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분노, 예술이 되다[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차가 없어 다행이다. 서울 한 귀퉁이에 살며 오늘도 하는 생각이다. 서울은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다. 저녁 7시, 내가 사는 빌라도 주차장이 이미 만석이다. 겹쳐 대는 것은 물론이고, 밤이면 입구까지 차가 비죽 나와 있다. 이런 세상에 내 차 한 대를 더 보탠다? 굳이?
서울은, 아니 도시는 언제나 주차 전쟁이다. 차는 인간이 가진 물건 중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세로로 세워서 착착 대놓을 수도 없고 위로 박스 쌓듯 쌓아놓을 수도 없다. 내가 어릴 때 TV에서 말하길 미래에는 차를 접어서 주머니 안에 넣을 수 있을 거라 하더니 무슨 소리, AI가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는 마당에 아직 차는 백미러 접히는 게 고작이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는 대부분 자가용이 없던 시대에 만들어졌다. 다세대주택으로 여섯 일곱 가구가 사는 곳이라도 주차장 하나 없는 경우가 많다. 성북구에서 내가 2년간 살았던 3층집도 세 가구가 사는데 주차할 자리는 딱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담을 허물어서 약간의 공간을 낸 거다. 그 자리는 1층에 사는 집주인 전용이었다. 2층 세입자는 도저히 차를 댈 곳이 없으니 대문에 딱 붙여 차를 댔다. 덕분에 나는 차와 대문 사이에 끼여 옷을 더럽혀가며 간신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아, 주차할 데 없으면 제발 차 사지 말라고.”
(지방도 마찬가지다. 서울 사람들은 지방엔 땅이 많으니 주차할 곳이 많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런 걸 ‘전형적인 서울촌놈적 마인드’라고 한다. 천만의 말씀,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방은 자동차가 필수품이라 차가 더 많다. 서울사람은 3명당 자동차 한 대를 갖고 있는 반면, 지방은 2명당 한 대꼴이다.)
부천 원미동에 살 때도 그랬다. 원미동 역시 대부분의 오래된 주택밀집지역처럼 주차할 공간이 거의 없었다. 5층짜리 건물에 사람이 20명 넘게 살아도 차 댈 곳은 서너 군데도 안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영주차장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재주껏 골목에 차를 구겨 넣어야 했다. 이 과정이 평화로울 리 없다. 아침마다 사람들은 경적을 울리며 고래고래 외쳤다. “이공팔육, 차 빼! 이! 공! 팔! 육!! 차 빼!!!” 빵빵빵빵빵!!!
어느 날은 책상에 앉아 있는데 바깥에서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앗, 싸움?” 벌떡 일어나 당장 베란다로 튀어 나갔다. (나는 싸움 구경을 아주 좋아한다.) 나가보니 꽃무늬 홈웨어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60대 아주머니와 40대쯤 되어 보이는 건장한 남자, 둘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이 골목에서 30년 살았는데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야!” 하며 소리를 질렀다. 들어보니 슈퍼를 기준으로 위의 골목은 위에, 아래 골목은 아래에 차를 대야 한다고 한다. 그게 이 동네의 법칙이라는 거다. 남자는 그걸 어겼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는데요? 예?” 남자는 억울한 듯 자기는 몰랐다, 그런 법칙은 말도 안 된다고 외쳤다. “동네 사람들 그쪽 빼고 다 알아요~” 아주머니도 지지 않는다. 그러다 드디어 “참나, 아줌마가 법 만들었어요?”까지 나온다. 이 말을 시작으로 싸움은 격렬해졌다!
아주머니는 “아니, 근데 새파랗게 젊은 놈이…!” 하며 삿대질을 하고, 남자는 “놈? 어디다 놈이야!” 하며 받아친다. 싸움은 반말로 이어지고 그제야 두 집안에서 가족들이 뛰쳐나와 둘을 붙잡았다. (아니, 왜 이제 나온 거?) 남자는 씩씩대며 “어오, 확” 하며 손을 들어 올리고, 아주머니는 “때려봐, 때려봐! 나도 깽값 받아보게!” 하면서 악을 지른다. 살벌하다. 전형적인 골목 싸움이다. 결국 이 싸움은 경찰이 오며 막을 내렸다. “자자, 그만들 하세요~”
무궁무진하다,성난 인간의 창의력은
돌 묶은 주차콘 부터 수석 합체 볼라드까지
아마 아주머니는 그 후 자기 주차 자리에 망가진 의자라도 하나 갖다 놓았을 것이다. 의자에 커다랗게 ‘주차금지’를 써 붙였을 수도 있다. 그게 골목 싸움보다 효과적이다. 남의 주차를 막으려면 자리 자체를 봉쇄해야 한다. 사람들이 차를 대지 못하게 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초심자들은 A자로 생긴 주차금지 입간판을 세우는데 이건 스치기만 해도 금방 쓰러진다. 2만원 안쪽으로 살 수 있는 주차콘(고깔같이 생긴 것)도 바람에 날아가기 일쑤다. 그래서 보통 여기에 무게를 추가한다. 생수병이나 돌멩이 같은 것을 묶거나 얹어놓는다(그림A 참고). 그래봤자 태풍이라도 한 번 왔다 가면 이런 건 다 넘어지고 망가진다.
