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며 즐거웠지…흘려보낸 돈·건강 이젠 그만!
40대 중반인 나는 원래 뚱뚱한 편이었다. 179㎝ 키에 몸무게는 90~95㎏ 사이를 오르내리는 정도. 운동하면 조금 줄고, 술 마시면 조금 느는 몸무게가 100㎏을 넘어서며 급격하게 찌기 시작한 건 이사를 오고부터였다. 이전까지 간신히 나를 지탱하던 건 20㎞ 출퇴근을 자전거로 한다는 것이었는데, 새로 이사 온 아파트는 자전거 도로에서 꽤 떨어져 있어서 자전거 출퇴근이 만만치 않았다. 대중교통이라도 이용했으면 오며 가며 그나마 나았을 텐데,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는 귀찮음을 이기지 못한 나는 이사 온 후 쭉 출퇴근으로 자가용을 선택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생활의 루틴이 건강에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간 것은. 자전거를 안 타니 운동량이 턱없이 적어졌다. 퇴근길 러시아워를 피하려고 게으름을 피웠더니 집에 오는 시간은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 퇴근하고 먹는 저녁은 야식과 술 한 잔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 즐거웠지. 겨울에는 눈 보고, 봄에는 꽃잎 보며, 여름에는 빗소리와 함께 위스키를 마시고, 소주를 마시고, 맥주를 마셔댔다. 안주도 좋았다. 자취를 오래 했고 캠핑도 좋아하는 나는 집에서 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안주들을 잘도 만들어댔고, 체중계는 무서워서 쳐다도 보지 않았다. 뭐 좋을 게 있다고, 봐 봐야 아는 숫자일 텐데….
“상무님, 저랑 단식 안 하실래요?”
그러던 8월의 무덥던 여름날 아침, 전날 마신 맥주가 빠지지 않은 푸석푸석한 얼굴로 화장실 세면대에 멍하니 서서 거울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내 몸을 통과해 저 변기 속으로 사라져 간 맥주가 몇 리터쯤 될까? 나는 저 변기 속에 얼마나 많은 돈을 흘려보내 버렸던 걸까?
그런데 비단 돈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고혈압, 동맥경화, 고지혈증, 지방간…. 나의 경우엔 피부에 염증도 자주 발생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술에서 시작되는 듯한 수많은 성인병을 하나씩 세어보다가 이러다가 죽겠다는 생각으로 화장실을 나섰다. “여보 나 술 끊을 거야!” “얼마나?” “일단 하는 데까지.”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왔다. 회사까지 40㎞ 거리였는데, 그래도 꽤 오래 자전거를 탔던 내 몸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회사에서 팀원들에게 독촉 전화를 세 통 받고, 해가 중천에 뜬 뒤, 왜 늦었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상사의 방에 들렀을 때, 불현듯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상무님, 저랑 단식 안 하실래요?”
나의 상사인 박준호 상무님은 약 10년 전 함께 다이어트를 했던 다이어트 동료였다. 그때 우리는 도시락을 싸서 회사에 다녔는데, 형수님이 싸주신 어린이 식판에 콩 반찬 한 알 한 알과 멸치볶음을 소중히 먹으며 함께 살을 뺐던 경험이 있다.
이번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술을 일단 끊는다. 밥은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위주로. 단 오후 3시에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더 먹지 않는다. 40대, 50대인 우리 두 사람의 다이어트는 살을 빼서 멋진 옷을 입겠다,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다, 이런 낭만적인 이유와는 근원적으로 달랐다. 살기 위해서. 이러다 건강검진 때 뭐라도 하나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자기반성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많은 의사 선생님 유튜버들은 단식 첫 주의 어려움에 대해 말해주었다. 우리의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탄수화물은 중독적이어서 섭취를 줄이면 대번에 대뇌는 밥을 먹으라고 지시한다고 했다. 내 몸의 주인인 내가 살을 빼겠다는데, 대뇌가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첫주는 쉽지 않았다. 일단은 무엇을 먹을까가 중요했다. 우리가 주로 먹은 것은 빵집의 신선 코너에 있는 닭가슴살 샐러드. 간에 기별도 안 가는 풀때기를 먹으며, 다 늙어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자조적인 대화를 나누었지만, 배고픔을 참는 데 동료만큼 소중한 사람은 없었다. 샐러드가 물릴 때쯤엔 비빔밥집에 가서 밥을 한 숟가락만 넣어서 비벼 먹었다. 너무너무 허기질 때면, 밥 대신 계란을 넣은 키토 김밥을 먹고, 그러다 발견한 것은 하와이 음식인 ‘포케’였다. 포케는 샐러드와 비슷한데, 생선을 좋아하는 나로선 연어나 참치회가 들어간 포케가 아주 좋았다.
일주일 고비 넘자 즐거운 신세계
2주 정도 지났을 때쯤이었나. 아내가 참여를 선언했다. 같이 하자고. 단식하면서 혈색도 좋아졌고, 살이 빠지는 걸 보더니 따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단식은 훨씬 더 수월해졌다. 주말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고, 대신 운동을 했다. 아내와 둘이서 데이트 때 먹었던 것은 쌈밥. 나와 아내, 상무님 세 사람의 밥상은 그릭 요거트, 풍성한 야채, 닭가슴살, 연어, 참치, 부챗살 등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중요한 것. 일주일이 힘들지, 재미를 붙이니 단식도 즐거운 일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즐거움을 깨달았고, 술 대신 차를 마시는 것도 알고 보니 즐거운 일이었다. 뭔가 대화가 건강해진 느낌이랄까. 술을 마시지 않으니 아내와 눈살 찌푸릴 일이 없었고, 오늘은 몸무게가 얼마인지 서로 비교하며, 서로 응원하며 사는 건강한 삶도 유흥만큼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아아, 변기에 흘려보낸 돈과 시간과 건강이여. 상무님과 나는 일주일에 하루는 아예 24시간 단식도 스케줄에 넣었다. 하루를 꼬박 굶는다는 게 건강에 나쁜 일일 거라 생각해왔는데 오히려 몸은 개운해지고 컨디션은 좋아졌다. 전문 용어로 ‘자가포식(autophagy)’이라고 하는데, 24시간 이상 단식을 하면 세포 단계에서 몸에 불필요한 노폐물과 오래된 세포를 스스로 잡아먹으면서 노폐물들이 사라지는 효과를 낸다. 그 다음날의 컨디션은 아주 좋았다. 두 달이 지나고 14㎏을 감량한 현재 나의 금주와 단식에 대한 팀원들의 평가는 이렇다. “5년 젊어졌다. 눈이 커졌다”, “턱선이 정리되었다”, “안색은 아직 모르겠으나 표정이 좋아졌다”, “피곤함이 없어졌달까?”
지금 자랑하는 거냐고? 자랑 맞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배 아파하면서 나의 단식에 자극받아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단식과 금주를 실천하면서 힘들었던 것만큼 즐거운 것은 내가 건강해진다는 사실이었다. 도저히 혼자 못 하겠다면 가정의학과나 내과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 요즘은 신경계가 아니라 혈당을 조절해 부작용이 적은 다이어트 약도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다이어트 동료였지 않나 싶다. 혼자서 의지가 꺾이기 전에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건강한 삶에 가까워질 것이다.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낚시든, 악기든, 오토바이든, 세차든, ‘너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무언가 한가지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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