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 당신은 외국인 노동자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EDITOR's LETTER]
명동에 가면 외국인이 넘쳐납니다. 일본인이나 중국인만 보이던 2000년대와는 다릅니다. 국적도 피부 색깔도 다양합니다. 홍대앞, 연남동 풍경도 비슷합니다.
대학 캠퍼스 곳곳에서는 다양한 외국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음식점·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속초 중앙시장에서 막걸리빵을 파는 청년도, 농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도,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어부도 외국인이 상당수입니다.
공장지대에 외국인이 넘쳐난 지는 이미 오래됐습니다. “이삿짐은 몽골 사람이 옮기고, 가사도우미는 필리핀 사람이 하고, 속초 닭강정은 네팔 사람이 판다”는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국가가 된 듯합니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260만 명, 전체 인구의 5%를 넘어 다문화 사회로 들어섰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한국이 동남아 국가에는 ‘동경의 땅’이 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코리안드림이지요.
네팔이 대표적입니다. 수도 카트만두에만 한국어 학원이 800개가 넘고, 한국어 시험 응시자가 연 1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최근 지자체 선거에서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생활한 사람 중 여러 명이 시장에 당선되며 코리아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고 현지인들은 전합니다. 네팔 언론들은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 소식을 한국보다 더 진지하게 보도합니다.
스리랑카에서는 한국어가 제2 외국어 시험과목입니다. 몽골에도 한국행을 원하는 청년들이 넘쳐나 현지어를 몰라도 여행이 가능할 정도라고 합니다. 한국에 7만~8만 명의 유학생을 보내놓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국이 인구감소에서 작년에 증가로 돌아선 것도 이들 외국인 유학생과 노동자 덕분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은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상당수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총 20만 명)이 없으면 당장 재정난에 빠집니다. 그들이 없으면 전국의 상당수 공장은 가동을 중단해야 하고 재배한 농산물 수확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8월 기준으로 대졸 실업자는 56만4000명, 일자리를 찾지 않고 그냥 쉰다는 청년도 46만 명에 달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여 임금 수준을 낮춰 놓으면 한국 청년들이 취업할 의욕을 더 잃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언뜻 듣기에 설득력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대학 나온 한국 청년들이 원하기나 할까요? 논리적 완결성은 떨어집니다.
또 다른 논점은 한국인의 태도입니다. 한국 사회는 배타성을 갖고 있다는 게 학자들의 얘기입니다. 단일민족이기에 다르게 생긴 사람들에 대해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의문투성이입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다문화 가정이고 수많은 한인들이 미국, 일본, 독일로 나가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아기 수출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자부심이 담긴 것도 아닌데 단일민족이라는 단어가 편견의 근거가 되는 상황은 우스꽝스럽기조차 합니다.
어찌됐건 정치적인 이유까지 더해져 한국은 영주권과 이민에 대한 제도를 그동안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불법 체류 외국인이 40만 명에 이르는 것도,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정 기간 지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해 공백이 생기는 것도 그 결과입니다. 이런 주무부처가 없으니 실효성도 없고 인간적이지도 않은 필리핀 가정부 수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정책이 저출산 대책이랍시고 튀어나오는 것 아닐까요.
현재 외국인 문제는 마치 난개발을 보는 듯합니다. 유학생, 노동자, 계절노동자, 중국동포 등 문제가 한꺼번에 뒤엉켜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체계적이며 순차적으로 외국인의 한국 정착을 관할할 이민청을 설립하는 것은 시급합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곧 닥칠 외국인 300만 명 시대를 다뤘습니다. 시급히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의 코리안드림이 악몽이 되지 않고, 그들이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인구감소를 막는 주역이 될지 여부는 온전히 한국 사회의 몫입니다. 한국 사회의 정책적 능력과 포용력을 보여줄 때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는 이미 한국 사회의 일원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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