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모레가 700억 들여 제주에 茶 생산기지 만든 이유는

제주=김은영 기자 2024. 10.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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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한남차밭에 개관한 오설록 티팩토리 가보니
재배부터 포장까지 원스톱 차 생산 시스템 구축
오설록 본사도 제주로 이전... ‘메이드 인 제주’로 세계 시장 공략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차밭에 있는 오설록 티팩토리. 건물 외부에서 전 생산 공정을 관람할 수 있도록 큰 창을 냈다. 빨간 벽돌은 제주 화산송이로 만든 것이다. /김은영 기자

지난 9월 3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차밭. 광활한 차밭 옆으로 붉은 벽돌로 만든 나지막한 건물이 서 있다. 얼핏 보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지만, 이곳은 오설록농장이 지난해 조성한 티팩토리다.

이름처럼 생산 설비를 갖췄지만, 시끄러운 기계음 하나 없이 자연과 조화를 이뤘다. 건물 가까이 가자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향기가 났다. 공장에서 가공하는 차[茶]의 향이 건물 밖으로 전달되도록 시향 장치를 만들어 놓은 덕분이다.

이민석 오설록농장 연구소장은 “지금 배향을 첨가한 ‘달빛걷기’를 만드는 중인데 그 향이 건물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라며 “외부에서도 생산 공정을 볼 수 있도록 커다란 관람 창을 두고 향을 맡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라고 말했다.

오설록 티팩토리는 지난해 9월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차 사업을 위해 생산법인 (주)오설록농장과 판매법인 (주)오설록을 운영 중인데, 티팩토리 준공과 함께 흩어져 있던 오설록농장 본사와 연구소, 생산시설을 한데 모았다. 티팩토리 건립을 위해 쓴 금액만 700억원에 달한다.

이 소장은 “기획부터 건물을 짓기까지 8년가량이 걸렸다”면서 “원료 재배부터 최종 제품까지 한꺼번에 나오는 차 회사는 세계적으로 오설록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45년 전 서귀포 황무지 일궈 100만 평 차밭 조성

오설록이 제주를 차 사업의 본거지로 삼은 건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은 한국의 차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한라산 남서쪽 도순 지역의 돌밭을 녹차밭으로 개간했다. 이 돌송이차밭을 시작으로 서광차밭, 한남차밭 등 서귀포 지역 3곳에 차밭 100만 평(330만5785㎡)의 다원을 일궜다.

식품기업이라면 원료를 사다 제품을 만들었을 테지만, 오설록은 농사부터 시작했다. 이는 아모레퍼시픽의 창업 철학과 연관이 있다. 서 선대회장의 모친 윤독정 여사는 직접 짠 동백기름으로 머릿기름을 팔다가 화장품 사업을 확대했다. 곁에서 사업을 배운 서 선대회장 역시 ‘원물’의 중요성을 인지, 차 농사부터 뛰어들었다.

제주 녹차밭을 가꾸는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선대회장. /오설록 제공

직접 차밭을 일군 스토리는 럭셔리 티 브랜드 오설록을 만드는 기반이 됐다. 1980년 설록차를 출시해 차 대중화를 이끈 회사는 2015년 녹차 브랜드를 오설록으로 통일하고, 2019년에는 사업부를 독립 법인으로 분사했다. 매출의 80%를 차지하던 설록차 티백 사업도 중단했다.

대신 고급 제품을 강화했다. 대표적인 게 손으로 골라 딴 어린 찻잎을 장인이 덖어 만든 수제 차 ‘일로향’이다. 1년에 1000개만 한정 생산하며, 가격은 60g에 17만원이다.

20개 넘게 운영하던 오설록 카페도 제주 티뮤지엄, 티하우스 북촌점과 한남점, 현대미술관점 등 체험형 매장 8곳으로 줄였다. 2001년 서광차밭에 개관한 티뮤지엄의 경우 연간 180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 중 30%는 외국인 관광객이다.

이런 노력으로 분사 당시 500억원대던 오설록의 연 매출은 지난해 839억원으로 뛰었다. 분사 전까지 적자를 냈던 영업이익도 이듬해 흑자로 돌아서 지난해 55억원을 기록했다. 화장품 사업만 하던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된 셈이다.

그래픽=정서희

◇’메이드 인 제주’로 글로벌 차 시장 본격 공략

제주에 구현한 오설록 티팩토리도 고급화 전략의 일환이다. 찻잎을 수확하자마자 가공하고 포장까지 하는 일원화된 생산 시스템을 통해 최고급 차 생산지로서 제주와 오설록 브랜드를 세계에 알린다는 포부다. 지난달엔 판매법인인 (주)오설록의 본사를 제주로 이전해 ‘제주’ 태생의 브랜드 정체성을 굳혔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도 한 달에 한번은 제주를 찾아 차 사업장을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설록 티팩토리는 2만3000m²(7100평)의 대지면적에 건축면적 7200m²(2200평) 규모의 공간으로, 연간 646톤(t)의 제품을 제조하고, 8600만 개 제품을 출하할 수 있다. 조민석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은 주변의 자연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고안됐다. 외관의 붉은 벽돌은 제주의 화산송이를 넣어 만들었다.

이 소장은 “세계 10대 건강식품하면 꼭 차가 들어간다. 그런만큼 설계 단계부터 다양한 글로벌 식품 안전 기준을 반영했다”면서 “티팩토리는 안전하고 근대화된 차 식품 공장”이라고 말했다.

9월 30일 이민석 오설록농장 연구소장이 조선비즈에 오설록 티팩토리를 소개하고 있다. /오설록 제공

티팩토리를 통해 생산 물량이 기존보다 1.5배 늘어난 만큼 글로벌 진출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설록은 2020년 3월 미국 최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아마존에서 판매를 시작한 이래 매년 100%가 넘는 성장률을 보인다. 사측은 럭셔리 티 브랜드 이미지에 중점을 두고 현지 주요 유통사에 입점할 방침이다.

이날 티팩토리에서는 올 하반기 출시를 앞둔 블렌티드 티인 ‘무화과쇼콜라’와 ‘마롱글라세’를 시음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차 모두 디저트와 곁들이기 좋은 풍미를 지녔다. 녹차에 다양한 맛과 향을 첨가한 블렌디드 티는 최근 젊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오설록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이 블렌디드 티에서 나온다.

티팩토리는 이르면 올 연말 식음(F&B) 및 판매 업장을 개장하고 공장 투어를 개시해 브랜드 체험 공간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이 소장은 “인프라가 일원화된 만큼 브랜드가 가지는 가치를 고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설록 티팩토리 관람창을 통해 본 포장 생산 공정.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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