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붕괴에도 불펜 아꼈다면 “이승엽 나가” 안 나왔을까…업셋 뼈아프지만 4위는 최선의 결과다
[OSEN=이후광 기자] 선발이 붕괴된 상황에서 젊은 투수들의 미래를 위해 벌떼야구를 펼치지 않았다면 이승엽 감독을 향한 여론은 달라졌을까. 만일 그래서 김택연, 이병헌, 최지강의 이닝을 줄이고 대신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다면 팬들은 “이승엽 나가”를 외치지 않았을까.
프로야구 두산 이승엽호는 지난 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KT 위즈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에서 무기력한 0-1 패배를 당하며 시리즈 전적 2패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 이와 더불어 2015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도입 이후 최초로 5위팀에게 2경기를 내준 ‘업셋’ 희생양이 됐다.
논란의 상황은 경기 후에 벌어졌다. 일부 두산 팬들이 그라운드에 도열해 인사하는 이승엽 감독과 선수들을 향해 야유를 퍼부은 것. 팬들은 잠실구장 중앙 출입구로 이동해 이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단체행동까지 벌였다. 쉴 새 없이 “이승엽 나가”를 외치며 와일드카드 결정전 업셋패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주동자가 “이승엽 나가”를 선창하면 나머지 팬들이 이를 외치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이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 시절 응원가와 삼성 대표 응원가 ‘엘도라도’를 부르며 이 감독의 삼성 복귀를 외치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꼽자면 이승엽 감독의 젊은 불펜진 혹사 논란을 꼽을 수 있다. 2024시즌 두산 불펜의 평균자책점(4.54), 소화 이닝(600⅓이닝)은 리그 1위인 반면 선발진은 이닝 9위(683⅓이닝), 평균자책점(5.07) 퀄리티스타트(42회) 8위에 그쳤다. 여기에 투수 개인으로 보면 팔꿈치 수술 이력이 있는 1차지명 출신 이병헌이 노경은(SSG 랜더스)과 함께 최다 77경기에 등판했고, 마무리 김택연은 루키 가운데서 최다인 60경기를 책임졌다.
그러나 이승엽 감독이라고 어린 투수들의 어깨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여기에는 외국인투수 듀오의 조기 이탈이라는 엄청난 사정이 있었다. 시작은 총액 150만 달러(19억 원)에 재계약한 에이스 라울 알칸타라의 충격 방출이었다. 부상과 부진을 거듭하면서 12경기 2승 2패 평균자책점 4.76을 남기고 7월 4일 팀을 떠났다. 여기에 2선발 브랜든 와델마저 14경기 7승 4패 평균자책점 3.12로 호투하던 도중 어깨를 다쳐 6월 23일 대구 삼성전을 끝으로 시즌 아웃됐다.
두산은 악재 속에서 어떻게든 5강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체자 물색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최초 6주 이탈 소견을 받은 브랜든의 단기 대체자로 일본 독립리그 출신 시라카와 케이쇼를 데려왔지만, ‘관중 울렁증’에 시달리며 7경기 2승 3패 평균자책점 평균자책점 6.03으로 부진했다. 설상가상으로 팔꿈치 통증이 발생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라울 알칸타라의 대체자 조던 발라조빅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다.
알칸타라 2승, 브랜든 7승, 시라카와 2승, 발라조빅 2승을 거뒀다. 네 선수의 승리 총합이 13승에 불과하다. 두산 곽빈, 삼성 원태인이 혼자서 15승을 해냈는데 말이다.
토종 선발진의 사정 또한 좋지 못했다. 4선발로 낙점된 최승용이 겨울 팔꿈치 피로골절 소견을 받았고, 최원준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사실상 곽빈 1명만이 풀타임 로테이션을 소화했다. 두산의 불펜 과부하가 불가피했던 이유다. 이승엽 감독은 전반기 하위권으로 밀릴 경우 가을야구가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 아래 매 경기 버티기에 나섰고, 선발진이 사실상 붕괴된 상황에서 4위라는 값진 성과를 해냈다. 2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이었다.
그렇다고 이 감독이 어린 투수들을 무자비하게 기용한 것도 아니었다. 리그 불펜투수 이닝 순위에서 이병헌은 65⅓이닝으로 14위, 김택연은 65이닝 15위에 올랐다. 이영하는 62이닝 19위, 홍건희는 59⅓이닝 22위다. 최상위권을 보면 SSG 랜더스 노경은이 83⅔이닝을 책임지며 1위에 올랐고, KT 위즈 김민수가 81⅓이닝 2위, KT 박영현이 76⅔이닝 3위, KT 김민이 76⅓이닝 4위로 뒤를 따랐다. 두산 말고도 혹사된 투수들이 많은데 유독 이 감독의 투수 기용에만 냉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물론 토종 선발진 육성 실패는 이 감독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선수 농사는 엄연한 프런트 소관이다. 외국인 스카우팀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올해와 같은 마운드 운영이 벌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프런트를 향해 책임을 묻는 팬들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이승엽 나가"를 외칠 뿐이다.
그리고 만일 이 감독이 어린 선수들의 어깨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선발진 붕괴에도 순위를 신경 쓰지 않았다면, 두산은 10개 팀 가운데 5개 팀이 올라가는 가을 무대에 초대받지 못했을 것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최초의 업셋패는 뼈아프지만, 그래도 두산 팬들은 올해도 가을야구를 관람했고, 시즌 막바지 두산의 4위를 사수하는 과정을 보며 잠시나마 미러클 두산을 꿈꾸기도 했다. 프로야구에서 가을야구 탈락 만큼 허무한 결과는 없으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승엽 나가”라는 시위가 벌어졌을 것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만 놓고 봐도 사령탑이 퇴진해야 할 정도로 크게 잘못한 부분은 없다. 1차전은 믿었던 15승 다승왕 곽빈이 1이닝 4실점 충격의 조기 강판을 당하며 감독의 모든 경기 플랜이 어그러졌다. 그리고 ‘152억 포수’ 양의지가 쇄골 부상을 당하면서 와일드카드 결정전 최초 18이닝 무득점이라는 굴욕의 기록이 만들어졌다. ‘115억 거포’ 김재환, ‘78억 캡틴’ 양석환 등 고액 연봉자들이 모두 빈타에 시달렸다. 2차전 막바지에는 아예 타격 의욕이 없어보이는 선수들도 몇몇 보였다.
그럼에도 프로야구에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지는 게 맞다. 특히 가을의 강자로 군림했던 두산이기에 이번 와일드카드 결정전 최초의 업셋패는 더욱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이 감독은 오직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가용 전력을 극대화하면서 지난해 5위보다 한 단계 상승한 4위를 해냈다. 올해 김경문, 김태형 등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명장들도 밟지 못한 가을야구를 2년 연속 참가한 이 감독이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2패에 대한 책임이 사퇴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초보 사령탑의 미숙한 운영도 있었고, 때로는 납득하기 힘든 투수 기용으로 전문가들과 팬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끝난 뒤 일부 팬들이 늦은 저녁까지 “이승엽 나가”를 외칠 정도로 팀 운영을 잘못하지는 않았다. 그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국민타자는 2024시즌 또한 두산 팬들에게 가을을 선물하기 위해 있는 자원에서 최선의 야구를 펼쳤다.
/backlight@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