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자연 영화 침팬지의 제국] 2인자 챙기며 경쟁자 배제…인간 빼닮은 침팬지
다양한 원숭이에서부터 고릴라까지를 일컬어 영장류靈長類라고 한다. 열대 우림의 나무에서 진화했기에 대부분의 영장류는 나무 위 생활에 적합하게 적응했다. 시각을 담당하는 뇌가 발달해 포유류 중 색채를 보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며, 엄지손가락과 다른 네 손가락이 마주 보고 있어 나뭇가지를 잡고 이동하기에 유리하다. 가장 고등한 동물로 얼굴이 짧으며 가슴에 한 쌍의 유방이 있다.
영장류 중에서도 인간과 비슷한 종류를 유인원類人猿이라고 한다. 신체 구조가 다른 원숭이류보다 사람에 더 가까워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가 잘 아는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피그미 침팬지)가 유인원으로 분류된다.
유인원의 가장 큰 신체적 특징은 꼬리가 없다는 점이다. 다른 영장류보다 뇌가 크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치아의 형태를 비롯한 두개골의 기본 구조가 비슷하다. 특히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인 침팬지는 DNA의 약 98%를 공유할 정도로 인간과 비슷하다.
<침팬지의 제국Chimp Empire>(감독 제임스 리드, 2023)은 침팬지의 세계를 담은 영국 다큐멘터리이다. 총 4편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글에서는 1편 '천국'을 주로 다루려 한다.
마허샬라 알리가 내레이션
영화는 어미 침팬지가 새끼 침팬지를 돌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새끼 침팬지가 어미를 빤히 쳐다보며 서로 사랑스럽게 입을 맞추는 모습을 잔잔하게 담아 단번에 화면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자막이 뜬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생명체의 여러 모습을 제시하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돌이켜보게 만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내레이션은 영화 <그린 북Green Book> (2018)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마허샬라 알리가 맡았다. 낮고 천천히 읊는 소리로 신뢰감을 더하면서 효과적으로 작품을 이끌어 간다.
온통 무성한 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은 아프리카 우간다의 '응고고 숲the forest of Ngogo'이다. 이 숲에서 가장 번성한 종족은 침팬지 무리이다.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는 지능이 뛰어나고 감성적이다. 수명도 60년 이상이고 삶의 단계도 인간과 비슷하다.
"응고고 침팬지들은 고유의 성격과 각자의 목표를 지닌 인격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침팬지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침팬지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여 놓았다. '포크 파이', '캐넌볼', '카터', '장고'….
침팬지 무리는 대부분 50~60마리 정도로 구성되지만, 응고고에서는 그 두 배인 120마리가 무리 지어 생활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무리 중 가장 크다. 응고고는 과수가 아주 풍부해서 침팬지에겐 천국이나 마찬가지인 덕분이다.
"과일은 침팬지 무리의 생명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31세 침팬지가 6년째 우두머리
응고고 침팬지 사회는 나름 정교하다. 가족과 사회적 연대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각각의 침팬지들은 유대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무리 내에서 그들의 위치를 찾아간다.
침팬지 무리에는 위계질서가 있다. 응고고 무리의 우두머리는 가장 강력한 침팬지 '잭슨'이다. 31세로 6년째 우두머리 생활을 하고 있다. 우두머리 역할을 유지하려면 힘을 과시해야 한다. 약한 모습은 금물이다.
잭슨이 한바탕 숲을 휘저으며 거친 힘자랑을 하고 지나가면 무리가 "우워~ 우워~" 소리를 지르며 잭슨에게 다가와 '경의'를 표한다.
침팬지들은 항상 무리에서 우위를 점할 기회를 노린다. 21세인 '에이브럼스'가 그렇다. 이 정도 나이의 침팬지가 잭슨한테 도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에이브럼스는 무리 중 드물게 똑똑하고 자신감이 충만한 침팬지이다.
잭슨에게는 호위무사가 있다. 40세 '마일스'로 응고고에서 가장 덩치가 크다. 잭슨과 마일스는 끈끈한 사이로 최강의 동맹이다. 주기적으로 서로 털 손질을 해주는데 이를 '그루밍grooming'이라 한다.
포유류 중에서 고양이과, 토끼, 영장류들이 주로 하는데, 특히 영장류들은 서로를 그루밍해 주면서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하며 여러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발달시킨다.
"그루밍은 동맹을 창출하고, 동맹은 권력을 창출합니다."
