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문화차이와 한국의료

김동헌 온종합병원장·부산의대 명예교수 2024. 10. 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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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헌 온종합병원장·부산의대 명예교수

우리는 어린 시절 농경시대를 거쳐 커서는 산업화, 도시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농경사회는 사회적 압력이 지배하는 사회이고, 도시화된 산업 사회는 법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어떤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의 아버지, 할아버지 등 그 집안을 싸잡아 비난한다. 최악의 경우는 그 사회에서 축출당하기도 한다. 농경사회에서 집단인 마을로부터 축출당한다는 것은 대단한 형벌에 해당된다. 소속집단에서 벗어나게 되면 생활기반을 잡기가 너무 어려워 살아가기가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농경사회에서는 이 같은 사회적 압력이 무서워 매사 행동에 조심하고 양심을 지키려 애썼다. 그러나 도시화,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만나도 누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없게 되면서 사회적 압력은 매우 약해진다. 이런 사회에서는 당연히 법이 지배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이 아닌 지리적 구분으로, 동서양의 문화 차이는 철학적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사물의 본질을 분석하려는 경향이 강한 반면, 동양에서는 사물과의 관계를 중요시했다. 서양 문화는 개인을 중시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집단을 중요시하고 공동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또 서양에서는 행위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배려라고 여겼으나 동양에서는 직접적인 화법을 피하며 간접적으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동서양의 문화 차이는 마치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차이와 유사하다. 개인을 중시하는 서양 문화는 식사와 음주 행위에서도 나타난다. 동양 사람은 식사 때 음식을 큰 그릇에 담아 놓고 함께 먹는 공동체적 생활양식이었고, 서양 사람은 개인 접시에 음식을 덜어서 먹되 같은 그릇을 공동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한식이라도 그릇을 따로따로 개인이 음식을 덜어서 먹게 되면 서양 사람도 좋아한다. 그러나 찌개와 김치 등 반찬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 놓고 함께 먹자고 하면 대부분의 서양 사람은 그날 한 끼를 굶고 만다.

이 같은 문화와 생활양식의 차이는 의료분야에서도 확연하다. 서양 사람은 개인의 지적 재산을 대단히 중요시 여긴다. 반면 동양 사람에게 지적 재산은 그냥 공짜로 공유해야 하는 공공재로 치부되어왔다. 예를 들어, 의사가 질병 치료와 예방에 대한 ‘상담’만 해주고 수가를 매기면 속칭 “도둑놈” 소리를 듣게 된다. 따라서 진료 시엔 반드시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거나 주사를 놓아야만 수가를 매길 수 있다고 여기는 문화 탓에 의약품이나 주사제의 과다 투여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시간과 약속에 대한 보상이 보편적이고 자연스런 서구권에서의 진료는 동양권과는 사뭇 다르다. 시간은 돈의 개념으로 인식되므로, 환자를 위해 회진을 하거나 외래에서 상담을 하면 지적 재산과 시간이 소모되는 개념이 합해져서 자연스럽게 진료수가가 매겨진다. 예를 들면 흔히 의대생과 함께 도는 병동 회진을 ‘서비스 라운딩’이라고 하는데, 이는 의학교육에 필요로 해서 이루어진 회진이므로 수가를 매기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복도에서 만나는 환자나 가족들이 질병 상태에 대해 묻거나 상담을 요청하면 의사는 반드시 사전에 약속부터 잡을 것을 요청하고 함부로 자기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무 곳이나, 아무 때나 의사를 만나면 붙들고 말을 걸기 일쑤이고 외래 진료실에도 사전약속 없이 불쑥 나타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부분 응대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사전 약속을 요구하면 아주 불친절한 의사로 낙인찍힌다. 서구권 의사들은 근무 시간의 개념이 철저하고, 약속 없이 찾아오는 환자는 상담하지 않는다. 개인의 사생활과 시간은 결코 타인에게 간섭받지 않으려 하고, 혹시라도 자기의 시간을 할애하게 되면 반드시 돈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이런 이유로 서양의 의사들은 단위 시간당 진료하는 환자수가 우리나라에 비해 턱없이 적다. 우리나라 의사 한사람이 서양 의사보다 몇 배나 많은 일을 하는데 비해 보상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K-Medi(한국의료)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성적이 세계에서 최고의 수준으로 자랑할 만 하다. 여기에 우리나라 의사들의 헌신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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