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관계빈곤[창간 기획]

김태훈 기자 2024. 10. 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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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동체 지수’ 최하위권

‘외로움’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팬데믹’이라 불릴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고립 문제를 공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내외에서도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가족 규모가 축소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는 변화를 고려해 이 같은 위기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가 외로움에 익숙해진 ‘관계 빈곤’ 사회라는 점은 국제 비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들의 각종 사회적 지표들을 수시로 취합해 비교 공개하는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를 보면 한국은 지난 3월 기준 ‘공동체’ 부문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원망이 갖춰져 있는지를 다룬 이 조사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41개국 중 멕시코와 그리스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특히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이 되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이 전혀 없다고 답한 비율은 20%에 달해 OECD 평균 9%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국내에서 사회적 고립이 확산되는 모습은 증가하는 고독사와 확대되는 고립·은둔 청년 규모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고독사 문제는 정부 차원의 첫 실태조사가 2022년에야 나올 정도로 대응이 늦었다. 사회적 관계를 단절한 채 가정 내에 고립·은둔해 있는 청년들에 대한 대책 역시 지난해 처음 지원 방안이 마련됐다.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에서 고독사 발생 건수는 2017년 2412건에서 2021년 3378건으로 4년간 40% 늘며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고립·은둔 청년은 전국에 약 51만6000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될 만큼 규모 면에서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국, ‘사회적처방’ 서비스 도입 후 행복감 80% 증대

선도적으로 사회적 고립 문제에 대처하고 있는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를 신설했다. 외로움 대응 5개년 계획을 세워 사회적 고립이 낙인처럼 작용하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표적으로 ‘사회적 처방’이라는 보건복지 서비스를 도입해 정신건강이 악화된 시민에 대한 약물치료 지원 외에도 전문적 상담과 사회활동 프로그램 참여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강화했다. 김아래미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국에서 사회적 처방을 실시한 결과 이용자의 약 80%는 행복감이 증진됐고 70%는 사회적 고립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국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외로움이 사회문제화되고 있기에 제도적 대응이 필요한데, 고독사 문제만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데서 범주를 넓혀 외로움에 초점을 두고 대응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독일 역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두드러진 외로움 문제를 두고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는 2022년부터 외로움 대응 전략을 공식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 아래 다양한 사업에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일례로 60세 이상 노인에게 은퇴 후 일상, 취미활동, 자원봉사 등 다양한 활동에 대한 체계적인 상담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도입됐다. 또한 세대를 넘어 고립 위기에 놓인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자국 전역의 530개 ‘다세대의 집’을 바탕으로 모든 연령대의 시민이 공동식사나 문화·여가 프로그램 공유 등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방안도 폈다.

가족을 중심으로 일상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 사회도 가정 단위를 넘어서는 관계 네트워크에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가정이 중심이 되어 아이들을 양육하고 사회와 연결되어 있어 늘어나는 1인 가구들은 이런 가정 중심 사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며 “가정 이외에도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강화해 퇴직 후에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이용해 봉사할 수 있게 지원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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