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자 ‘신상 보호’ 필요한데…병원들 “주민증 내라”

탁지영 기자 2024. 10. 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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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시설 입소자들 의료급여증 외 신분 확인 요구받아
개인정보 노출로 2차 피해…“의료기관 교육 강화돼야”

건강보험 본인 확인 의무화 제도가 가정폭력 피해자의 개인정보 노출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입소자들은 대부분 의료급여 수급자라 건보 적용을 위한 주민등록증 확인이 필요하지 않은데, 이를 잘 모르는 병원에서 주민등록증을 내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전국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협의회가 취합한 사례를 보면, 서울·강원·전남·광주·대구·경북·부산·울산 등에서 보호시설 입소자가 병원에 전산관리번호로 받은 의료급여증을 냈는데도 추가로 주민등록증 확인을 요구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에선 입소자가 주민등록증을 제시하지 않자 의료기관이 진료를 거부한 일이 있었다. 경기와 인천에선 입소자가 응급실에서 전산관리번호로 진료받는 것을 거절당해 생년월일을 알려줬더니 진료 이후 입소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돼 다른 보호시설로 옮기기도 했다.

보호시설 입소자 중 국가가 의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 수급자는 주민등록번호 대신 보건복지부가 부여하는 사회보장 전산관리번호를 통해 의료급여를 받는다. 주민등록번호에 연결된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으면 가해자가 진료 기록을 열람해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분 확인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해 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쉼터 입소자가 전산관리번호와 신분증을 같이 내면 병원에서 추가로 시설 입소 확인서를 요구한다. 시설명에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보호 시설 등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아 낙인효과를 준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병원마다 일일이 설명하면서 진료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복지부와 여성가족부는 시설 이용자들이 대부분 의료급여 수급자라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신분증을 따로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본인 확인 의무화 제도 자체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신분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급여 수급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쉼터 이용자 중 의료급여 비수급자가 있는지는 파악해보겠지만 의료급여 수급자는 제도 대상이 아니라 개정이 필요한지는 조금 더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의료기관이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어 홍보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남희 의원은 “현장에서 혼란을 줄이기 위해 병·의원에 신분증 확인 대상과 예외의 경우 등에 대한 정확한 안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협의회는 “전산관리번호로 진료받는 내담자들의 개인정보 보호 및 신변 안전을 위한 유의사항 등을 병원에 고지하고 의료기관 종사자 대상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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