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막자”…너도나도 금리 인하 나서는데 ‘집값’에 발목잡힌 한국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4. 10. 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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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이 기준금리를 낮추는 ‘글로벌 피봇’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개 국가 중 올 들어 기준금리를 내린 국가는 총15개 국가다. 75%이상이 금리를 내렸다는 얘기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을 비롯해 공동 통화정책을 펴는 유로존 국가들이 모두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낮췄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 신흥국들도 금리 인하 대열에 동참했다. 중국도 최근 기준금리를 낮추고 막대한 돈을 풀면서 경기를 띄우고 있다.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도 기준금리를 내렸다. OECD국가에 포함되지 않지만 칠레 필리핀 스위스 스웨덴 체코 헝가리 뉴질랜드등도 일제히 금리를 인하했다. 바야흐로 글로벌 피봇의 시대다. 이 같은 금리 인하의 흐름에 역행하는 국가도 있다. 일본과 터키는 금리를 올렸다. 일본은 오래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탈피하는 과정에서 금리를 올렸고 터키는 50%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 반면 한국과 호주 인도는 금리를 낮추지도 올리지도 않아 시대의 흐름에 뒷짐을 지고 구경만 하고 있다. 잘 하고 있는 일일까.

국가별 각자도생식 통화정책 두드러져
올해 각국의 통화정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항상 글로벌 통화정책을 선도했던 미국이 가장 늦은 시기인 9월에서야 기준 금리를 낮췄다. 금리를 올릴 때는 미국이 정책을 선도했지만 금리를 내리는 국면에서는 전혀 시장을 주도하지 못했다. 올해 기준금리 인하 국면은 브라질 칠레 멕시코 헝가리 체코 등 신흥국이 주도했다. 금리 인하시기가 빨랐고 인하폭도 컸다. 그만큼 미국의 리더십은 약화됐다. 미국은 연초부터 금리 인하와 관련한 군불을 뗐지만 실제 금리를 내리지는 않았다. 미국 금리 인하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굳이 시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 사이에 팽배했다. 미국과의 금리정책 디커플링도 올해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통화정책의 우선순위도 대외적 요인보다는 대내적 요인이 컸다.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낮추는 국가의 경제에 기대되는 효과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과의 금리차가 벌어져 국내 자본이 이탈해 신흥국의 환율이 오르고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통화가치의 급속한 하락은 시장 불안을 야기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다른 하나는 금리를 낮추면 국내 경기가 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경제성장이 촉진되면 통화가치는 오히려 오른다. 경기활성화로 통화가치가 안정되는 것이 금리인하의 베스트 시나리오다.

올 들어 두 가지 요인 중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이 금리를 낮췄을 때 이들 국가 외환시장의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같은 흐름은 환율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올해 기준금리를 6.5%나 낮추면서 상당히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폈던 헝가리 포린트화 가치(달러대비)는 9월말(연초대비 기준)까지 2.8% 떨어졌다. 또 올해 기준금리를 2.75%포인트 낮췄던 칠레의 페소화는 같은 기간 2.6%하락했고 올해 금리 인하 폭이 칠레와 같았던 체코의 통화가치는 1.2% 떨어졌다. 멕시코와 브라질도 올해 금리를 낮췄다. 이들 국가는 통화가치 하락률이 10%가 넘어 낙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통화가치 하락은 신흥국 입장에서는 충분히 감내할만한 수준이다. 인도네시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는 소폭 상승했다.
금리내린 국가들 성장률 상향조정
기준금리를 내린 것에 대한 효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OECD가 최근 발표한 경제전망에 따르면 캐나다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등의 성장률은 지난 5월보다 일제히 상향 조정됐다. 브라질은 5월 전망보다 1%포인트 높은 2.9%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고 영국의 성장률 전망치도 5월보다 0.7%포인트 올랐다. 통상 금리인하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6개월에서 1년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연초부터 금리를 내린 나라들은 이 효과를 어느 정도 보고 있는 셈이다. 반면 올해 내내 기준금리를 동결한 호주는 지난 5월 전망치보다 성장률이 0.4%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이 나라는 올해 1.1%의 저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도 같은 기간 0.1%포인트 하락해 올해 2.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OECD는 세계경제 성장률을 0.1%포인트 상향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의 성장률 전망치는 하향조정함으로써 경기가 예상보다 안 좋을 것임을 시사했다. 금리 정책에 따른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리 인하에 동참하지 못하는 나라의 사정도 제각각이다. 호주의 경우 경기는 저성장 국면이 진행 중이지만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OECD가 전망한 이 나라의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4%다. 미국 영국 유럽 등 국가들의 인플레 예상치가 2%대인 것을 감안하면 물가가 1%포인트 가량 높다. 경기보다는 물가에 정책 우선순위를 둬야 할 상황이다. 인도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6.7%로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물가상승률도 4.5%로 예상돼 전형적인 고성장 고물가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이 나라가 금리를 내린다면 경기과열을 불러일으킬 만한 상황이다.
집값에 발목잡힌 한국 통화정책
남는 국가는 한국이다.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인플레이션율은 2.4%로 예상됐다. 2025년 물가상승률 예상치는 2%다. 물가가 2%대로 안정됐지만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은 잠재GDP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내부적인 요인을 놓고 보면 금리를 내려야 할 때다. 대외적인 환경변화도 금리 인하에 우호적이다. 미국이 9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면서 달러당 원화 환율이 떨어지고 원화 값은 오르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환율의 과도한 상승은 금리 인하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환율이 하향 안정되면 금리를 내려도 대외적인 충격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감은 커지고 있는 반면 국제유가는 올 들어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때 배럴당 90달러까지 올랐던 국제유가는 7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국제유가에 민감한 한국경제 입장에서는 물가 불안을 한시름 던 셈이다. 다만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과 이스라엘의 보복 예고 등으로 전면전 염려가 커지며 유가가 한때 급등하는 등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는 건 변수로 꼽힌다.

이 같은 대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도 금리를 내려 내수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적절한 경제정책이다. 정부와 한국은행간의 효율적인 정책조합을 감안해도 금리인하가 적절해 보인다. 정부는 올 들어서도 사상 초유의 세수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정부가 재정을 통해 경기를 띄우고 서민생활을 지원하려고 해도 쓸 돈이 없다. 재정정책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에서는 통화정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외 여러 가지 경제 상황은 금리 인하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정작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에 미온적이다. 가계부채가 너무 많고 현재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이유로 지적된다.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값을 자극할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지역 부동산시장을 잡기위해 경제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을 활용하는 것은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형국이다. ‘금리인하- >가계부채증가- >부동산값 상승’의 악순환 고리는 대출 규제와 부동산 수급 등의 미시적인 정책을 통해 잡아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특히 현재 부동산 값은 상승은 2022년 이후 금리를 올리고 돈줄을 적극적으로 죄어야 할 국면에서 금리를 충분히 올리지 못한 것의 부메랑으로 볼 수도 있다. 한번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또 한 번 정책의 실기를 한다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매일 10분씩 늦게 가는 시계는 한 번도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수 없다. 반면 고장 나서 정지된 시계는 하루 두 번은 맞는다. 우리나라의 통화 정책이 매일 10분씩 늦게 가는 시계처럼 진행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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