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명물 ‘눈’과 ‘쌀’로 술 빚어 日 굴지의 주류기업 성장
- 매년 눈이 3m는 쌓이는 ‘설국’
- 니가타 미나미우오누마의 회사
- 지역대표 특산물인 쌀로 빚은 술
- 눈 1000t 채운 창고에서 숙성
- 훌륭한 술맛에 좋은 스토리까지
- 양조장 견학 등 관광산업과 연계
로컬을 활용하고, 로컬을 살찌우는 건 지자체나 로컬 크리에이터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본 홋카이도와 함께 설국(雪國)으로 유명한 인구 210만 명인 니가타현에는 기업 주도의 성공 사례가 수두룩하다. 국제신문은 ‘눈’과 ‘쌀’을 활용해 일본 내 최대 수준의 주류기업으로 성공한 ‘핫카이산 주조’를 찾아 그 비결을 살펴봤다.
▮골칫거리 눈을 활용해 사케를
지난 1일 일본 니가타현 미나미우오누마시 ‘우오누마 노 사토’의 사케 보관소에는 거대한 눈덩이가 냉기를 내뿜고 있었다. 눈덩이는 창고 중앙에 위용을 뽐내고 있었고, 온도계는 0.6도를 가리켰다. 눈은 하얀 빛깔이 아니라 절반 이상은 흙갈색을 띄고 있었는데, 이는 공기 중 먼지가 붙어 생긴 현상이다. 핫카이산은 매년 2월 중장비를 활용해 1000t에 달하는 눈을 이 단열 창고에 채운다. 8개월 여가 지난 이날은 35% 눈이 사라지고 65%가 남아 있었다.
2013년 지어진 이 사케 보관소는 ‘핫카이산 유키무로’라고 불리는 시설이다. 이 눈덩이가 발생한 냉기는 사케 저장 탱크와 건물 내 판매시설을 돌아 덕트를 통해 다시 이곳으로 와 차가워진다. 이런 방식으로 핫카이산은 2만ℓ짜리 사케 저장탱크 20개를 일 년 내내 3~5도로 식힌다. 온도 변화나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냉각 방식일뿐더러 정전에 대한 걱정 없이 사케를 부드럽게 숙성한다.
‘유키무로’라고 불리는 천연 냉장 보관 시설은 눈이 많이 내리는 이 지역의 전통적인 방식이다. 미나미우오누마시는 산지의 계곡에 있고, 겨울에 적설량이 상당하다. 소설 ‘설국’의 배경이 된 것도 바로 이 지역이다. 미나미우오누마 사람들은 과거 여름에 음식이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눈을 활용했다. 눈을 짚으로 덮어 천연 냉장고로 활용했고, 눈을 잘라서 얼음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유키무로는 크게 음식을 눈 속에 직접 넣어 식히는 ‘카마쿠라’ 방식과, 방 안에 눈을 채우고 음식을 차가운 공기 속에 보관하는 아이스박스 형태인 ‘히무로’ 방식이 있다. 핫카이산은 히무로 방식을 사용한다. 유키무로는 8세기에 쓰인 ‘일본서기’에 처음 등장하는데, 1950년대 전기냉장고가 개발될 때까지 계속 사용됐다.
유키무로는 현재 ‘준마이 다이긴조’라는 사케를 냉각하고 있다. 이 사케는 3년과 8년 산이 있다. 눈을 활용한 냉각 방식이 실제 술맛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핫카이산 생산부 야스시 타나무라 시니어 디렉터는 “사케 숙성에는 일정한 온도 유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유키무로는 이런 부분을 보장해 준다. 또 이 특별한 숙성 방식은 사케를 상쾌하고 다양한 풍미를 내게 하기 때문에 식사와 함께하면 완벽한 페어링을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핫카이산 주조의 야노 요코 기획실장은 “이 지역에는 눈이 매년 3m는 쌓인다. 하루에 80㎝가 내릴 때도 있다. 지긋지긋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이 지역적 자산을 술에 적용하기로 했다”며 “술맛도 좋을뿐더러 마케팅을 위한 스토리텔링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역 쌀 함께하는 로컬기업
이 지역의 또 하나의 명물은 쌀이다. 국내에서도 알려진 고시히카리 쌀의 고향이 바로 니가타현이다. 고시히카리는 밥을 지었을 때 새하얗고 우수한 광택으로 인기가 높다. 일본의 전체 벼농사 중 3분의 1가량이 고시히카리를 재배한다고 알려졌다. 특히 미나미우오누마 지역 고시히카리는 일본에서 선물로 주고받을 정도로 최고급이다. 핫카이산조차 미나미우오누마 고시히카리는 비싼 값 때문에 술을 만드는 데 사용하지 못한다. 대신 니가타현에서 생산하는 지역 양조용 쌀을 사용한다.
핫카이산은 ‘신미제(新米祭)’라는 행사를 매년 개최해 미나미우오누마 지역 쌀을 알리고 있다. 가마에 새 쌀로 밥을 짓고, 방문객을 대상으로 이 밥을 시음하게 함으로써 지역의 대표 특산물을 홍보하는 것이다. 또 회사 소유 논에 벼를 심는 행사도 진행한다.
1922년 이 지역에 설립된 핫카이산은 사케를 주종으로 하는 종합 주류회사로, 맥주 일본소주 위스키도 생산한다. 한 지역에서 100년 넘게 사업을 해 온 셈이다. 핫카이산은 본사 외 사케·맥주 등을 생산하고 보관하는 양조장을 테마파크 형태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우오누마 노 사토’라고 불리는 이곳은 약 23만1400㎡(7만 평)에 이르는 데, 총 14개 건물이 있다. 사케 생산 시설, 소주·매실주 생산시설, 연구동을 제외한 모든 시설을 견학하거나 둘러볼 수 있다. 유키무로도 약 5000원을 내면 견학하고 사케를 시음할 수 있는 투어가 가능하다.
이 특별한 양조장에는 ▷맥주 바 ▷위스키 등 증류주 판매 시설 ▷핫카이산을 담그는 물을 사용한 빵집 ▷유키무로에서 저장된 고기와 소시지 판매 시설 ▷과자 공방 ▷화과자 판매점 ▷에도 풍의 메밀면 판매점 ▷지역 제품을 활용한 조미료와 식품점 ▷카페 등 20개 시설이 입점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특별한 곳은 일본식 주먹밥 오니기리를 판매하는 ‘니기리메시 뎃펜’이다. 이곳에는 미나미우오누마 고시히카리를 사용한 오니기리를 맛볼 수 있다.
지역성을 강화해 기업과 상승효과를 내는 것은 부산의 기업도 참고할 만하다. 이에 대해 핫카이산 야노 실장은 “방문객이 이 지역의 향수와 사계절을 느끼고, 지역 특산물을 맛보게 할 목적으로 양조장을 테마파크 형태로 조성했다. 주조회사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지역을 사랑해서다”며 “손님들도 이 지역을 사랑하게 되면, 결국 핫카이산까지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년 KPF 디플로마-로컬 저널리즘 과정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