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살 아기 울고 엄마는 분투…전단지 끼우고 급식소 일해 아파트 샀다

한겨레 2024. 10. 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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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어린이집 급식 조리사
경기 파주의 한 급식실에서 조리 노동자들이 집중청소기간 급식실을 청소하고 있다. 전국교육공무직노조 제공

저쪽 네거리에서 몸피 작은 희영(가명)씨가 언덕길을 오른다.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어린이집 급식 조리사로 9시간을 서서 일하고 나왔다.

“출근할 때는 부지런히 20분 걷는데, 퇴근할 때는 이제 천천히 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니면 아무 생각 안 하면서 걷죠.”

희영씨는 어린이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방수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모를 쓰고 토시와 장갑을 끼고 일할 준비를 한다. 지난여름 이렇게 장비하고 불 앞에 서면 줄땀이 났다. 냉방기도 소용없다. 가장 먼저 반마다 올려줄 식수를 끓여 식히고, 차례로 오전 간식, 점심, 오후 간식을 만든다.

“오늘은 시금치가 3㎏ 들어왔어요. 그런데 아기 시금치예요. 채소랑 과일은 씻을 때 식품용 소독제를 써요. 아주 꼼꼼하게 헹궈요. 아기 시금치는 길이가 짧으니까 양이 많잖아요. 다듬고 씻고 헹구는 데만도 시간이 오래 걸렸죠. 대신 시금치가 연해서 무쳐놓으니까 맛있더라고요. 애들도 잘 먹고요.”

삶고 조리고 볶고 찌고 음식을 만들어 배식하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정리하기를 세차례 반복하다 보면 일하는 사람은 도통 쉬지 못한다. 원생과 교직원 합쳐 150여명분을 희영씨 포함 조리사 둘이 책임지니 시간이 빠듯하다.

“오후 간식이 뭐냐에 따라 좀 더 쉬고 덜 쉬고 그러죠. 토막토막 쉬는데 다 합쳐도 한 시간 못 쓰죠. 그만큼 틈이 안 나요. 오늘은 오후 간식이 손 많이 가는 음식이라서 못 쉬었어요. 일 마치면 아무래도 좀 피로하죠.”

150명분을 둘이서

퇴근해서야 희영씨는 한숨 돌린다. 언덕에서 뒤돌아보면 저 멀리 높은 건물들 너머로 보이지는 않지만, ‘조리사 희영씨’ 이전에 ‘상담사 희영씨’로 2년, 9년, 3년 일했던 직장이 있다. 그때도 걸어다녔다. 스물 중반인 큰애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둘째가 유치원생이었으니, 출퇴근마다 잰걸음으로 바쁘게, 마음은 발걸음을 앞질러 달렸겠다.

“처음 2년은 파견직 아웃바운드 상담사, 나중 3년은 계약직 영업상담사로 일했어요. 중간에 택배 고객센터에서는 인바운드 상담사로 시작해 리더를 거쳐 신입교육팀장까지 9년 일했는데, 2016년 구조조정 한다고 해 그만두고 한식·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 고객센터는 직영 없이 용역업체를 두 군데 썼는데, 팀장은 상담사들이 퇴근하고 나면 남아서 민원을 처리해요. 날마다 한두 시간 야근은 기본이고, 밤 10시까지 남아 해결하는 날도 있었죠. 9년이 되니까 내가 소진됐어요. 더 나이 들어서도 텔레마케터로 일할 수 있을까 싶어 일단 조리사 자격증을 따두었죠. 근데 조리사도 해보니까 힘들어요. 힘 안 드는 일이 없겠지만.”

텔레 마케터. 한겨레 자료사진.

얼마나 힘드냐면, 패밀리레스토랑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어린이집은 처음인 희영씨가 3년차 일하는 동안 동료 조리사가 계속 바뀌었다. 경력자는 어린이집 규모만 보고도 일 강도를 가늠해 얼른 그만뒀다. 최저시급이지만 정규직이고, 호봉제에 수당과 처우개선비가 나오는데, 그것으로 보상될 게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희영씨는 지금 여섯번째 조리사와 일한다.

