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글과 사랑에 빠진 개그맨 정재환 [인터뷰]
개그맨으로 방송에 입문한 정재환씨는 한글운동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어머니와 같은 우리말글의 소중함을 더 많은 사람이 느끼고 깨닫길 바란다는 그는 우리말 중 ‘한글’, ‘행복’, ‘훈민정음’, ‘하하, 호호, 히히’ 등 주요 단어와 웃음소리에 들어있는 닿소리(자음) ‘ㅎ’을 가장 좋아한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한국인답게’ 제대로, 잘 말할 수 있길 희망한다는 정씨의 우리말글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글을 쫓는 삶
정재환씨는 1983년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TV예능 MC, 라디오 DJ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했다. MC 역할을 하다 보니 말 한마디의 파급력을 절실히 느꼈고 방송인으로서 올바르고 정확한 표현을 써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개그맨으로 데뷔해 15년 정도 개그맨으로 활동했고 5년 정도는 방송 진행을 했습니다. 개그맨으로 활동할 땐 주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웃기고 재미있게 할까, 어떻게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웃을까’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을 웃기는게 제 일이고 웃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죠. 그런데 진행자로서 역할이 바뀌면서 우리말 사용에 대한 방법을 저 나름대로 찾았고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한글과 사랑에 빠진 것이죠.”
정확한 언어를 사용할수록 의사소통도 자유롭다. 그러나 때때로 부정확한 언어로 얼버무려 말해도 대화 상대와의 친밀한 정도나 이야기하던 상황과 맞물려 알아듣고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 정씨는 “방송 언어는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사석에서 친구가 다소 횡설수설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을 갖고 있죠. 하지만 방송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청자들이 너그럽게 이해해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확한 언어를 사용해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말해야 합니다.”
20대 초반 방송과 인연을 맺은 정씨는 30대 후반 한글과 인연을 맺었다. 이전부터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깨달음으로 알음알음 해오던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대학에서 우리말글 역사를 공부하면서부터다. 그는 이 시점을 두고 “삶의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표현했다.
“한글이 어머니 같은 정말 좋은 글자라는 걸 느꼈습니다. 최현배 선생, 이오덕 선생 등이 쓰신 한글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을수록 ‘우리말’의 소중함이 커지더군요.”
정씨는 마흔 살이 되던 2000년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해 방학 없이 계절학기를 들으면서 학사를 3년 만에 끝냈고 동대학원에서 10년에 걸쳐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석사 논문 주제는 ‘한글 맞춤법 간소화 파동’, 박사 논문 제목은 ‘해방 후 조선어학회 활동’이었다.
“학교 입학에 즈음해 한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글의 역사, 우리말과 글의 역사가 궁금해 국문과가 아닌 사학과를 선택했고요.”
보통 사람을 위해 만든 글자를 지키는 보통 사람들
2000년은 만학도로서 학업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한글운동을 본격화한 해기도 하다. 1997~1998년부터 수면 위로 떠오른 영어공용화론에 대항하던 한글운동가들이 모여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키우고 가꾸자는 취지로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를 창립했다.
“처음 영어공용화론이 나왔을 때 일제 식민지를 버틴 한글이 영어와의 싸움이 시작되는 건가 싶었습니다. 강과 바다를 지키기 위해 환경운동을 벌이는 것처럼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움직이었던 것이죠.”
정씨는 한글문화연대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2007년 ‘동사무소 명칭 변경’을 꼽았다.
“2007년 동사무소가 동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당시 정부의 입장은 서류 위주의 행정업무 기구에서 폭넓게 시민들의 복지를 지원하고 문화활동 등을 포함하는 기관으로 확대하기 위해 센터(Center)로 바꾸겠다는 거였죠. 그런데 한글운동가들은 활동의 영역만 넓히고 이름은 그대로 유지하자는 입장이었고 길거리 서명, 기자회견, 1인 시위 등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결국 동사무소라는 이름이 사라졌는데 좌절의 아픔이 무척 컸습니다.”
한편 정씨는 최근 우연히 만난 외국인 관광객이 쓰고 있던 모자에 적혀 있던 ‘한국’을 얘기하며 한글의 활용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는 한글이 적힌 옷이나 신발, 모자를 착용하는 일이 참 드문데 ‘한국’이라는 글씨가 적힌 모자를 쓴 그 부부는 참 행복해하더군요. 서툰 영어로 말을 걸어 보니 스페인에서 온 관광객이었는데 우리나라 고유의 것에 매력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수원의 상점 간판을 볼 때면 여기가 과연 ‘정조대왕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외래어가 남용되고 있어 참 안타깝습니다.”
정씨는 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간판마다 적힌 외래어들을 한글로 표기하고 그런 노력이 수원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취지로 작년에 한글문화수도를 선언한 세종시에 대해서도 차곡차곡 한글을 도시의 상징으로 만들어 가길 바람을 드러냈다.
“세종시가 행정도시라는 것 외에 문화적인 요소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세종’이라는 이름 자체가 큰 콘텐츠거든요. 세종시 출범 당시부터 최근까지 한글 간판 우선 표기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점의 간판도 한글로 표기할 것을 조례 제정부터 차근차근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지역별로 한글마을, 한글거리는 조성돼 있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지키는 곳은 없거든요. 세종시가 한글문화수도로서 한글 관련 특화 도시가 되길 바라 봅니다.”
정씨는 2022년 8년간 강의하던 교수직을 내려놓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에 책임연구원으로 속해 있다. 더불어 한글문화연대 한국어학교 교장으로 한국으로 시집 온 결혼이주자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친다. 주로 읽고 쓰고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한글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태생적으로 보통 사람을 위해 만든 글자라는 것입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것도 우리들의 삶과 함께 살아온 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앞으로 큰 목표보다는 그저 계속 공부하고 싶습니다. 동네 할아버지가 됐을 때쯤엔 한국사,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 제가 공부한 것들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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