그래서 많이 당해본 사람들은 아예 부피를 키운다. 커다란 페인트통 같은 것에 시멘트를 붓고 그 위에 철근 꼬챙이를 꽂는다. 꼬챙이에는 나무판자를 철사로 칭칭 감아 고정하고 ‘주차금지’를 뻘건 글씨로 써놓는다. 튀어나온 꼬챙이가 불안해 보이면 장갑이나 장화를 씌우기도 한다. 이미 훌륭한 랜드마크다.
하지만 주차금지 설치물은 거기 두는 것만으로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내 차가 들어올 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적당히 무겁되, 옮기지 못할 정도로 무거우면 안 된다. 이럴 때 이동성 옵션이 나타난다.
서울 은평구 응암역 근처 골목에는 제법 유명한 주차금지 설치물이 있다(그림B 참고). 평범한 주차콘의 하반신을 날려버리고 그 아래에 회전의자의 바퀴 부분을 나사로 이어 붙였다. 멀리서 보면 얼핏 기계와 문어가 교배해서 낳은 혼종같이도 보인다. 이로써 그 자리를 점유하는 것과 이동이 편리한 것 두 가지가 동시에 해결된다. 이런 훌륭한 설치물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탐을 낸다. 그래서인지 목 부분에 쇠사슬을 매서 담에다 고정했다. 훌륭하다. 마치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남의 주차를 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급기야는 자신의 예술성을 드러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내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는 ‘수석 합체 볼라드’다. (볼라드란 차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바닥에 고정하는 설치물을 말한다.)
은평구 새절역 근처 한 아파트 앞에는 어디에나 있을 평범한 시멘트 정육면체 볼라드가 있었다. 어느 날 이 볼라드가 불쑥 커졌다(그림C 참고). 가까이 가서 보니 볼라드 위에 높이 80㎝가 넘어 보이는 커다란 수석을 세로로 붙여놨다. 밑면을 보니 실리콘을 쏴서 붙인 것 같다. 까만 바탕 위에 커다란 무늬가 보이고 형태는 중국 계림의 산봉우리 같다. 살 때 분명히 비싸게 주고 샀을 수석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기다란 수석 앞쪽에는 가로로 30㎝가 넘는 넓적한 두꺼비 모양의 수석을 붙이고 그 앞에는 주먹보다 더 작은 돌을 붙여놨다. 셋 다 실리콘으로 바닥을 고정하고 위에 니스를 추가로 발라놨다.
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차를 대지 못하게 하려면 이미 볼라드로 충분하다. 근데 왜 굳이 그 위에 수석까지 붙인 걸까? 갑자기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신나게 추리를 해본다. 가족들이 쓸데없는 돌 좀 갖다버리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버리기는 싫고 어디에 활용하고 싶었나? 아니면 방구석에만 있기 아까운 나만의 수석 컬렉션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깊이 간직해온 예술혼을 불태운 건가? (제발 이런 행위를 할 때는 밑에 작품명과 함께 작가의 의도를 밝혀주길 바란다.)
한참 생각을 하다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자기 집 앞에 있는 볼라드 위에 누가 앉는 게 싫었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사이즈도 넉넉하니 앉아서 담배 태우기 딱 좋게 생겼다. 마침 뒤쪽 벽에는 담배꽁초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도 함께 있다. 도시의 평평한 사물은 모두 의자가 될 운명이고, 의자가 되면 곧 흡연석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 달 후, 갑자기 수석이 아예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붙여놓고 왜 다시 없애버린 거지? 위험하다고 민원이 들어갔나? 아니면 누가 수석을 훔쳐 갔나? 그도 아니면 수석에 대한 애정이 다시 솟구쳐 거둬들인 건가? 알 수 없다. 나만의 미스터리가 하나 더 추가된다.
한편 아무 물체도 없이 불법주차를 막은 사람도 있다. 이 사람이 준비한 것은 달랑 종이 한 장. 그런데도 차는커녕 자전거나 오토바이 한 대도 건물 앞에 없다. 가까이 가서 읽어보니 종이에는 ‘낙하물 주의. 손해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주인 백’이라고 적혀 있다.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며 위를 본다. 아무것도 없다. 떨어질 게 없는데 뭐가 떨어진다는 거지? 혹시 이 ‘낙하물’이란 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피치 못하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차를 하면 이 글을 쓴 주인이 떨어뜨리는 것이 아닐까? 하여튼 여기에 차를 대면 차가 망가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짧고도 생생하게 전달했다. 이 주인은 천재다.
역시 인간의 창의력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돈을 쓰고 싶지 않은데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때 그 창의력이 발휘된다. 여기에 분노를 곁들이면 예술성은 폭발한다. 재료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게 주차금지 설치물이 될 수 있다. 그게 뭐가 되었든 메시지만 전달하면 된다. “여기 차 대지 마시오.”
끄덕. 차는 없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차를 사지 않길 잘했다.
▲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저서로는 <이다의 자연관찰일기> <내 손으로 치앙마이><걸스토크> 등이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이다|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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