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 가을 술 여행[함영훈의 멋·맛·쉼]
타는 저녁놀 해남엔 허영만이 사랑한 술
선비 옷 입고 소곡주..문경선 오미자로 양조
[헤럴드경제= 함영훈 기자]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놀...’
시인 박목월은 ‘나그네’에서 여행자의 풍경을 이렇게 그렸다. 술이 가장 잘 익어가는 때는 곡식과 과일을 모두 거둬들인 가을이다. 지상을 넘어 우주로의 여행을 꿈꾸던 18~19세기 독일 탐험가 알렉산더 훔볼트는 “술은 시간을 멈추게 하며,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는 명언을 남겼다.
여행의 정취를 더욱 짙게 해 줄 제철 술은 가을 나그네에게 좋은 소품 중 하나이겠다. 물론 현명한 여행자의 전유물이기도 한 것이 바로 술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술 여행지를 가을에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여행자는 배움을 향해 떠나는 현자(賢者)이기에 술이 지혜와 기쁨의 촉매제가 될 것임을 믿고, 지역에서 열심히 만들고 있는 우리 술을 알리기 위함이다.
술 익는 마을엔 명소도 많다. 술 맛이 좋으려면 산세는 물론, 물맛도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달 5일부터 시작하는 진주 남강 유등축제에서는 진주산 수제맥주를 빼놓을 수 없다. 논개시장 입구에 위치한 진주진맥브루어리가 지난 4월 오픈하면서다. 신생 브루어리이긴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맥주 마니아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브루어리 이름인 ‘진맥’은 진주밀로 만든 맥주, 풍미가 진한 맥주, 진짜 맥주라는 뜻이다. 주원료는 진주에서 나는 앉은키 밀이다. 보통 밀에 비해 부드럽고, 구수하다.
폐가구점을 리모델링한 브루어리 외벽이 붉은 것은 앉은키 밀의 색깔에 착안해서다. 1층은 수제 양조장과 맥주 펍, 굿즈샵 등이 있고, 2층은 맥주 펍과 아카이브 공간, 3층은 진주시상권활성화재단과 교육장이 위치해 있다. 2층은 맥주를 마시며 헤드폰을 끼고 가볍게 턴테이블 LP가 튀는 레트로 감성의 음악을 듣는 곳이다.
논개시장에서는 토요일마다 올빰토요야시장이 열린다. 진주 육전, 삼겹말이, 납작만두, 해물부추전, 대왕고기완자, 스테이크새우꼬치 등 먹거리 천국이다. 평소 진주진맥브루어리는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지만, 토요일 야시장 음식은 대환영이다. 진주진맥브루어리에서 파는 캔맥주와 페트병 맥주를 사 들고 야시장에서 즐겨도 좋다.
남강유등축제는 7만여 개의 등불이 진주성 아래 남강 위를 형형색색 수놓아 잊을 수 없는 가을을 선사한다.
물빛나루쉼터에는 남강 유람선인 ‘김시민호’를 운행한다. 진주성의 야경과 화려한 음악분수대를 보는 야간 운항도 한다. 국내 3대 재벌을 탄생시킨 승산마을을 거닐다 보면 평범함, 성실함 속에 큰 복이 온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박목월이 노래한 ‘남도 삼백리’ 언저리에 있는 해창은 명품 막걸리를 생산하며 유명해졌다. 해창막걸리는 시중 막걸리보다 도수가 높은 9도와 12도이다.
해남에서 재배한 유기농 찹쌀에 멥쌀을 일부 섞어 만든다. 찹쌀 본연의 은은한 단맛이 인공 감미료를 대신한다. 그래서인지 고가의 몸값을 자랑한다.
‘식객’의 허영만 만화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잘 알려진 해창막걸리 팬이다. 심지어 18도 막걸리 라벨에는 허영만 만화가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주조장 내 정원은 40여 종의 수목이 약 2500여㎡를 가득 채우는데, 가장 오랜 배롱나무는 700세나 된다.
해남은 박목월의 ‘타는 저녁놀’ 시어에 걸맞다. 땅끝마을과 송지해변의 노을은 술을 부르고, 한 순배 넘기면 발품으로 지친 심신은 그만 무장해제된다.
