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백영호 특별전’, 그리고 문화예술 아카이브
‘기록사업’ 들여다볼 기회…‘문화재단 기록관’ 하세월
오는 15일부터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특별한’ 자리가 마련된다. 대한민국 대표 대중음악 ‘동백아가씨’(작사 한산도, 작곡 백영호, 노래 이미자) 발표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다. ‘백영호 특별기획전- 동백아가씨’는 오는 12월 8일까지 진행된다. 장소는 본관 2층 기획전시실이다. 노래 ‘동백아가씨’는 같은 이름의 영화(신성일·엄앵란 주연) 주제곡이다. 특별기획전은 3부로 구성된다. 1부(부산의 작곡가, 백영호)는 부산 서구 서대신동에서 태어난 작곡가 백영호(1920∼2003)의 생애와 작곡 활동을 조명한다. 2부(불후의 명곡, 동백아가씨)는 ‘동백아가씨’ 작곡 과정과 가수 이미자의 생애 및 가수 활동을 다룬다. 3부 ‘부산의 노래’는 1950년대 말 미8군 쇼와 캠프 하야리아(현 부산시민공원)의 밴드 음악, 마도로스 음악 등을 소개한다. 특별기획전은 ‘동백아가씨’의 작곡가 백영호 관련 아카이브의 종합편인 셈이다.
백영호는 단지 ‘부산 출신의 전설적인 대중음악 작곡가’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근현대 부산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존재감과도 같다. 국제신문에 ‘이동순의 부산가요 이야기’를 연재한 이동순 씨에 의하면 백영호의 성장 과정과 그 토대는 부산이다. 10대 시절 집을 나와 만주와 몽골 등지를 떠돌던 백영호는 1946년 내몽골에서 부산으로 돌아온다. 그는 부산 영도의 코로나레코드사를 거쳐 1953년 가을 서구 부민동 미도파레코드(지구레코드사 전신)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부산에서는 미도파와 도미도 두 레코드사가 대표적인 음반사로 치열하게 경쟁했다고 한다. 미도파의 계열회사 빅토리레코드의 운영자가 된 백영호는 부산에서 잇달아 곡을 발표한다. 이 무렵 ‘추억의 소야곡’(1955, 노래 남인수), ‘해운대 엘레지’(1958, 노래 손인호) 등을 히트시켰다. 서울로 간 백영호는 ‘동백아가씨’(1964)로 최고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어 ‘울어라 열풍아’(1965, 노래 이미자), ‘동숙의 노래’(1966, 노래 문주란), ‘여자의 일생’(1968, 노래 이미자) 등 히트곡을 ‘대량 생산’했다. ‘국민 드라마’의 원조 격인 ‘아씨’(1970, 노래 이미자), ‘여로’(1972, 노래 이미자) 등 TV 드라마 주제가 200여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설’의 특별기획전이 왜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열리게 됐을까. 유족이자 장남인 내과의사 백경권 씨가 선친의 모든 자료를 기증했기 때문이다. 기증 자료는 친필 악보, 음반과 대중음악 관련 자료 1만1265건 2만5766점에 달한다. 애초 알려진 ‘7000여 점’보다 3배나 많다. 그만큼 방대한 자료다. 더욱이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악보와 음반이 이처럼 체계적으로 수집된 적은 없다. 그래서 부산근현대역사관은 ‘백영호 기록화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는 기증자가 음악과 부산을 사랑한 선친의 자료를 오랜 세월 분류·정리하며 글로 남겼기에 가능했다. 백경권 씨는 2018년 12월 이후 5년여 작업 끝에 360쪽 분량의 ‘작곡가 백영호 평전’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이번 ‘백영호 특별기획전’은 지역 문화예술 아카이브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아카이브(archive)란 무엇인가다. 아카이브의 사전적 의미는 ‘소장품이나 자료 등을 디지털화해 한데 모아서 관리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손쉽게 검색하도록 모아둔 파일’이다. 디지털 기록의 저장·관리와 활용(검색)이 아카이브의 관건이다. 이 때문에 부산문화재단은 2009년부터 문화예술 아카이브를 진행 중이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부산문화재단 전자아카이브’(e-archive.bscf.or.kr)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 등록한 자료와 데이터베이스(DB)는 3만 건을 웃돈다.
문제는 부산문화재단 전자아카이브에 자료를 쌓기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재단 내부에서 생산한 자료조차 상시적으로 저장·관리할 여력이 없다. 지난달 30일 전자아카이브에 들어가 보니 최근의 자료 업로드 시점이 지난해 11월 28일이었다. 해당 자료 목록은 ‘재단 자료’ 24건, 연구보고서와 정책 자료 및 기타 자료가 82건이었다. 그렇다면 활용도는 어떨까. 마당극 운동가이자 병신춤 실력자인 ‘정승천’을 검색해봤다. 프로필에 나이, 생년월일 등이 보인다. 인물 소개에서는 ‘2011년 제22회 아시아 1인극제’가 ‘가장 최근’ 기록이다. 주요 활동사항, 주요 작품은 비어 있다. 최종 업데이트 날짜는 ‘2015.09.25.’이다. 벌써 9년이 넘었다. 등록자가 직접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다.
부산문화재단은 한때 지역 문화예술 아카이빙 사업으로 온·오프라인 플랫폼 구축을 구상한 적이 있다. ‘한성 1918’ 내 전담인력 배치, 전시 프로그램을 골자로 한 ‘부산문화예술기록관’ 운영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이 구상이 실행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창고 안에 마구 던져놓은 자료는 누구나 찾아보길 꺼린다.
오광수 편집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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