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의 진실…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가 대세라는 왜곡

한겨레 2024. 10. 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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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최근 주류 언론 사이에서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을 악용해 전기자동차 시장을 왜곡하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2024년 7월23일, 미국 뉴저지주 유니언시티에 있는 테슬라 전기차 충전소.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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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유독 많이 쓰인 단어가 있다. ‘캐즘’(Chasm)이다. 캐즘은 혁신적인 상품이 초기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수요가 줄거나 정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어떤 혁신 제품도 일시에 시장을 장악할 수는 없다. 신기술에 거부감이 없는 초기 수용자들은 관심을 갖지만 대부분은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익숙한 기존 제품이 편해서다. 새 기술에 적응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스마트폰 대중화 과정을 돌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를 피할 수는 없다. 당위성을 가진 산업, 제품은 끝내 대중화되고 세상은 바뀐다. 캐즘은 건널 수 있는 협곡이다. 길이 끊겨 건널 수 없는 게 아니란 얘기다.

문제는 자연스러운 흐름인 캐즘을 악용하거나 왜곡하려는 시도에 있다. ‘전기자동차 혁명 갈 길을 잃었다’라거나 ‘전기차보다는 하이브리드가 대세다’ 혹은 ‘전기차 성장 멈춤’과 같은 표현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팩트를 무시하면서 의도적으로 특정 산업의 진보, 더 나아가 인류가 지향해야 할 마땅한 목표를 부정한다.

더딘 성장이지 멈춤은 아님

‘예상보다 더딘 성장’과 ‘진전이 멈춤’은 동의어가 아니다. 전망했던 것보다 느리지만 순수 전기차 판매는 내연기관이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 성장률을 앞지르고 있다. 전기차 혁명은 이미 시작됐고 가속하고 있다. 분기별로 보면 2021년 이래 매년 전기차 판매량은 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9년 이래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포함) 판매는 매년 증가했다. 2024년엔 약 1700만 대의 전기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될 것으로 추산한다. 2023년 1400만 대 팔렸으니 캐즘 국면이지만 성장하고 있다. 이 중 순수 전기차 비중은 약 70% 정도고 숫자로는 약 1천만 대다. 미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기차 판매는 계속 늘고 있으며 2024년 2분기까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 정도 성장했다.

2024년은 분명 전기차 성장이 가장 높은 해는 아닐 것이다. 혁신을 수용하던 초기 사용자는 줄었고 대중들은 여전히 기술에 회의적이며 가격에 민감해 전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는 성장률 둔화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판매량 둔화를 의미하진 않는다. 성장률은 느려지겠지만 절대적인 판매량은 늘어날 것이다.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는 2018년 이래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24년도 같다. 반면 전기차는 성장한다. 2024년 우리들이 너무 많이 본 매체의 헤드라인은 ‘거짓’ 혹은 ‘왜곡’이다. <뉴욕타임스>, <골드만삭스> <인텔리전스 리포트> 등 주류 언론과 연구소들도 예외는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전기차 판매 느려지는 중, 테슬라 판매는 슬럼프를 겪는 중’이란 제목의 2024년 4월15일 기사에서 “올 1분기 전기차 판매량은 2023년 1분기 비해서는 2.3% 성장했지만 전 분기, 즉 2023년 4분기에 비해서는 하락했다”고 썼다. 팩트지만 기사가 진실을 썼다고 할 수 없다. 정확히 쓰려면, 자동차 판매량이 계절적 요인에 의해 달라짐을 적시해야 한다. 4분기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다. 자동차 회사 및 판매사들은 재고를 줄이기 위해 각종 프로모션을 동원해 밀어내기식으로 판매한다. 반면 1분기에는 보통 자동차 판매량이 줄어든다. 살 사람은 다 샀고, 다수는 신형 차를 기다리며 구매를 미루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 판매가 계절적이듯 자동차 역시 같다. 직전 4분기에 비해 1분기 판매량이 감소한 걸 전기차 판매 둔화로 설명하는 건 일종의 왜곡이다.

<골드만삭스> 보고서도 비슷하다. 2024년 5월21일 자 보고서 제목은 ‘전기차 판매가 둔화하는 이유는?’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뉴욕타임스>처럼 2023년 4분기와 2024년 1분기를 비교하면서 그래프까지 친절히 제시했다. 그래프 모양은 당연히 급락하는 형태다. 별생각 없이 보고서를 보면 정말로 전기차 판매량이 급감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눈 밝은 사람이 보면 2023년 1월과 비교한 2024년 1월 판매량은 신기록을 세웠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세계 전기차 산업이 잠시 움츠린 사이 중국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24년 3월20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비야디(BYD) 매장에서 한 남성이 비야디 전기차 옆을 지나가고 있다. REUTERS

2024년 2분기까지 미국 전체 전기차 판매량은 7.3% 증가했다. 이는 전체 자동차 시장의 판매량 증가를 웃도는 수치다. 테슬라를 제외한 전기차 판매량은 2024년 상반기에 전년 대비 33% 늘었다. 대체 얼마나 성장해야 성장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7%, 33% 성장을 ‘멈춤’이라 표현하는 사람들은 성장의 의미를 과대평가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왜곡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모든 혁신엔 저항이 따른다. 내연기관 시대는 100년 이상 지속했다. 하루아침에 전기차 시대로 갈 수 없다. 특히 화석연료와 내연기관 공급망에 연관된 산업, 관련 학계, 패권 기업의 반발은 불가피하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무너지는 걸 반길 리 없다.