고산 윤선도는 해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고산윤선도유적지는 비자림과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만으로 충분히 다녀올 만하다. 두륜산케이블카는 맑은 날 한라산이 보이고, 우수영관광지는 10월 명량대첩축제(18~20일)와 같이 즐길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술 중의 하나인 한산소곡주는 이 지역 내에서 생산된 지역 재료만을 사용해야 한다. 현재는 70여 가구가 양조장 시설을 갖춰 ‘술 익는 마을’이 되었다. 술맛은 70여 양조장 모두가 같은 듯 다르다.
쌀에 누룩을 더해서 밑술을 만들고 다시 고두밥으로 덧술을 제조하는 양주 방식은 비슷하지만, 양조장마다 첨가하는 재료가 다르고 몇 대에 걸쳐 내려온 비법도 각양각색이다. 덕분에 김치나 장맛처럼 양조장마다 술맛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한산소곡주는 한산소곡주갤러리에서 모두 맛볼 수 있다. 무료 시음도 한다.
한산소곡주는 서천군이 제작한 같은 모양의 갈색 술병을 사용한다. 선비복을 입고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 3종의 소곡주를 맛보는 향음체험(1인 1만5000원, 10인 이상)도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서천을 대표하는 또 다른 특산물인 ‘한산모시’를 빼놓을 수 없다. 사라져가는 한국전통문화의 명맥을 잇고자 하는 간절함이 한산모시마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나라 4대 갈대밭으로 꼽히는 신성리갈대밭은 가을을 느끼기에 좋아 갈대와 ‘타는 놀’ 정취에 빠지다 보면 ‘술 익는 마을’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해발 1000m 고지의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에 자리해 사시사철 서늘한 문경은 오미자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오미나라는 지난 44년 동안 세계 명주를 공부하고 우리 술을 연구한 양조 및 증류 명인이 세운 곳으로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이 동시에 나면서 소화 촉진, 피로 해소, 성 기능 개선과 더불어 뇌졸중, 고혈압, 당뇨, 노화에 좋은 오미자의 효능을 살려 세계 유일무이한 오미자 와인을 세상에 공개했다.
오미나라는 와인 및 증류주 제조와 시음 등 와이너리 체험 프로그램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2016년 7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됐다. 2019년과 2020년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는 우리 술 와인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문경자연생태박물관은 문경 지역의 생태학적 가치를 공유하는 자연 학습 및 체험 공간이며, 문경새재도립공원옛길박물관은 우리나라 문화 지리의 보고(寶庫)이자 문경새재의 역사를 담고 있는 향토박물관이다. 새도 쉬었다 가는 고개라는 뜻을 담고 있는 문경새재는 사계절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광화문도 있는 문경 영화-드라마 세트장에서 친구와 사극 배우처럼 ‘액션, 큐!’ 해보는 시간여행은 덤이다.
협동조합 형태인 속초 노학동의 몽트비어 2층에 앉으면 창밖으로 설악산과 울산바위, 금강산 봉우리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프랑스어로 산이라는 뜻인 ‘몽트(Mont)’가 상호명에 들어가고, 울산바위를 형상화한 로고를 쓰는 이유이다.
몽트비어를 찾는 가장 큰 즐거움은 갓 나온 신선한 맥주를 종류별로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몽트비어가 선보인 맥주 종류는 10가지가 넘는다. 속초 응골딸기마을의 딸기와 양양 곰마을의 복숭아 과즙을 넣은 맥주가 매력적이다. 또 2년 간 개발 기간을 거쳐 국내산 효모와 감자 전분을 사용해 만든 맥주도 있다. 맥주의 주성분 중 하나인 홉도 국내산을 사용하기 위해 공장 앞 밭에서 재배한다.
설악향기로는 설악동 계곡의 절경과 어우러지는 산책로다. 쌍천 수변을 따라 설악의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코스로, 총 길이 2.7㎞ 중 863m는 출렁다리를 포함해 새로 조성했다.
영랑호 맨발 황톳길은 편도 420m 순환형 코스로 황톳길과 산책길, 세족장, 황토볼장, 황토족장을 갖춰놓고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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