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챗지피티에게 물었다. 산다는 건 뭘까?
“산다는 건 뭘까?”
챗지피티(Chat GPT)에게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글이 쏟아졌다. 텅 비어 있던 화면이 불과 1, 2초 만에 AI가 작성한 답안으로 가득 찼다.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다. 만약 친구에게 물었다면 친구는 생각을 고르느라 잠시 침묵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단박에 이런 물음이 되돌아올지도 모른다. “니 미쳤나?”
그 어떤 것을 묻든 재깍재깍 답을 정리해 떠먹여 주는 AI의 시대. 문제의 해답을 얻고자 할 때 사람 앞에 서기보다 컴퓨터 앞에 앉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사람에게 질문하기를 포기하고 AI와의 대화로만 살아가게 되지는 않을까.
지난 9월 말은 부산문화재단이 개최하는 부산문화예술교육 페스티벌 주간이었다. 동구문화플랫폼 실내외 공간에 문화예술교육단체의 체험프로그램 부스가 차려졌다. 나도 그중 한 부스를 맡아 ‘Reply, 청춘의 물음표’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청춘이 품은 질문에 누군가 정성껏 응답하고, 그 답이 다시 청춘에게 전달되는 연결의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질문의 종류는 다양했다. 일상적인 고민에서부터 직장 생활의 어려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질문까지. 수십 개의 질문지를 마주한 사람들 반응 또한 다양했다. 한 중년 여성분은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라는 질문을 붙잡고 한참이나 답을 적어 내려갔다. 엄마 손을 붙잡고 부스에 놀러 온 아이들은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웃어 본 게 언제였을까?”라는 질문에는 “친구랑 놀 때요!”, “나는 대체 언제 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일요일에요!”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부스 방문객들이 답을 쓰고 고이 잘 접어둔 쪽지들은 행사가 종료된 후 질문 당사자들에게 다시 전달됐다. 쪽지를 펼쳐보는 청춘들의 표정에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답하는 사람이나, 그 답을 받아본 사람이나, 오랫동안 얼굴에 웃음이 머무는 시간이었다.
사실 예전의 나는 ‘질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질문으로 인해 상처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 취업했니?” “월급은 얼마나 받니?” “애는 왜 안 낳으세요?” 이러한 질문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서서히 누군가에게 질문하기를 꺼리게 됐다. 좋은 질문을 고민하는 것보다는 침묵을 택하는 편이 훨씬 쉬우니까.
그러나 세상에는 듣고 싶지 않은 질문만큼이나 듣고 싶은 질문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서로 더 많은 질문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최근 화제작인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아시는지. 그 프로그램에서 심사를 맡은 안성재 셰프는 도전자의 음식을 먹기 전에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 요리는 어떻게 먹어야 맛있나요?” “이 음식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는 어디인가요?” 그가 기대하는 것은 요리를 만든 사람의 ‘의도’다. 칼질 기술이나 염도의 조절, 재료의 익힘 정도를 평가하기에 앞서 ‘의도한 바가 전달되었는지’를 최선을 다해 파악하는 것이 그의 심사 방식이다. 비록 그것이 도전자의 당락을 결정짓는 예리한 질문이라 할지라도, 그 질문을 받는 당사자는 기쁘지 않았을까. 자신이 고민해 온 시간을, 한 접시에 담긴 의도를 누군가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말이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챗지피티는 나에게 이런 답을 주었다.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은 철학적이고 개인적이며,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은 오랫동안 인간의 관심사였고,…” 철학적 관점, 종교적 관점, 심리적 관점을 요목조목 짚어가며 친절하게 답을 들려주던 AI는 질문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결국 ‘산다는 것’은 각자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의미를 찾고 있나요?”
더할 나위 없는 명답이다. 아니, ‘명질문’이다. 모호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이제 이런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서로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의미를 찾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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