중국 전기차 전환 성공의 의미

중국의 경우 2024년 1~5월 판매된 전기차는 전체 자동차의 32%에 달한다.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에 이어 세계 6위의 침투율을 기록했다. 무엇이 중국의 전기차 전환을 성공으로 이끌었을까? 중국이 타국에 비해 기후위기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고 말하는 건 뜬구름 잡는 얘기다. 중국의 전기차 전환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시작했고 성공했다.

중국은 2006년부터 2020년까지 ‘국가중장기과학과 기술발전 규획강요’에 따라 신흥산업을 계획했다. 7개 전략 신흥산업이었는데 이 중 하나가 ‘신에너지 자동차’ 분야였다. 2009년 중국은 이미 최대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을 가진 국가로 성장했지만 자국 자동차 산업은 미약했다. 중국 시장은 폴크스바겐, 도요타, 지엠(GM) 등 기존 자동차 강국 기업들이 주도했다. 중국 정부로서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강국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은 판을 뒤집을 궁리를 했고 그 유일한 방법이 ‘전기차’였다. 중국 정부는 천문학적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전기차 공급망을 구축했다. 전기차 제조는 물론 배터리, 핵심 광물에 이르기까지 전기차 전환에 필요한 모든 것을 수직계열화했다. 무엇보다 중국의 경우엔 내연기관 기득권 세력이 기존 자동차 패권국에 비해 약했다. 게다가 이들의 반발을 단숨에 제어할 강압적 국가권력이 있었다. 그리고 끝내 성공했다.

2024년 9월2일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유럽 최대 자동차업체인 폴크스바겐그룹이 경영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독일 내 공장 폐쇄와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현실화한다면 무려 87년 만에 폴크스바겐의 독일 내 공장이 사라지는 것이다. 1994년 이후 유지해오던 고용안정협약도 종료되면서 2만 명 정도가 해고될 것이란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독일의 자동차 패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징후다.

이유가 뭘까. 언론은 원인은 도외시하고 특정 결과만 강조한다. ‘전기차 전환 축소’에 방점을 두고 보도한다. 하지만 원인은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 집중했다. 이들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의 우위가 영원할 줄 알았다. 자동차 패러다임 전환을 과소평가했다. 반면 중국은 자신들이 따라잡을 수 없었던 내연기관차를 포기하고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 점유율을 높여나갔다. 2023년 마침내 비야디(BYD)는 폴크스바겐을 누르고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중국 전기차 회사들의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폴크스바겐 등 기존 자동차 강자들은 힘을 잃어갔다. 그것이 끝내 폴크스바겐이란 거인이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된 것이다.

미래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생활 공간으로 영역을 넓혀갈 것이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은 필연이다. 이를 위해선 전기전자적 정밀 제어가 필수다. 다시 말해, 미래 자동차는 전기차가 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명분보다 더 중요한 현실적 이유로 패러다임 전환은 불가피하다.

중국을 빼면 한국은 전기차 공급망을 수직계열화한 거의 유일한 국가다. 뛰어난 전기차 플랫폼과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질 높은 배터리 양산 능력을 갖췄다. 관련 소재 산업 역시 타국에 뒤지지 않는다. 핵심 광물 지배력은 부족하지만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북미 및 유럽은 중국 전기차·배터리 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장벽을 높이고 있다. 한국 기업에 가장 위협적인 중국을 타국이 견제해주니 일종의 ‘상황적 독점’이 형성된 것이다.

한국산 내연기관차는 우수한 성능을 지녔지만 브랜드 평판이나 성능에서 독일, 일본의 완성차를 능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점유율도 뒤져 있었다. 전기차는 다르다.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품질은 세계가 인정한다. 플랫폼은 다른 업체보다 최소 2년은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4년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는 폴크스바겐, 도요타보다 더 많은 전기차를 팔고 있다. 캐즘이니 수익성이니 따질 때가 아니다. 많이 팔려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내연기관차에선 넘볼 수 없었던 자동차 패권을 한국이 가져올 최고의 기회가 지금 우리에게 펼쳐지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다. 소음으로 그 길을 막을 때가 아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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