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싸서 나가라" 쫓겨난 과학자들…대거 연구실 밖으로, 왜
[편집자주] 풀뿌리 연구 인력인 학생연구원이 사라진다. 연구인력 양성의 전진기지인 4대 과학기술원조차 '일자리가 없다'며 쫓겨나는 과학자 역시 적지 않다. 과학계를 떠나는 인력 이탈이 심화하면서, 연구 현장에선 우리 과학기술계의 기초 체력 저하와 생태계 황폐화를 우려한다. 연구에만 몰두해도 '먹고 살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정부 정책의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으로 제기되는 대목이다.
올해 과학기술 R&D(연구·개발) 예산 삭감으로 4대 과학기술원(이하 과기원)의 학생연구원 220여명과 박사후연구원 140여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증가세였던 4대 과기원의 국가 R&D 참여 인력이 올해 처음으로 꺾인 것이다. 소속 연구실에서 진행하던 과제가 대폭 삭감되거나 중단된 탓이다.
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GIST(광주과학기술원)·KAIST(한국과학기술원)·UNIST(울산과학기술원)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4대 과기원에서 국가 R&D 과제에 참여하는 학생연구원과 박사후연구원 등 연구 인력이 지난해 대비 올해 크게 줄었다.
GIST의 변동 폭이 가장 크다. R&D 삭감 발생 전인 2023년 GIST에서 국가 R&D 연구과제에 참여하는 인력은 2646명이었지만 올해 2136명으로 19.3% 감소했다. 이 중에서도 학생연구원의 수가 1516명에서 1346명으로 줄며 감소율 11.2%를 기록했다. 박사후연구원은 436명에서 352명으로 줄어 약 19%가 일자리를 잃었다.
UNIST의 학생연구원 수는 지난해 2520명에서 올해 2.1% 줄어든 2467명이 됐다. 박사후연구원의 감소 폭은 이보다 크다. KAIST와 DGIST의 경우 학생연구원 수는 지난해 대비 소폭 늘어났지만 박사후연구원의 수가 각각 5.2%, 6.2%씩 줄었다.
과기정통부가 지난해 10월 "과기원의 자체 재원을 인건비에 최우선 활용하도록 하겠다"며 "4대 과기원의 학생연구원과 박사후연구원 지원 규모는 내년에도 축소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한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학생연구원과 박사후연구원은 연구실에서 실제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는 핵심 연구 인력이다. 학생연구원은 학교 재학생 신분으로, 박사후연구원은 박사를 졸업한 후 연구실에 고용돼 일한다. 4대 과기원의 경우 학교 자체 재원으로 일부 인건비를 보전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고용 안정성은 기본적으로 소속 연구실이 매해 수주하는 R&D 과제비에 달려있다. 과기원 내부에서는 "학생의 휴학, 자퇴라는 변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R&D 예산 삭감으로 인한 과제 규모 축소"라고 지적한다.
4대 과기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과기원이 수주한 과제 대부분이 감액되거나 중단됐다. △KAIST 702개 과제 중 701개 △DGIST 160개 과제 중 152개 △GIST 212개 과제 중 210개 △UNIST 302개 과제 중 300개 등이다. 예산이 70% 이상 감액된 과제도 수십 개에 이른다. 기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교수가 학생연구원을 과제에서 빼거나 박사후연구원의 고용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동아 의원은 "정부는 학생 연구원 등 R&D 연구 참여 인력 축소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실상 멀쩡한 R&D 과제가 축소 또는 중단되면서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 참여 기회가 줄어들었다"며 "연구 생태계에 끼친 피해에 대해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4대 과학기술원(KAIST·UNIST·GIST·DGIST)에서 연구자가 사라지고 있다. 1년 사이 1000명 가까이 연구실을 떠났는데, R&D(연구개발) 예산 삭감의 여파로 그간 몰두하던 연구 과제가 증발한 결과다. 더욱이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이들이 먼저 연구실 밖으로 내쫓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대 과기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이들 기관의 연구인력 총 합계는 1만8341명으로 전년(1만9290명) 대비 4.9%(949명) 감소했다. 이는 학생연구원과 박사후연구원(포닥), 외부인력, 비전임 및 전임 교원 등 모든 그룹의 연구인력을 합친 숫자다.
4대 과기원 모두 전년 대비 연구 인력이 줄었다. GIST에서 가장 많은 인력이 감소(19.3%, 510명)했다. 이어 UNIST가 6.0%(272명) 줄었다. DGIST(1.39%, 20명)와 KAIST(1.38%, 147명)도 소폭 감소했다.
과기원 연구자들이 연구실 밖으로 내쫓긴 이유는 재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4대 과기원의 경우 학교 자체 재원과 더불어 연구실이 수주하는 R&D 과제로 인건비를 충당한다. 정부가 R&D의 비효율을 걷어낸다는 명분으로 사상 초유의 예산 감축을 결정했지만, 그 여파가 연구자들에는 사실상 구조조정으로 작용한 셈이다.
특히 연구자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약한 고리'를 먼저 끊어냈다. 연구실 동료 중에서도 고용 안정성이 낮은 직군이 연구실을 더 많이 떠났다.
4대 과기원의 직군별 연구인력 증감을 살펴보면, 공동연구에 종사하는 '외부인'이 가장 많이 쫓겨난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인은 전년 대비 398명(20.8%) 줄었다. 같은 기간 포닥은 10.1%(144명) 감소했다. 한 과기원 교수는 "포닥은 아무래도 학생보다는 인건비가 많이 나간다. 연봉이 3500만~6000만원 선"이라며 "인건비가 없으면 아무래도 먼저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같은 교원이라도 전임이냐 비전임이냐에 따라 운명이 갈렸다. 비전임 교원은 전년 대비 18.9%(79명) 감소했지만, 전임 교원은 오히려 0.6%(7명) 늘어났다. 1년 사이 학생연구원도 185명(1.4%) 줄었지만, 비교적 감소율은 낮은 편이다. 학생은 교수가 마음대로 내보내기 어렵고, 비교적 인건비 부담도 적은 탓에 구조조정의 대상에서는 그나마 후순위였다는 평가다.
4대 과기원 중 GIST의 연구자가 가장 많이 줄어든 것도 연구인력 구성의 편차 때문이었다. 지난해 기준 3개 그룹(외부인+포닥+비전임교원')이 전체 연구자 중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GIST가 35.7%로 가장 높았다. 3명 중 1명 이상이 구조조정 시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던 셈이다.
UNIST는 28.9%, DGIST 18.4%, KAIST 11.7% 순이었다. 올해 연구인력 감소 폭 순위와 정확히 일치한다. 과기원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자르기 쉬운 사람부터 먼저 자르는 것이 과학기술계라고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변휘 기자 hynews@mt.co.kr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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