은 1만1900원이었다. 대기시간을 제외해도 시급은 3000원에 그친다. 이 씨는 “최근 배송 의뢰가 갈수록 줄어 하루에 1∼2건이라 1만 원도 못 버는 날이 많다”며 “식당 점심은 꿈도 못 꾸고 주로 지하철역에서 주먹밥으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 병원비와 보험료가 갈수록 늘어나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며 한숨지었다.

7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노인인력개발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씨처럼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인은 올해 6월 기준 96만1978명에 달한다. 지난 2004년 도입 시 3만5127명에 비해 27배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전체 노인 일자리에서 15%를 차지하는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보육교사 보조, 실버장애인돌봄 등)만 최저임금에 준하는 1만570원을 받고, 나머지 공공형·민간형 일자리는 사실상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지원금을 받고 있다.

관악구의 한 경로당에서 ‘공공형 일자리’ 중 하나인 경로당 중식도우미(사진)로 일하고 있는 최모(75) 씨와 정모(72) 씨는 하루 40명의 점심 식사를 만들면서 ‘활동비’로 월 29만 원을 받는다. 공공형 일자리는 하루 3시간만 근무하게 돼 있지만, 식단도 짜고 뒷정리도 하는 1인 3역을 하다 보면 근무시간은 이보다 길어지기 일쑤다. 공공형 일자리 활동비는 올해 7년 만에 27만 원에서 29만 원으로 2만 원 인상됐다. 하지만 이들의 시급은 9667원으로 올해 최저임금(9860원)을 밑돈다. 공공형 일자리 참여자는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 씨와 정 씨의 일과는 매일 오전 8시 30분에 시작된다. 지난달 26일 만난 최 씨는 “원래 출근시간은 오전 9시지만 두 명이 40명 식사를 준비하기 빠듯해 일찍 나와야 제시간에 식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3시간 남짓 지나자 점심 식사가 완성됐다. 이후 한 시간 동안 최 씨는 줄지어 내려오는 노인들의 식판에 밥을 푸고, 정 씨는 식판과 식기를 설거지했다. 최 씨는 “맛집 식당에서 일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다 빠지고 난 뒤 두 사람은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도 내일 식단을 정하느라 바빴다. 정 씨는 “하루 2만 원 내로 40명분의 새로운 반찬과 국을 만들어야 해 머리를 잘 써야 한다”고 말했다. 출근한 지 5시간이 지난 오후 1시 40분에서야 일은 끝났다. 이날 이들의 실 근무시간은 5시간. 시급으로 따지면 7400원 꼴이다. 이마저도 관악구의 경우 구비로 8만 원을 추가 지원해주고 있어 다른 지자체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에서는 지난달 공공형 일자리를 최저임금 이상으로 인상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법안 역시 공공형만 해당되고 민간형은 제외됐다. 실제 인상이 이뤄지면 5년간 9574억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인 일자리 수를 늘리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질적 성장도 동반해야 노인빈곤을 개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사진=노지운 기자 erased@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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