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모든 경제는 환율 이야기다
편집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세상 친절한 환율수업
노영우, 조경엽 지음 | 미래의창 |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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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친절한 환율수업> 편집 마감날이기도 했던 2024년 7월31일, 일본은행이 15년 만에 금리를 0.25% 인상했다. 표지 문구로 써넣었던 ‘슈퍼엔저’를 끝까지 노려보다가 결국엔 그대로 놔둔 채 마감했다. 마감이라는 극적 장치(?) 덕에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여러 번 심장이 급락했던 나날이었다. 환율을 비롯해 여러 키워드를 검색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동안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내 소셜미디어 피드를 바꿔놓았고, 속수무책으로 ‘위기’ ‘경고’ ‘비상’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누워 무심코 소셜미디어를 열었다가 ‘원-달러 환율 비상, 제2의 IMF 외환위기 온다’는 섬네일을 마주하곤,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고 힘들어했던 내 어린 시절 부모님이 떠오르는 식이었다. ‘그때의 위기는 부모님이 버텨냈지만 지금 경제인구에 속해 있는 우리는 할 수 있나, 일본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미국은 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 개인의 잡념과 갑자기 업데이트되는 세계의 전쟁 소식은 생각보다 서로 가까웠다. 환율이라는 주제 앞에서 말이다.
환율은 숫자가 아니라 흐름이다
해외여행 혹은 주식 1주나 상장지수펀드(ETF)로라도 해외 투자가 일상화된 요즘, 환율을 접하는 빈도수도 높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환율을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순 없다. 환율은 단순히 하나의 수치가 아니라 세계 각국 간 관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얼마나 오르내릴지 예측하기 어렵고, 간신히 근사치를 얻었더라도, 그런 변화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책의 저자들은 집합성·상대성·모호성 자체를 환율의 특징으로 꼽고, 이를 바탕으로 환율이 정해진 숫자가 아니라 어떠한 경향을 띤 흐름이라고 이야기한다.
거칠게 이야기해보면 이렇다. 환율의 중심에는 달러와 미국이 있다. 이에 대한 세계 각국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도전하거나 협조적이거나. 전자에는 중국을 필두로 인도, 러시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있고, 후자에는 대표적으로 일본과 유로존 국가들이 있다. 이러한 두 진영은 새로울 것 없지만, 환율을 두고 보면 각국의 모습이 달리 보인다.
예를 들어, 중국은 신용카드 상용화 단계를 건너뛰고 디지털 결제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위조지폐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나라가 갑자기 모바일 결제 시스템의 비약적 발전을 보여주며 리프프로깅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기술로는 뒤지지 않을 또 다른 진영의 국가들을 보면 웬만한 도전정신과 의지로는 어려운 일임을 상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태도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만드는 차이는 엄청나다’는 말이 새삼 와 닿았고, 환율을 이해하는 하나의 큰 틀로서 ‘태도’를 바라보게 됐다.
분명히 해둬야 할 건 환율을 이해하는 이러한 시각은 지극히 거칠고,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어떠한 태도에는 의도가 있기 마련이고, 이를 현실로 구현하는 데는 여러 변수가 있다. 몇십 년 만에 금리를 올리고, 임금도 올렸으니 소비심리도 올라서 물가도 상승할 것이라 예상한 일본의 상황이 단적인 예다. 1985년 플라자합의(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5개국 재무장관이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엔화와 독일 마르크 강세를 유도하기로 결의한 조치)를 거쳐 지금은 ‘역플라자합의’라고도 말할 정도로 달라진 그 시간 동안 개개인도 변했다. 거시경제에서 흔히 생략되던 개개인의 마음이 이렇게나 국가의 경제와 세계 각국의 이목을 이끈다는 것, 책을 만들면서 재미있었던 부분이다.
반복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심각한 부분도 있다. 경제 상황이나 정책이 개개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방향에서 환율을 보면 조금 심각해진다. 정부 환율정책에 따라 한 국가 내에서도 이득을 보는 이, 손해를 보는 이가 나뉜다. 환율이 변해 물가 부담을 겪다가도 투자 수익은 좋을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과거 사례는 반면교사일 뿐, 환율을 끼고 성공방정식을 찾긴 어렵다. 그럼에도 환율을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면, 그렇다, 꼭 알아야 한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고, 이론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다면,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단연 환율이기 때문이다.
자유무역, 디지털 경제, 다국적기업 등 국가 간 경제적 경계가 무너지는 현실에서 국가 간 협력은 더욱 중요하다. 동시에 다른 나라의 경제·사회·정치적 위기는 그 나라만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모든 상황이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지금, 앞으로의 모든 경제 이야기는 곧 환율 이야기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이은규 미래의창 편집자 kyu.editor.359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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