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데뷔 20주년' 천우희, 직업인의 성찰 [29th BIFF](종합)
[마이데일리 = 부산 강다윤 기자]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배우 천우희가 지난 출연작들을 되돌아보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6일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29th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 이하 부국제) '액터스 하우스: 천우희'가 진행됐다. 행사에는 씨네21 김소미 기자가 모더레이터로 나섰다.
'액터스 하우스'는 2021년 신설돼 연기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동시대 대표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와 작품에 관하여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페셜 토크 프로그램이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천우희는 이번 부국제에서 액터하우스 네 번째 주인공으로 출격했다.
천우희는 2004년 영화 '신부수업'으로 데뷔 후 영화 '써니'에서 나사 빠진 듯한 일진 이상미 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영화 '한공주'를 통해 데뷔 10년 만에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13개의 상을 수상했다. 그 뒤로도 영화 '뷰티 인사이드', '곡성', 드라마 '멜로가 체질', '히어로는 아닙니다', '더 에이트쇼'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올해는 영화 '한공주' 개봉 10주년이기도 하다. '한공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고 쫓기듯 전학을 가게 된 '공주'가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천우희는 주인공 공주 역을 맡아 극단의 상황을 오가면서도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여 많은 호평을 받았다. 같은 시기 개봉한 '우아한 거짓말', '타짜: 신의 손', '카트' 등에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뽐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천우희는 "항상 보면 지나고 나서 의미가 생기는 것 같다. 2014년에 그렇게 작품이 많았는지 몰랐다. 그 네 작품이 시기가 다르다. 2년 전 촬영한 것도 있고 그 해 촬영한 것도 있다"며 "그때 당시는 선택할 수 있는 위치의 배우가 아니다 보니 어떤 것이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 같다. 꾸준히 물을 주다 보니 싹이 움트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니 10년 전이면 나는 많이 불안했고 막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금보다 어렸기 때문에 금방 망각하고 또 금방 즐거워하고 가끔은 게을러졌던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한공주를 연기한 것에 대해 "그때 나는 이 오롯이 모든 걸 받아들이길 원했던 것 같다. 그때의 순간, 감정, 상황들이 온전히 다 느껴지고 내가 감내해 낼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보시는 분들은 혹시나 마음이 다쳤을까 봐 걱정을 하셨다"며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작품을 연기하는 내내 고통스러운 마음이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힘듦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을 그냥 내가 실제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임했고 그게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컷도 한 테이크도 그리고 하루도 정말로 대충, 의미 없이 임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천우희의 최근작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The 8 Show)' 이야기도 나왔다. 천우희는 "더 에이트 쇼' 같은 경우 정말 캐릭터에 흥미와 재미가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보지 못했던 돌발성, 자유로움, 본능에 대한 걸 내가 한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는 일탈의 맛을 느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며 작품 선택을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내 "그 도전을 해보고 싶었는데 현장에 막상 가보니 공간적으로 다가가는 부분이 또 달랐다. 8명의 배우가 한 공간에 나오다보니 포지션이 절대 겹쳐서는 안됐고 층마다 갖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가 너무나 뚜렷해서 정확히 보여줘야했다. 연극적이고 조금은 제한적인 부분이 있었다"며 "내가 생각하기엔 도전의 의미가 방향이 좀 바뀐 것 같다. 예전에 '머리 풀고 제대로 놀아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현장에서 공간을 인지하는 순간 '이 딜레마를 내가 뛰어넘는게 도전이겠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또한 자신이 맡은 송세라 역에 대해 "(목소리, 발성 등) 그런 디테일을 사실 좀 잡아가고 싶었는데 많은 디테일을 보이기에는 이 인물이 어떻게보면 하나하나에 각기 보여줘야하는 이미지성이 너무 뚜렷하다보니 캐릭터적으로 직관적으로 보여지기를 바랐다"며 "사실 디테일을 하나하나 조율하기보다 섬세함을 표현하길 즐거워하지만 여기서는 그 레이어, 관계, 감정을 쌓기에는 조금 한정적이었다. 조금은 획을 좀 크게 썼다. 목소리톤을 바꿔보고 표정, 몸짓 등을 조금 더 보이기 쉬운 방향으로 접근했다"고 연기 포인트를 짚기도 했다.
천우희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하 '히어로는')도 빼놓지 않았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남다른 능력을 지녔지만 아무도 구하지 못했던 남자가 마침내 운명의 그녀를 구해내는 판타지 로맨스. 천우희는 천우희는 초능력 가족 앞에 나타난 수상한 여자 도다해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였다.
이에 천우희는 "어떤 삶의 부채감을 갖고 있는 인물이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큰 의미가 된다는 게 인물로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아름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살아갈수록 자기 겉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쉽지가 않지않나.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건 사랑과 신뢰라는 걸 '히어로는'이 보여주고 있었고 그 위로에 대한 방향이 나한테 크게 좀 와닿았다"며 "그 의미와 따뜻함을 내가 느끼는 것 만큼 많은 의미로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품 선택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독립심이 강한 편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기 보다 그냥 내가 해결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작품 선택을 보면 누군가를 구원하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구원받는 이야기를 선택하는 경우들이 많더라"라며 "결국 내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사랑과 연대가 되게 큰 의미라는 걸 느낀다. 겨룩 사랑이 가장 크고 중요하고 마지막이라는 것을 느끼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작품들을 볼때마다 끌어당김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게 아닌가 싶다. 연대, 소통, 사랑이 나한테 많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천우희는 "나 다운 면이 매 작품마다 녹아있는 것 같다. 나와 닮지 않아서 선택했던 인물들도 나 다운 면이 있다. 앞에 언급하신 작품 같은 경우 조금 더 현실적인 감정이 드러나다 보니 나다운 면이 조금 더 보이지 않나 싶다"며 "작품에서 강하고 그런 차분한 감정들을 작품들에서 풀어내다보면 가끔은 새가 젖은 공기, 너무 무거운 공기를 탁 들어마신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그때면 또다른 순간으로 빠질 수 있고 그런 순간을 연기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이게 나 답다'보다는 나의 새로운 모습과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또한 천우희는 배우라는 직업의 가치를 묻자 "나는 다른 시간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욕심이 좀 있다. 배우다 보니까 더 그렇다. 배우라면 다른 사람의 관념, 생각, 가치를 조금 더 많은 해석력을 취하고 싶은 욕심들은 다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냥 내 성격 자체가 그 외의 모습, 그 이면을 바라보는걸 굉장히 즐겨하는 편이다. 연기 자체가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인연을 바라볼 수 있다"며 "타인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고, 작품을 하고 연기를 하며 탐색하고 사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직업인으로서 성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나한테는 꽤나 값진 지점"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한편 올해 29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영화의 전당 일대에서 열흘간 개최된다. 커뮤니티비프 상영작 54편을 포함해 총 63개국으로부터 온 278편의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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