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소금밭 위 핑크빛 변신 ‘달큼·촉촉’…사로잡다, 입맛[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
지난 주말 맑고 높은 하늘은 그야말로 긴 여름을 지나 맞이한 가을의 대축제와 같았다. 유난히 주말만 되면 비가 추적추적 내린 올해의 날씨는 어디로 갔는지, 마치 새로운 계절과 함께 새로운 해가 시작된 것만 같은 화창함이다. 일 년 중 가장 놀기 좋은 시기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지난 주말에는 대전의 빵축제에서 목포의 국제남도음식문화큰잔치, 크고 작은 박람회와 페스티벌이 전국 곳곳에서 펼쳐졌다. 하나같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게 즐기고들 있는지, 깎은 손톱으로 분신술을 펼칠 수 있다면 다섯 개쯤 만들어 전국에 보내고 싶었을 정도다.
지금은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어딘가에 항상 팝업스토어가 세워지는, 가끔은 따라가기 벅찰 정도의 흐름을 보여주지만 이에 비하면 어린 시절의 하루하루는 조금은 단조로웠다. 그래서 일상에서의 탈출이 더욱 특별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가끔 부모님을 따라 지역축제를 찾는 것이 큰 이벤트였다. 아마 부모님도 그런 마음으로 온 가족의 특별한 시간을 만들고 싶어 바리바리 준비해 차에 올랐을 것이다. 화사한 벚꽃 구경을 하러 진해 벚꽃축제에, 생멸치들이 펄떡인다는 기장 멸치축제에. 지금도 기장에 방문해 멸치회와 멸치찌개를 먹으면 항상 그 사진이 가족 대화방에 올라온다. 그러면 예전에 함께 방문한 기장 멸치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 추억을 다시 한번 다 같이 풀어놓는다.
예전의 축제에서 지금의 팝업스토어에 이르기까지, 와글거리는 자리에 다녀온 소감은 다들 비슷하다. 주차할 자리는 없고, 사람은 너무 많고, 음식은 너무 비싸고, 정신없고 시끄럽다. 이런 불평의 레퍼토리는 하여튼 ‘집 나가면 고생이다’로 귀결된다. 그러니까 파랑새는 결국 집에 있었다는 결론이라고 할까. 중요한 건 이렇게 덥고 정신없었던 기억이 시간이 흐르면 파스텔톤으로 채색되며 모두가 웃음을 머금으며 곱씹는 추억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기억을 가진 가족이 하나둘씩 캠핑장에 모인다. 굳이 집 밖에서 불편한 경험을 하며 추억을 만들기 위해.
어린 시절 방문한 지역 축제와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음식은 대하 소금구이였다. 특히 제철의 싱그러움을 자랑하는 남해의 지역 특산물 축제는 수산물이 주제가 되는 곳이 많다. 지금은 여러모로 메뉴도 조리법도 다양해졌지만 예전에는 축제와 휴가를 대표하는 메뉴가 어딜 가나 있다는 느낌이었달까. 팬에 굵은 소금을 잔뜩 깔고 신선한 대하를 쏟아부은 후 김이 오르도록 찌면서 예쁜 분홍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본 기억이 생생하다. 왜 굳이 소금인지, 왜 이렇게 익히면 달콤하고 짭조름한지 궁금해하면서 채 식기도 전에 열심히 껍질을 깠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르 코르동 블루에 들어갔을 때도 소금 크러스트 메뉴를 배우는 날을 고대했다. 소금 크러스트는 우리가 흔히 먹는 대하 소금구이와는 조금 다르다. 시작은 기원전 4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소금에 물이나 달걀흰자 등을 섞어서 소금반죽을 만들어 그 안에 닭이나 채소 같은 식재료를 넣어 굽는 방식이다. 첫 학기가 시작되면 배울 요리 목록을 받는데, 그중에 소금 크러스트 닭구이가 있었다. 이건 도대체 왜 하는 것이고 맛이 어떤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배우고 난 후의 결론만 말하자면, 지금도 소금 크러스트 구이는 정말 좋아한다. 먹는 것도 좋지만 만드는 과정이 아이들 촉감놀이처럼 음식으로 장난을 하는 것 같아서 사람의 기분을 고양한다. 물론 이 귀찮은 과정을 굳이 하는 데에도 이유는 있다. 소금은 단열재 역할을 해서 오븐에 넣었을 때 그 속에 있는 식재료가 평소보다 천천히 오랫동안 익게 하고, 삼투압으로 자연스럽게 간이 배도록 한다. 건조하지 않고 촉촉하면서 풍미가 살아나게 하는 식으로 익히는 것이다.
