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IDA “방위산업 발목잡는다···국내구매사업 ‘시험평가 비용 업체 부담’ 철폐 해야”[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이현호 기자 2024. 10. 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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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구매 제도 개선을 위한 시사점’ 논문
“시험평가 비용 부담 주체 규정하지 않아”
“선정업체 가격 우위 확보하려 저가 입찰”
“사업기간 늘고 비용만 상승하는 악순환”
국방기술품질원 연구원들이 강원도 다릿골시험장에서 저장탄약 상능에 대한 신뢰성 평가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방기술기품원
[서울경제]

군의 무기체계 국내구매사업 규정이 국내 방산업체에게 재정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물론 사업 참여를 억제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무기체계 구매 절차와 관련한 필수 사안을 명시한 ‘방위사업관리규정’이 참여 업체들에게 자체 개발한 무기체계의 시험평가를 운용시험평가 수준으로 요구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모두 부담하도록 명시해 시험평가에서 최종 탈락한 업체의 경우엔 투자한 비용을 아예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이다.

6일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김병주·최용호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글로벌 무기체계 구매 사례와 국내구매 제도 개선을 위한 시사점’ 논문에 따르면 국내구매사업에 있어 규격품(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은 국방규격품과 KS인증 등을 받은 민수규격품) 외에 방산업체 자체적으로 개발한 무기체계의 경우 시험평가 항목에 대해 정부에서 인증하는 평가 자료가 확보되어 있지 않아 소요군과 합참은 전력화에 문제가 없도록 3계절 시험, 환경시험, 내구도 시험 등을 포함하는 운용시험평가 수준의 시험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참여 업체가 국내구매 절차에 따라 자체 개발한 무기체계에 대한 시험평가를 진행할 때 비용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운용시험평가 수준의 시험평가를 위해 적어도 2세트의 무기체계 시제품이 필요하고 환경시험, 내구도 시험 등 각종 시험평가 수행으로 시제품과 인력, 장비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력발전업무훈령’과 ‘방위사업관리규정’ 등 국내구매사업와 관련한 규정에는 시험평가 비용 부담 주체에 관해 규정하지 않고 있어 참여 업체에서 관련된 비용을 고스란히 모두 부담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까닭에 국내구매사업에 참여했지만 탈락한 업체는 재무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을 비롯해 최종 선정된 업체 또한 가격적인 우위 확보를 위해 저가 입찰에 나서려고 하기 때문에 납품되는 무기체계의 품질 저하와 납기 지연 위험성이 생겨 최종 소비자인 소요군에게 오히려 피해가 갈 수 있다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김병주·최용호 연구위원은 “이 같은 불합리한 국내구매 사업 규정에 대해 업체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면서 국내구매사업 제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소요군이 원하는 해당 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임에도 시험평가를 위한 재정적 부담을 느껴 연구개발로 진행한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자 시험평가 비용을 업체에게 전가하는 행위가 오히려 도입하려는 무기체계의 도입기간을 늘리고 비용만 상승하는 악순환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방기술기품원 연구원들이 해군 함정의 품질보증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방기술기품원
자료: KIDA

실제 최근 국내 한 드론업체가 수주한 드론구매사업 과정에서 군이 요구한 성능에 맞춰 제작한 ‘근거리정찰드론’ 및 ‘해안정찰용 무인항공기’가 중국산 부품 사용과 시험평가 공정성 시비 등의 문제가 발생해 표류하고 있다.

이 이면에는 국내구매사업의 경우 시제품 제작과 시험평가 소요 비용을 업체가 모두 부담해야 하고, 2차에 걸친 가격 제안으로 지나친 저가 경쟁을 유도하는 현실에서 비롯된 병폐라는 게 방산업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한 방산 전문가는 “구매는 완성품을 전제로 하는 방식인데 방사청이 시제품 제작이 필요한 무기체계를 연구개발이 아닌 구매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유발되는 문제”라며 “국내구매사업의 경우 시제품 제작비를 포함해 시험평가 관련 비용을 모두 정부가 보전해줘야 방산기업의 참여 독려와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현재 표류 중인 드론구매사업 과정에서 방사청은 2∼3개 업체를 경쟁시키면서 시험평가용 시제품을 여러 대 요구했지만, 경쟁에서 탈락한 업체들은 아무런 보상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사청 관계자는 ‘현행 제도에서는 업체들의 시제품 제작비용을 정부가 보전해 주는 제도가 없어 방사청 입장에서 보상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미국과 호주 등은 획득제도에서 중간단계획득 절차가 우리나라의 국내구매사업 제도와 유사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미국은 업체들이 시험평가를 위한 시제를 무상으로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시제품 제작과 시험을 수행하고, 이에 대한 비용을 보상 받아 시험평가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줄여 준다.

호주 역시 시험평가를 위한 시제품 납품에 대해 업체와 별도의 계약을 체결하고 정부가 시제품 제작과 시험평가 비용을 부담함으로써 업체의 재정적 리스크를 줄이고 사업 참여를 촉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호주에 레드백 장갑차를 수출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시험평가용 시제품 제작비용을 모두 보상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2차에 걸쳐 가격을 제안하게 하는 종합평가 방식 역시 저가를 유도해 업체들의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종합평가 방식은 구매사업의 제안서 평가에서 최저가 경쟁의 문제를 보완하고 기술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했다. 정작 실제 평가에서는 결국 가격이 결정에 더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이는 기성품인 해외구매와 달리 국내구매는 군 요구 성능에 맞춰 신규로 제작하기 때문에 경쟁 제품 간의 성능 차이가 크지 않다. 또 성능평가는 대부분 평가위원이 정성 평가하기 때문에 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 반면 가격평가는 정량 수치로 상대평가하기 때문에 점수 차이가 상당히 크다. 즉 기술경쟁을 유도하겠다고 도입한 종합평가 방식이 예상과 달리 저가 경쟁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내구매사업은 거래가격이 형성된 완성품 구매와 달리 군 요구 성능에 따라 시제품을 신규로 제작하고 시험평가를 거쳐야 하므로, 연구개발 사업처럼 비용 평가의 하한선을 마련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해외의 경우 정부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 사업적 수익을 가져다주고 기술 개발과 시험평가 경험을 축적하는 유익한 기회가 되는데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는 위험한 투자가 되는 상황”이라며 “방사청은 방산업계가 지적하는 제도 개선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호 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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