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10> 40박 41일간 지리산 유람길에 나섰던 근대 유학자 김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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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소령, 유태령당전.
위 문장은 근대 유학자 우천(愚川) 김회석(金會錫·1856~1934)이 1902년 2월 16~3월 27일 40박 41일간 지리산을 유람한 후 지은 '지리산유상록(智異山遊賞錄)'에 수록돼 있다.
김회석은 칠불암에서 토끼봉(1,535m)으로 올라가 연하천을 거쳐 벽소령으로 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면 토끼봉에서 벽소령까지는 그가 앞서 걸었고, 122년 후에 필자가 뒤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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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是謂碧霄領, 嶺高押天·시위벽소령, 영고압천
“… 동쪽으로 작은 고개를 넘으니, 커다란 고개가 앞에 다가섰다. 이 고개를 벽소령이라 하는데, 고개가 높아서 하늘에 꽂힌 듯했다. 길이 바위틈으로 나 있고 나무가 울창해 간신히 부여잡고 간 것이 수십 리나 되었다. 비로소 정상에 오르니 하늘 위에 있는 듯해 시야가 훤했다. … ”
… 東踰小領, 有泰嶺當前. 是謂碧霄領, 嶺高押天. 逕在巖石間, 樹木森鬱, 艱辛躋攀者, 殆數十里. 始到頂上, 如在天上, 眼界敞豁.
… (동유소령, 유태령당전. 시위벽소령, 영고압천. 경재암석간, 수목삼울, 간신제반자, 태수십리. 시도정상, 여재천상, 안계창활.)
위 문장은 근대 유학자 우천(愚川) 김회석(金會錫·1856~1934)이 1902년 2월 16~3월 27일 40박 41일간 지리산을 유람한 후 지은 ‘지리산유상록(智異山遊賞錄)’에 수록돼 있다. ‘지리산유상록’은 그의 문집인 ‘우천문집(愚川文集)’ 권 4에 있다. 그는 경남 거창군 가조면 도산(道山) 마을 출신이다. 할아버지 김병의에게 배우다 송병선(宋秉璿·1839~1912) 문하에서 수학했다. 그의 지리산 유람에는 스승 송병선 등 10여 명이 동행했다.
그의 유상록의 첫 문장에 보면 충북 영동군 학산면에 서암산방(西巖山房)을 지어 그곳에서 강학하던 스승 송병선이 함께 지리산에 가자는 편지를 보내왔다. 김회석은 그 길로 서암산방을 찾아가 하룻밤 묵고 2월 16일 스승을 모시고 출발했다. 3월 20일에 쌍계사에서 불일암에 올랐다가 국사암을 거쳐 목압서사 앞으로 내려와 계곡을 따라 칠불암(현 칠불사)에서 1박 한 후 3월 21일벽소령(1,340m)에 올랐다.
필자는 지난 4, 5일 1박 2일간 노고단(1,507m)~연하천대피소~벽소령~의신마을 구간 산행을 했다. 필자와 대개 1주에 한 차례씩 지리산을 산행하는 여기성(76) 선생과 동행했다. 연하천대피소에서 1박을 한 뒤 벽소령에서 두어 시간 놀다 삼정마을로 내려와 의신마을로 빠졌다. 김회석은 칠불암에서 토끼봉(1,535m)으로 올라가 연하천을 거쳐 벽소령으로 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면 토끼봉에서 벽소령까지는 그가 앞서 걸었고, 122년 후에 필자가 뒤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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