권력 유지 위해 동맹
제아무리 강력한 침팬지라도 혼자 힘으로 무리를 통솔할 수는 없기에 동맹은 필수다. 그루밍 파트너를 보면 무리에서의 위치와 각자의 야심을 알 수 있다. 가령 서열 3위와 서열 5위가 힘을 합쳐 절대자 자리를 노리고, 서열 1위는 서열 2위와 연합 전선을 구축해 이에 대비한다.
만약 그루밍을 하지 않는 녀석이 있다면 야심도 없고, 사회적 위치에 관심이 없다고 볼 수 있다. 14세 '거스'가 그렇다. 수컷 침팬지에게 14살이란 나이는 녹록하지 않은 시기다. 어미로부터 독립해 다른 수컷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2~3마리씩 모여앉아 털 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거스만 주위를 어슬렁거릴 뿐 어울리지 못한다. 매우 짠하고 애잔해 보인다. 표정마저 그렇다.
하지만 혼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한 일이기에 생존을 위해서도 이 상태로 있을 수는 없다. 아웃사이더이지만 바보가 아닌 거스는 혼자 나무줄기 위에서 쉬고 있는 에이브럼스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세심하게 털 고르기를 해준다. 내레이터가 재치 있게 코멘트한다.
"잘만 하면 좋은 연줄을 만들 기회입니다. 거스가 아주 열심히 노력하는군요."
그런데 받을 거 다 받은 에이브럼스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자리를 뜬다. 거절당한 거스의 표정이 정말 가관이다. 야심만만한 에이브럼스는 훨씬 더 강력한 그루밍 파트너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영상이 리얼하다는 점이다. 어떻게 일일이 따라다니고, 어떻게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선명하게 찍었는지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연출도 깔끔하다. 제임스 리드 감독은 남아프리카 바다를 배경으로 인간과 문어 간의 특별한 교감을 다룬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2020)으로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실력파이다.
침팬지는 영역 동물이다. 응고고 숲의 침팬지는 정해진 영역 내에서 생활하고 사방엔 적대적 관계인 침팬지들로 가득하다. 식량을 뺏기지 않기 위해 영역 경계선을 항상 순찰해야 한다. 순찰은 아주 위험한 작업이다.
우두머리 잭슨의 주도 아래 무리가 북쪽 경계선으로 향한다. 수십 마리가 밀림을 가로지르며 수 킬로미터에 걸쳐 이동한다. 가장 덩치가 크고 공격적인 수컷조차도 경계선에 가까워지면 긴장하기 시작한다. 침팬지 한 무리가 다른 무리를 만나면 둘 중 하나이다. 도망치든가, 공격하든가.
인간 사회의 축소판
숲속 저 너머에서 북쪽 침팬지 무리의 소리를 들은 이들은 전열을 가다듬어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상대의 후퇴를 이끌어냈다.
성공적인 순찰을 마치고 보금자리로 돌아오던 응고고 침팬지 무리는 나무 위에 모여 있던 원숭이 무리를 발견하고 사냥에 들어간다. 침팬지들이 줄줄이 나무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 먹이 사냥에 나서는 장면은 아주 박진감 넘친다.
잡은 원숭이는 입에 물고 바닥에 내려와 동료 침팬지들과 나눠 먹는데, 침팬지의 등을 비추는 식으로 수위 조절을 했음에도 별 도리 없이 꽤 잔인하다.
고기는 침팬지가 좋아하는 영양 공급원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어서 고기를 나눠 먹는 건 사회적인 측면이나 정치적인 측면에서 중요하다. 우두머리 잭슨은 고기를 동료들과 나눠 먹으면서 누구보다 2인자 마일스를 더 챙겨 준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에이브럼스를 배제한다. '떠오르는 신예' 에이브럼스는 전혀 못 얻어먹는다.
작품에는 푸른 숲을 배경으로 한 평화로운 장면도 적잖다. 도입부에 나왔던 21세 암컷 '크리스틴'이 6개월 된 새끼를 키우는 장면이 특히 그러하다. 응고고에선 한 살이 되기 전에 죽는 침팬지가 많기에 태어나 1년이 되기 전에는 과학자들이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새끼 침팬지가 처음 나무 오르기에 도전하는 모습이나, 크리스틴의 7살 된 딸 '네이딘'과 새끼 사이에 조금씩 자매애가 싹 터 가는 모습이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침팬지의 다양한 모습을 선명한 화질로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적나라한 권력 추구와 이해관계에 따른 활발한 이합집산 등 우리 인간사회에 대해 자꾸 돌이켜보게 만드는 효과도 크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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