“내가 막 옮겨 다니는 성격이 아니에요. 일자리만 아니라 치과나 미용실도 한군데만 20년째 다녀요. 어린이집은 초기 한달 반이 아주 힘들었죠. 몸이 적응하는 기간이었나 봐요. 지금도 힘들죠. 일의 강도도 세고 보상이 더 되면 좋겠지만, 곧 정년이 오는 나는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4시간 근무하는 보조원이 투입돼 좀 낫거든요. 그 한 사람 있고 없고가 차이가 커요. 바쁠 때 둘이 하는 거랑 셋이 하는 거랑 바쁜 정도가 달라요. 처우개선비는 예전에 급식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요구해서 만들어졌나 보던데 그땐 내가 고객센터에 있을 때였겠죠.”

희영씨는 20대의 10년도 꼬박 한 직장에서 사무원으로 일했다. 결혼해 남매를 낳아 돌보고 살림하며 전업주부로 일할 때도, 늦은 밤이면 남편이 운영하는 신문보급소로 가 신문에 전단을 끼웠다. 일꾼 한 사람 몫이었다.

“애들이 두살 터울이니까 네살 두살, 다섯살 세살 이럴 때였어요. 애들만 재워두고 가서 일했죠. 남편 혼자 할 수 없으니까요. 그새 애들이 깨서는 엄마가 없으니까 얼마나 놀랐겠어요. 문 열고 막 뛰쳐나와서는 울고불고…. 좀 커서는 설명하면 인식하니까, 자다 깨도 자기들끼리 놀고 있더라고요. 그때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밤마다 보급소 나가서 광고지 끼우고 아침에 다시 출근해서 일했어요.”

새벽부터 밤까지 “노후 위해”

‘엄마 희영씨’는 얼마나 갈등했을까. 희영씨는 깨끗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애들이 자랐으면 했다. 이사 다닐 걱정 없게 우리 집을 얻고 싶었다. 마침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선댔다. 집에 볕이 환히 들고 바람도 잘 통하면 좋겠고, 학교 오가는 길도 안전하고, 녹지는커녕 가로수조차 없는 동네에서 나무를 보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일했다. “체력이 안 돼 힘들었다”면서도 지금까지 본업 외에 한 가지 일을 더 한다. 당시 대출을 최소한으로 해서 아파트에 입주하고 그 대출도 몇년 안 가 다 갚았다는데, 쉬는 토요일이면 예식장 뷔페에 나가 음식을 채우는 일을 지금도 꾸준히 한다. 준비부터 철수·정리까지, 새벽 6시 반부터 밤 9시까지. “노후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며.

퇴근길 집으로 가기 전, 희영씨가 들르는 곳이 있다. 택배사를 그만두고부터 다니는 곳이다. 희영씨 앞에 아무것도 안 붙이고 ‘희영’ 자신으로 있는 시간일까.

“체력 관리를 해야 하니까 일 마치고 헬스장에 들러요. 일주일에 최소 세번은 가요. 자전거 좀 타고 매트에 누워서 스트레칭 하면서 근육을 풀어주죠. 급식 조리사들이 일할 때 보면 (앞으로 움츠러들고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며) 이런 자세로 일하잖아요. 설거지해도 그렇고 밥해도 그렇고 뭘 해도 자꾸 이런 자세잖아요. 종일 서 있다 보니까 누워 있는 게 스트레칭이자 휴식이에요. 거기 가 있는 시간이 평정심을 갖는 시간이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고,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는 시간이기도 해요.”

퇴근길 끝, 희영씨가 사는 작은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부터 지낸 집이다. 찻길이 바로 앞이고 옆인데도 소음이 뚝 끊기고 고즈넉하다. 돈 버느라 아이들에게 밥도 제대로 해 먹이지 못했다고, 같이 있는 시간도 적었다고, 공부도 충분히 뒷바라지 못 했다고 했지만, 아니다. 작은 몸으로 엄청 큰일을 해온 희영씨다.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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