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龍이 龍山에 던지는 苦言'
한 차례 빗줄기가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고 지나가면 도심 속 콘크리트 빌딩 사이 도로나 시골 한적한 숲 길 할 것 없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다. 바로 이때다 싶었는지 땅속에서 흙 사이를 느리지만 꾸준한 속도로 헤치고 나온 토룡(土龍)이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다. 작은 뱀 같은 모습인데다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분비하는 미끈거리는 큐우티클층에 익숙치 않은 필자로서는 미안하지만 그들의 즐거운 나들이가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더욱 흉측한 모습은 다음날 햇볕이 내리쬈을 때 미처 땅속으로 파고들질 못하고서 거리 곳곳에 말라붙어 버린 그들의 사체다. 이처럼 고사(枯死)한 토룡(土龍)의 사체를 볼 때마다 필자는 스스로의 생활을 반성하곤 한다. 원래 자리로 돌아갈 때를 생각하지 못한 채 나 자신의 모습을 잃고서 살아 가고 있진않나 하는…
또다시 용산(龍山) 얘기다.
뒤늦게서야 전담 수사팀을 꾸린 검찰이 5개월가량 수사 끝에 내놓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은 결국 관련자 모두에 대한 무혐의로 막을 내렸다. 출장 조사에 총장 패싱, 수사팀 교체, 수심위 파행 등 숱한 논란 속에 검찰의 고뇌 끝에 내려진 예상된 결과였다. 필자가 보기엔 서로가 서로에게 맞물려 있다 보니 어느 누구 하나만 빼낼 수가 없는 형국이었고,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모두 빼주거나 모두 집어넣거나… 이 과정에서 무려 2시간가량 프리젠테이션을 했던 검찰은 "법률가의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굳이 왜 이런 말을 썼을까? 그렇다면 다른 사건에 대해서는 '법률가의 양심'이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인가? 알다가도 모를 수사(修辭)다.
그뿐인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양평 고속도로, 공천 개입 등 영부인을 향한 끝없는 의혹의 향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언론에서는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반찬거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뷔페 만찬'을 펼쳐지고 있다.
이처럼 영부인을 향한 의혹과 우려의 목소리가 사면초가처럼 울려 퍼지는데도 대통령님의 아내 사랑은 지극정성이다. 권력서열을 조롱하는 '영부남' 소리가 들려도 요지부동이다. 이런 가운데 요동치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자며 용산 문을 두드려대는 여당 대표에겐 '많이 컸네~'라는 식의 문전박대로 돌려세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엊그제 용산에서 진행된 한동훈 대표를 뺀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장에선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 모습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이탈표 방지로 읽혀지는 것은 필자만의 편견일까? 저들의 "우리는 하나다"는 복창에 다수 국민은 "우리는 화난다"로 응수하지 않을까? 때를 맞춰 "대인배이고 가장 개혁적인 대통령이시다"라는 한덕수 총리의 워딩까지도 전해졌다. 가히 환상적인 '티키타카'다.
내친김에 의료공백 사태와 관련해 한마디 짚고 가자. 얼마 전 대통령실은 "국민 생명과 직결된 사안에 굴복하면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라며 의료개혁을 의지를 분명히 했는데, 그렇다면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생을 마감하는 국민은 정상적인 나라에서 살고 있나? 과거 정권들이 추진하려던 의료개혁을 눈물을 머금고 중도에서 포기했던 것은 현 정권과 같은 무모할 정도의 결기와 추진력이 없어서였을까? 또 국민의 안위를 염려해서가 아닌, 의사들의 집단 반발이 무서워서였을까?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함'. 국어사전에 나온 '독선(獨善)'이라는 단어에 대한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추석 연휴에 넷플릭스 영화 '무도 실무관'을 관람한 뒤 참모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MZ 세대의 공공의식과 공익을 위한 헌신을 상기시키는 영화"라며 "이런 영화를 젊은 세대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영화를 봤던 필자로서도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무도 실무관'을 추천하는 윤 대통령께 필자도 한마디 추천하고 싶은 단어가 떠오른다. '무도 실무관'에 이어 '민심 실무관'이 되실 수는 없는가?
비가 내리자 밖으로 나와 산책을 즐기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지 못해 고사(枯死)한 토룡이 용산에 던지는 고언(苦言)에 주목하시라. 대통령이라는 권좌의 임기 반환점을 돌고 있는 시점에서 정치권의 친윤계가 감싸주는 큐우티클층이, 그리고 검찰이 쳐주는 쉴드의 촉촉함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단언컨대, 내리쬐는 햇볕없이 계속해서 빗줄기가 찾아드는 날씨란 지구가 멸망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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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CBS 이균형 기자 balancele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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