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노동자, 참사 희생자…고난받는 이들과 연대는 성경 가르침”

강성만 기자 2024. 10. 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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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35년 맞은 ‘고난함께’ 전남병 사무총장
전남병 사무총장이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경기 하남 선한이웃교회 전남병 담임목사는 올해로 3년째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고난함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감리교단 목회자와 교인 중심으로 1989년 5월 꾸려진 고난함께는 설립 이후 비전향장기수와 해고노동자, 사회적 참사 희생자 등 그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고난을 겪는 이들 옆을 지켜왔다.

1990년 무연고 장기수 후원에 나선 이 단체는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장기수 어르신들을 모시고 ‘효도 나들이’를 했다. 2000년에는 장기수 42명의 인터뷰가 담긴 ‘비전향 장기수 백서’도 냈다. 해고나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찾아 예배를 드리는 ‘고함’ 기도회도 2013년 시작해 200회 이상 이어왔다.

2010년 고난함께 활동을 시작한 전 목사가 지난 몇 년 해마다 참석하는 거리 기도회는 평균 150회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유족들과 함께하는 ‘고함’ 예배는 물론 다른 기독교 사회단체들과 연합해 드리는 거리 예배에도 참석한다.

지난 2일 서울 서대문역 근처 사무실에서 만난 전 목사에게 교인들은 ‘밖으로 도는 목사님’을 어떻게 보냐고 하자 이런 답이 나왔다. “우리 교회는 태극기 성향부터 조금 진보적인 분까지 교인들 스펙트럼이 다양해요. 그래도 최소한 목사가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신뢰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설교하는 대로 사는 것 같다고요.” 어떤 설교냐고 하자 그는 “제가 가난한 목사가 되겠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라고 답했다.

후원회원이 약 200명인 고난함께는 유급 실무자 넷에 활동가를 가리키는 일꾼이 20~30명이다. 산하에 평화교회연구소(2015년 설립)를 두고 있다. “고난함께는 젊은층 비율이 가장 높은 기독교 사회단체입니다. 고함 예배에 많을 때는 일꾼 등 100명까지 나옵니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한 고난함께 회원들. 전남병 사무총장 제공
고난함께는 스텔라데이지호 유족과도 오랜 기간 연대해왔다. 전남병 사무총장 제공

2022년부터 2년 동안 기독교 사회단체 14곳 연합체인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상임대표도 지낸 그는 “2010년대 들어 일반 시민사회 단체들과는 달리 기독교 사회단체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역량도 커졌다”고 했다. “기독교 사회단체들이 전보다 훨씬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제 몫을 하는 것 같아요. 사회선교 역량이 많이 커졌죠.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을 욕하지만, 여기에는 전광훈 목사 이런 사람들이 기독교를 과대표 하는 측면이 큽니다. 기독교인 중 소수이지만 그래도 사회를 좋은 쪽으로 바꿔가기 위해 관심 갖고 연대하는 분들이 계속 나옵니다. 고난함께가 35년 활동을 이어온 힘이죠.”

양심수 후원에서 시작한 고난함께는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을 쏟으며 3가지 원칙을 세웠단다. 대중의 관심이 떨어지는 이슈를 택해, 해결될 때까지 옆을 지키고, 마무리되면 조용히 떠난다는 것이다. 지금도 매주 고함 예배를 드리는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유족이나 서울 명동재개발 2지구 세입자들도 “모든 길이 막혔을 때” 그들과 연결되었단다. “파인텍 노동자들과는 7년을 같이 했습니다. 한겨울에 파인텍 해고 노동자들이 고공 농성을 하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앞에서 기도회를 할 때 성찬에 쓸 포도주가 꽁꽁 얼어붙기도 했죠.”

감리교 목회자·신도 중심으로
1989년 양심수 후원 계기로 설립
지난 10여 년은 노동 문제에 초점
대중 주목 떨어지는 현장 찾아
문제 해결될 때까지 ‘연대의 끈’
“연 평균 참석 거리 기도회 150회”

그는 고함 예배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짜 선교가 아닐까 생각한다고도 했다. “처음 그분들을 찾았을 때는 혹 전도하러 온 것은 아닌가 의심해요. 그러다 1년쯤 뒤에는 설교 끝에 ‘투쟁’ 대신 ‘아멘’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고함 예배의 현장 증언이야말로 기독교 간증이고 진짜 설교이죠.”

그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말 고난함께 후원의 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세월호 희생자인 예은이 엄마 박은희 전도사님이 참석해 생전에 예은이에게 매달 5만원 용돈을 줬으니 그 돈을 고난함께에 후원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참사 이후 우리 옆에 있어 줘 감사하다면서요.”

고난함께의 ‘끝까지 함께한다’는 원칙의 선례는 바로 장기수 후원이다. 이 단체는 지금도 장기수 6명에게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전 목사는 35년 고난함께의 가장 큰 사회적 기여로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사회에 알리고 장기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에 보탬이 된 점”을 들었다. “장기수분들과 후원회원들이 편지 교류를 꾸준히 해서 책으로도 냈어요. 감옥의 정치범, 양심수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다리 구실을 우리 단체가 했죠.” 비전향 장기수 후원에 교회 내 반감도 있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고난에 처한 사람들 앞에서 좌우를 따져 연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기독교인은 신학적 관점에서 나섰기에 장기수들을 더 잘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받았다.

그는 2010년 하남에서 첫 목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빨리 교회를 성장시켜 유명한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단다. 그러다 6개월 만에 목회관이 확 바뀌는 사건이 생겼다. “교인이 한 명도 없는 지하층 교회였는데요. 6개월 지나 한 분이 처음 오셨는데, 자신이 예수라고 해요. 그날 밤 제가 하나님에게 따졌어요. 너무하다고요. 그때 내면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너는 헌금 많이 하고 전도에 헌신하는 사람이 많이 오면 좋고 예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면 싫은 거냐. 그 사람을 어린 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냐. 그 사람을 예수로 대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

이 내면의 소리를 들은 주에 마침 예수님은 헐벗고 굶주린 사람 모습으로 온다는 마태복음 본문으로 설교한 전 목사는 “고난받는 사람들이 교회 안보다는 밖에 많다”는 생각에 이르렀단다. “고난함께 활동은 2010년 말에 전도사인 아내의 권유로 후원 모임에 나가면서 시작했어요.”

고난함께는 매년 장기수들을 모시고 ‘효도 나들이’ 행사를 해왔다. 전남병 사무총장 제공

왜 기독교인은 고난에 처한 사람들 옆에 서야 할까 묻자 그는 성경의 가르침이 그렇다고 했다. “성경을 단 한줄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데요. 눈앞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안 보이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이웃사랑밖에 없어요.”

한국 교회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뭔지도 물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제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양자택일하라는 거죠. 둘 다 섬기는 게 물신화인데요. 이게 한국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했어요. 근데 교인들을 보면 십자가는 지지 않고 십자가를 보면서 위안만 얻으려 합니다. 하나님과 물질의 신인 맘몬을 같이 섬기려 해요. 이게 한국 교회의 세습과 대형화, 기득권화, 보수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계획을 묻자 그는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우선 사회적 참사 문제를 기독교계에서 전문적으로 고민하고 운동도 하는 단체를 육성하고 싶어요. 또 단체 활동 영역을 이주민 인권쪽으로도 넓히고 아울러 통일 이후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해 협력하고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도 연구하고 싶습니다.” 고난함께 후원 문의 (02)393-4662.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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