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머리에 5만원 꽂았다가 재판행...소액인데 뭐 어때? 큰 코 다칩니다

이현승 기자 2024. 10.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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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마라톤 동호회 행사에 참석해 고사상 돼지머리에 5만원을 꽂은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경북 구미 갑)이 지난 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이런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받은 경찰은 사회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두 번 무혐의 처분을 냈으나 검찰이 재수사 요구를 거쳐 재판에 넘겼다.

우리 선거법은 금액에 상관없이 정치인의 기부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매년 선거를 앞두고 소액을 기부했다가 재판에 넘겨지는 예비후보·당선자들이 나온다. 이들 중 일부는 죄질에 따라 100만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받아 직(職)을 잃는다. 절도, 횡령 역시 훔치거나 빼돌린 금액이 몇천원, 몇만원에 불과해도 절도액이나 횡령액 이상의 벌금이나 실형을 선고받기도 한다.

소액 기부, 절도, 횡령을 했다가 재판에 넘겨져 수백만원의 벌금이나 실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 그래픽=손민균

◇ 3000원짜리 마늘 가지고 나갔다가 벌금 30만원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상점에서 3000원 상당의 마늘 1봉지를 주머니에 숨겨 계산하지 않고 나온 절도 혐의로 기소된 60대가 최근 항소심에서도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았다. A씨는 상고장을 낸 상태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작년 2월 10일 충남 천안 동남구의 한 상점에서 상의 주머니에 마늘을 넣고 계산하지 않고 나갔다가 상점 주인에게 붙잡힌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계산을 깜빡한 것이지 훔치려는 의사는 없었다고 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가 5만9000원 상당의 모자를 훔친 사람이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19단독 김성훈 부장판사는 2020년 B씨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하면서 “여러 사정상 재범 억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할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했다. 절도죄에 대한 벌금형 선고에 따로 양형 기준은 없지만 800만원은 비교적 고액 벌금이다. B씨는 절도죄로 세 차례 벌금형을, 한 차례 집행유예를 받은 상황이었다. 모자 절도는 집행유예 기간 중에 벌인 것이라 실형 선고가 불가피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B씨가 정신 병력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고액의 벌금형으로 선처한 것으로 보인다.

C씨는 작년 3월 20일부터 같은 해 4월 8일까지 80회에 걸쳐 20만원 상당의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을 훔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C씨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와 편의점 여러곳을 돌면서 한 번에 900원짜리 자유시간 초콜릿 1개부터 1만4000원짜리 페레로로쉐 초콜릿 1상자까지 다양한 물품을 계산하지 않고 가지고 나갔다. C씨는 이미 여러 차례의 절도 행위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기간에 또 절도를 저질러 8개월간 구치소 생활을 하고 나와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 변호인은 C씨가 가정환경이 어렵고 지적장애가 있다는 점 등을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집행유예 기간인 데다 여러 차례 범죄를 저지른 점, 피해자들이 용서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을 선고했다.

◇ 800원 횡령해 해고된 버스기사...KTX 요금 빼돌린 역무원도

한편, 소액을 횡령했다가 해고당한 뒤 법원에 구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도 있다. 지난 2022년 열린 오석준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이 됐던 일명 ‘800원 횡령 버스기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17년간 버스기사로 일한 D씨는 2010년 버스요금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횡령금액이 소액이라며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오 대법관이 재판장을 맡았던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는 2011년 기사를 해임한 버스회사의 처분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D씨가 횡령한 승객 1인당 400원은 운송수익의 거의 대부분에 이른다”고 했다. 이어 “단체협약, 노사합의서, 종업원징계규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운송수익금 횡령은 해임 외에 다른 징계처분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위와 같이 운전기사의 운송수입금 횡령에 대하여 엄격한 징계양정을 규정한 것은 다른 직원들과 달리 격리된 공간에서 혼자 일하는 데다 운송수입금이 버스회사의 주된 수입원이므로 횡령으로 인한 신뢰 손상이 큰 것임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소액 횡령이어도 승객과 버스회사와의 신뢰를 크게 손상시킨 이상 해고가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었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비정한 판결이라며 논란이 제기됐다. 이에 후보자 신분이었던 오 대법관이 당시 “결과적으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또 노인 고객을 속여 KTX 요금 일부를 빼돌린 KTX 역무원이 해고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지만 최근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전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E씨는 2020년 전북 지방 KTX 역 매표창구에서 한 노인 승객에게 정상운임에서 30% 할인되는 경로할인 운임을 현금으로 받아, 중증장애인 승차권을 끊어줬다. 중증장애인 승차권은 50%가 할인되는데 그 차액인 7800원을 본인이 챙겼다. 한국철도공사가 조사한 결과 E씨는 이런 식으로 2016년 8회에 걸쳐 10만1200원을, 2020년 20번에 걸쳐 23만1400원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는 2020년 말 E씨를 파면했고 다음 해 해고 통지를 했다.

E씨는 부당해고라며 소송을 제기하면서 “민원인들에게 돈을 지급했고 마일리지도 적립해줬으므로 얻은 이익이 없어 횡령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부당발권으로 인한 행위는 운임차액을 횡령한 것”이라며 “거스름돈 교부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운임차액을 착복하기 위하여 부당발권을 한 점을 보면 횡령이 아니라는 E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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