다만 소금 간이 계속 배기 때문에 큼직한 식재료를 주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다 익힌 후에는 소금 크러스트를 빠르게 해체해야 닭이건 채소건 소태가 되지 않는다. 되도록 빨리 식탁에 차려서 좌중의 감탄을 이끌어낸 다음 후다닥 깨버려야 한다.
식탁이 화려해지는 소금구이
소금 크러스트에 비하면 우리식 소금구이는 아주 간편하고 효율적이다. 일단 소금에 수분을 첨가해 소금반죽옷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소금 크러스트는 만드는 것이 재미는 있지만 번거롭고, 식재료에 입히면 무겁고 축축하며 오븐에서 나온 직후에는 뜨거운 폭탄이나 다름없다. 오븐 같은 공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도 번거로움에 한몫한다. 가끔 프로젝트성 요리를 하거나 손님 초대를 할 때 꺼내게 되는 레시피랄까.
하지만 소금구이는 사실상 소금과 식재료만 있으면 어디서나 만들 수 있다. 오븐처럼 대단한 조리 기구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열원과 팬만 있으면 된다. 짧은 기간 많은 손님이 몰리는 축제와 같은 자리에서 선택하기에 제격인 셈이다. 그리고 그런 조건은 일상 속의 축제와 같은 캠핑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와르르 부어서 익히면 다들 신나 하면서 껍질을 까먹는 음식! 게다가 눈밭처럼 새하얀 소금과 분홍빛으로 곱게 익은 대하의 조화는 안그래도 자연광에서 뭘 차려도 맛있어 보이는 캠핑 식탁을 아주 화려하게 장식한다.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싶을 때 아주 편리한 음식이다.
대하 소금구이에서 바닥에 까는 소금은 고온에서도 녹지 않는 만큼 복사열을 천천히 전해서 새우가 타지 않고 고르게 익게 한다. 그리고 익으면서 생기는 수분도 소금이 흡수해 흥건하고 축축하지 않게 적당한 수분이 껍질 속에 머무르는 상태로 익는다. 잡내를 잡아 주는 것은 역할은 덤이다. 사용한 다음 소금을 거의 버리게 되는 것이 흠이지만 그래도 너무 얇게 깔면 대하에서 흘러나온 수분이 바닥에 닿아 소금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지니 어느 정도 두께로는 깔아주는 것이 좋다.
또 한 가지, 소금구이의 소금은 소금 크러스트와는 달리 짧은 시간 껍질째 익히고 거의 바로 새우를 들어내 먹기 때문에 간하는 역할은 거의 하지 않으므로 원하는 소스를 곁들이는 것이 좋다.
대신 소금 크러스트를 만들 때처럼 소금에 가향 재료를 섞는 시도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가장 만만하게 넣기 좋은 것이 수산물과도 잘 어울리는 레몬과 허브다. 허브를 넣을 때는 로즈메리나 타임처럼 줄기가 탄탄하고 익혀도 향이 오래가는 것을 고르도록 한다.
굵은 소금에 레몬과 허브를 넣고 잘 섞은 다음 구이바다 전골팬에 가득 깐다. 이때 바닥에 알루미늄 포일을 한 장 깔면 치우기 쉽다. 그 위에 수염과 꼬리에 있는 물총(가열하면 폭발한다), 다리를 손질한 대하를 한 층 올리고 뚜껑을 닫은 다음 불을 켠다. 대하가 분홍색으로 예쁘게 물들 때까지 익히면 완성! 전체적으로 색이 변하면 바로 불을 끄는 것이 좋다. 너무 익으면 순식간에 질겨지는 것이 수산물의 특징이니까.
소금에 넣고 남은 레몬을 숭덩숭덩 썰어서 껍질을 벗긴 대하에 짜서 뿌리고 초장이나 스리라차, 마요네즈 소스를 찍어서 먹으면 캠핑장에서 축제를 열고 있는 기분이 든다. 가장 간단하게 제철 대하를 즐기는 법, 세상 간단하게 신나게 먹을 수 있는 가을 축제 요리다.
▲캠핑 레몬 허브 대하 소금구이
■ 재료 = 굵은 소금 500g, 레몬 1개, 로즈메리 3~4줄기, 대하 10~12마리, 초장 또는 스리라차 소스
■ 만드는 법
1. 레몬은 반으로 잘라서 송송 썬다.
2. 굵은 소금에 레몬 1/2개 분량과 로즈메리를 넣고 잘 섞는다.
3. 구이바다 전골팬에 레몬 허브 소금을 깐다.
4. 수염과 다리, 물총을 제거한 대하를 그 위에 올린다.
5. 뚜껑을 닫고 불에 올려서 대하가 전체적으로 핑크색이 될 때까지 가열한 다음 불에서 내린다.
6. 남은 레몬과 초장 또는 스리라차 소스를 곁들여서 각자 뿌려 먹는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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