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 닮은 비엔날레…예술성과 자본력의 자연스러운 공모

한겨레 2024. 10. 6. 09: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비엔날레의 메시지와 내용이 대중에게 유포되는 방식은 패션쇼와 상당히 유사하다. 2024년 6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된 패션쇼. 2024년 9월 광주에서 개최된 광주비엔날레. REUTERS

▶이코노미 인사이트 구독하기http://www.economyinsight.co.kr/com/com-spk4.html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갤러리에는 대체로 잘 팔리는 유명 작가들뿐 아니라 잘 팔리지 않는 작가들도 함께 소속돼 있다. 이른바 주류 미술계의 떠오르는 작가들이다. 대체로 낯익은 회화가 아니라 동영상, 가상현실(VR), 게임, 설치 등의 다양한 신규 매체와 새로운 감성으로 동시대 이슈를 다루며 주요 전시에 초청된다.

갤러리 입장에서는 향후 이들 세대가 부를 축적하는 시점에 대비해 일종의 투자로 이들을 전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을 전속한다는 사실 자체가 갤러리의 안목에 권위를 부여한다. 또한 이 권위는 갤러리에 소속된 다른 작가들의 예술적 가치를 인증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안 팔리는 작가가 팔리는 대중적인 작가의 판매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 경우 한 작가의 예술적 가치는 같은 전속 갤러리 소속의 팔리는 작가의 가격을 통해 반영된다.

비엔날레의 메시지와 내용이 대중에게 유포되는 방식은 패션쇼와 상당히 유사하다. 2024년 9월 광주에서 개최된 광주비엔날레. 연합뉴스

소수 전문가가 작가 작품 평가·선별

칸트는 ‘아름다움’과는 달리 교육 여부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미적 감정을 ‘숭고’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프랑스 철학자 리오타르는 칸트의 정의 이후 미적 감정이 “더 이상 작품의 ‘발신자’의 심급이 아니라 ‘수신자’의 심급과 본질적으로 연결된다”고 봤다. 그래서 “발신자로서의 예술가를 위한 시학과 수사학은 수신자의 감정을 연구하는 미학으로 대체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말하자면 예술작품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예술적 감응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경험하는가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동시대 미술의 경연장인 비엔날레는 통상 전시감독이 시의성 있는 이슈를 주제로 정하고, 그 이슈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작품들로 전시를 꾸민다. 작가는 과거의 형식을 재탕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감성으로 이를 독창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런 작가의 작품을 평가하고 선별하는 것은 소수의 전문가가 한다.

여기서 기대하는 예술적 감응은 전시 주제가 동시대의 어젠다를 잘 보여주는지, 전시가 그 어젠다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는지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시 작품을 직접 보러 가는 주된 관중은 대중이 아니라 평론가나 기획자, 작가와 같은 미술 전문가들과 학생들이다.

그리고 비엔날레의 메시지와 내용이 대중에게 유포되는 방식은 패션과 유사하다. 패션쇼에 초대되는 주요 고객은 제니, 송혜교, 손흥민과 같이 대중적 영향력이 큰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다. 이들은 대체로 주요 패션 브랜드의 홍보대사이거나 광고모델로, 패션쇼에서 선보인 옷을 입고 화보나 광고 영상을 찍는다. 파리나 뉴욕의 패션쇼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소수의 셀럽에게 먼저 선보이고, 이들을 메신저로 삼아 대중에게 유포시킨다.

대중은 자신이 흠모하는 스타처럼 되기 위해 새로운 패션을 따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영향력 있는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 기획자는 유수의 전시 기획을 꿈꾸며 이런 큰 전시를 보면서 미술계의 새로운 동향을 참조한다.

이들은 물론 거리감을 두고 비판적으로 감상한다. 하지만 긍정과 더불어 비판적 평가를 통해서도 전시의 경험은 반복적으로 공유되고, 자연스럽게 동시대 미술 동향의 조성과 유포에 기여한다. 이렇게 소수의 전문가가 고른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의 기준은 전시를 본 소수의 미술전문가를 통해 미술계 전반, 그리고 대중에게 유포된다.

대중이 바로 반응해서 아무리 낯설고 이상해도 금방 익숙하게 만들어주는 패션계와는 달리, 미술은 시차가 오래 지속한다. 이에 주류 미술계와 미술시장 사이에 미적 감수성의 차이를 좁힐 시간을 벌어주고 완충하는 기능을 갤러리가 수행한다.

외견상 갤러리는 이미 미술사에 이름을 남겨 대중에게 익숙한 구시대 대가의 작품을 고가에 팔아 수익을 취하고, 동시대의 유망한 작가가 대가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순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미술계 전문가들이 선호하는 작가를 전속하고, 이들에게 전시 기획이나 전시 관련 글을 청탁하면서 미술계의 평가를 수용한다. 그러나 대중은 자신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는 작품에 지갑을 열지 않으므로 갤러리는 동시대 미술계의 권위를 빌려 오지만 이를 결코 내면화할 수 없다.

미술계 가치사슬의 최상위에는 컬렉터가 위치하지만 이들에게 작품을 공급하는 것은 갤러리다. 그리고 갤러리에서 이우환이나 쿠사마 야요이와 같이 대기 수요가 있는 작품을 구매하려면 다른 제품을 구매해 크레디트를 쌓아야만 한다. 에르메스 매장에서 버킨백을 구매하듯이 말이다. 또한 에르메스가 그러하듯, 이런 작가를 전속한 갤러리는 구매자가 몰리는 작가의 작품을 팔면서 갤러리 소속 다른 작가의 작품도 끼워 판다. 이렇게 갤러리 소속 작가와 컬렉터의 소장 작가가 유사해지면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공동운명체로 묶인다.

주류 미술계에서 미적 평가기준을 정하는 소수의 전문가가 선별한 작가를 키우는 방식은 본인이 기획한 전시에 초대하고 해당 작가에 대한 글을 쓰는 활동을 통해 이뤄진다. 최종적으로 이들을 미술계 정점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주요 미술관에서 개최하는 회고전이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려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기부금이 필요하다. 따라서 컬렉터와 갤러리의 지원이 없이 작가 혼자 이 비용을 감당하고 전시를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과는 결국 상업성으로 평가

이쯤에서 아마 의문이 들 것이다. 주류 미술계에서 미술의 평가기준을 정하는 소수 전문가는 누가 선발하며, 그들이 정한 기준의 정당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패션의 경우는 대중의 즉각적인 반응, 즉 매출로 바로 확인되고 검증된다. 하지만 대중의 학습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미술의 경우에는 그 소수의 수행능력, 즉 계속 좋은 전시를 해내는 능력으로 검증된다.

또한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부금을 끌어낼 수 있으려면 갤러리와 컬렉터의 기부가 사실상 좋은 투자가 될 수 있도록 작가의 상업적 성공을 보장해줘야 한다. 그래서 주류 미술계의 전문성, 즉 예술성은 갤러리와 컬렉터의 자본력과 자연스럽게 공모하게 되고, 그 성과는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상업성, 즉 돈이 되는가에 따라 평가받고 정의된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