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씩 걸리는 ‘지진 원인 파악’…R&D 투자 등 ‘긴 호흡’ 필요[한반도 지진 대비의 길]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듯 단층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지진이 발생할 수 없다. 지진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시발점이 된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은 샌앤드레이어스 단층에서 발생했다. 일본에 기록적인 피해를 가져온 1995년 고베 지진은 노지마 단층에서, 지난해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은 동아나톨리안 단층에서 비롯됐다.
이처럼 지진이 잦은 지역에서는 발생 직후에 해당 지진의 주체이자 원인이 어떤 단층인지 금방 알 수 있는 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2016년 경주지진 이후 간헐적으로 중규모 지진이 발생하고 있지만, 지진을 일으킨 단층에 대해 매번 명쾌한 설명이 이어지지는 않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진 직후 많은 언론과 국민은 지진을 일으킨 단층에 대해 궁금해한다. 전문가마다 지진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큰 단층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공통된 지적 중 하나는 며칠이나 몇주의 ‘시간’이 지나야 단층을 특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지진의 원인은 기존에 파악하지 못한 단층이나 이름이 없는 무명 단층으로 결론 내려지는 일도 있다. 이것은 단층에 대한 무지로 인식돼 지진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사람은 가끔 특별한 외상이나 붓기 없는 통증을 느낄 때가 있다. 원인이 모호해 답답할 때 우리는 병원 진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특징 또한 지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어떠한 변형도 남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표에 흔적이 없는, 지하에서만 파열된 단층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이때 지하에 숨어 있는 단층을 탐지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는 지진계로 관측된 자료이고, 이 자료를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병원 진료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규모 6을 넘는 대규모 지진은 단층이 파열되는 면적이 넓기에 지표 도달과 동시에 땅이 갈라지는 지표 파열을 동반한다. 이때는 지진 자료 분석에 더해 야외 조사로 지표 파열을 직접 관찰해 원인 단층을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1995년 고베 지진, 지난해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모두 수십~수백㎞ 길이에 달하는 지표 파열을 동반했다.
반면 국내에서 이슈가 된 지진들은 모두 지표 파열을 동반하지 않는 중규모 지진이었다. 평상시 설치되어 있던 지진계에 관측된 지진 자료만으로는 단층을 특정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표에는 아무런 변형이나 파열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현장 긴급 조사를 나가는 이유는 뭘까. 바로 임시 지진계를 설치하기 위해서다. 지진 발생 직후 여진이 이어지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현상으로, 임시 지진계 설치를 통해 고밀도 지진 관측망을 구축, 정확한 여진을 관측한다. 양질의 지진 자료를 얻을수록 원인 단층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기에, 임시 지진계를 신속하게 설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핵심 조사 과정에 속한다. 간혹 몇몇 중규모 지진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여진이 드물게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특히 오랜 관측 기간이 필요하다.
한반도 전역에는 다수의 단층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중규모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 이제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고 지질 현상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 과학기술계의 꾸준한 연구·개발과 더불어 지진 조사를 향한 ‘긴 호흡’의 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진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재해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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