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라쿤·미어캣을 보호소에서 입양? 외래 야생동물 관리 구멍 뚫렸다

김지숙 기자 2024. 10. 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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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해마다 평균 10마리씩 ‘유기동물 보호소’ 입소
유기 처벌은 ‘0건’…재유기 우려에도 가정 재입양
라쿤, 미어캣 등 외래 야생동물이 ‘유기동물 보호소’에 들어왔다 재입양되는 일이 발생해 당국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라쿤은 탈출·유기 됐을 때 자연 적응력이 뛰어나 포식자로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커 ‘생태계 위해 우려종’으로 지정됐다. 어웨어 제공

라쿤, 미어캣 등 외래 야생동물이 ‘유기동물 보호소’에 들어왔다가 재입양되는 일이 발생해 당국의 추가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가 원서식지가 아닌 이런 동물들은 자연에 유입되면 생태계 교란, 자연 파괴 등을 일으킬 수 있고, 개인 사육이 부적합하기 때문에 다시 유기될 가능성이 크다.

6일 환경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생태계 위해 우려종 및 외래 야생동물 유기 관련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센터와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 입소한 외래 야생동물은 총 31마리였다.

연도별로 보면 2022년 10마리, 2023년 10마리, 2024년 11마리로 해마다 꾸준히 외래 야생동물이 야생에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 종별로는 라쿤 24마리, 미어캣 6마리, 프레리도그 1마리였다. ‘생태계 위해 우려종’으로 지정된 라쿤의 경우, 유기하면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2020년 6월 이후 처벌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환경부는 외래 야생동물 유실·유기를 관리하기 위해 지난 2022년 2월 서울, 부산, 제주, 울산, 경기, 강원, 충남, 전북, 경북, 경남 등 10개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중인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와 업무협약(MOU)를 맺고 야생동물 임시보호 체계를 구축했다. 라쿤, 미어캣, 프레리도그, 여우 등 4종의 외래 야생동물이 유기됐을 때,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가 임시 보호를 맡고 이후 국립생태원에 건립될 ‘유기 야생동물 보호시설’에 인계한다는 내용이다.

또 이런 야생동물을 이용한 전시·체험을 운영 중인 야생동물 카페·실내동물원들과 ‘카페 보유 라쿤 대상 등록 시범사업’ 협약을 맺어 라쿤에게 ‘등물 등록 내장 인식칩’ 시술을 진행했다. 당시 환경부와 협약을 맺은 업체는 11곳으로 라쿤 19마리에게 동물 등록이 이뤄졌다.

환경부는 지난 2022년 2월 10개 광역 지자체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와 업무 협약을 맺고 ‘외래 야생동물 임시보호’ 시스템을 마련했으나 협약 기간이 지난 2월 종료됐다. 환경부 제공

이 같은 정부 조처의 배경에는 기존 동물원·수족관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강화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이 있다. 동물원수족관법이 지난 2022년 12월 개정되며 기존 운영 중인 야생동물 카페·실내동물원들은 법이 정하는 종별 서식기준, 인력, 안전관리 계획 등을 충족해 2028년 12월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기가 발생할 가능성 등에 대비한 것이다. 이전까지 전시·반려 목적으로 국내에 들여온 외래 야생동물 유기에 대한 관리 시스템은 전무했다.

그러나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들과의 업무협약 기간이 올해 2월 종료되었고, 내장 인식칩 등록 시범사업 또한 단 1차례만 진행된 뒤 폐기돼 정부의 추가적인 조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와 유기동물입양플랫폼 ‘포인핸드’가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정부의 ‘외래 야생동물 유기 임시보호 시스템’이 시행된 이후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 외래 야생동물은 2022년 14마리, 2023년 15마리, 2024년 27마리였다.

정부가 이전에 정한 절차대로라면 이 동물들은 모두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로 이동해야 하지만, 동물보호센터의 인식 미비·환경부의 소극 행정 등으로 일부는 재입양됐다. 가정으로 재입양된 개체는 2022년 5마리, 2023년 5마리, 2024년 3마리(7월 기준)였다. 이는 환경부가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와 ‘임시보호 협약’을 맺은 4종만 헤아린 것으로 다른 포유류, 조류, 파충류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한 해 수백 마리에 이른다는 것이 단체들 설명이다.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입소해 지난해까지 센터에서 보호 받았던 라쿤들. 현재는 지난 4월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에 지어진 ‘유기·방치 야생동물 보호시설’로 이동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동물전문가들은 야생동물은 개체 구분이 어렵고, 가정 사육이 부적합해 재유기 우려가 크기 때문에 가정 입양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라쿤은 탈출·유기 됐을 때 자연 적응력이 뛰어나 포식자로 군림하며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커 유기 예방·처벌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라쿤 내장 인식칩 삽입 시범사업’은 고통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중단됐는데, 여러 야생동물 수의사들이 개와 마찬가지로 큰 고통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면서 “개체 식별, 유기 처벌 등을 위해 재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용우 의원은 “외래 야생생물 유기는 생태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당시 정부가 업무협약을 맺었던 것”이라며 “야생동물 카페나 동물원을 적극적으로 점검하고 내장 인식칩을 이식하는 등 외래 야생동물 관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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