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는 사주·타로에 묻는다…“나는 누구인가요?”[커버스토리]
‘그놈 속마음은 대체 뭐였을까.’ 2020년 겨울,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날이었다. 김현지씨(28)는 멍하니 휴대전화 속 유튜브 영상을 바라봤다. 화면에는 네 장의 타로가 깔려 있었다. 마음속으로 카드 한 장을 고르면, 해당하는 운세를 풀이해주는 ‘제너럴 리딩’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됐다. “하루에 몇 시간씩 그것만 쳐다봤어요. 너무 답답하니까….”
현지씨는 그렇게 타로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영상만 보던 그는, 질문 하나당 1만원씩 받고 답해주는 타로 카페를 찾아갔고, 순식간에 10만원을 쓰고 나왔으며, 그로부터 1년이 지났을 즈음엔 역술인에게 과외까지 받고 직접 타로점을 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타로 덕에 친구를 많이 사귀었어요. 처음 보는 사이에서 타로점을 봐주면 ‘아이스브레이킹’ 효과가 있거든요. 직장에 입사했을 때 동료들을 둘러앉혀 놓고 카드를 펼치기도 했어요. 가지고 있는 카드만 스무 개가 넘는데… 지금까지 (카드를 사는 데) 50만원은 넘게 썼네요.” 지난달 27일, 현지씨가 자취방 서랍장을 빼곡히 채운 타로 카드를 보여주며 말했다.
현지씨는 일상 곳곳에서 타로를 활용한다. 연애나 취업, 이직 등 삶의 중요한 기로에서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지만 ‘오늘 뭐 먹지’처럼 소소한 결정을 두고도 카드를 펼친다. “마라탕을 먹을까 마라샹궈를 먹을까, 닌텐도 게임기를 사면 잘 쓸까 아닐까, 이런 고민이 들 때도 타로점을 봐요.” 도마뱀을 키우는 그는 반려동물 속마음을 알아보는 ‘펫타로’를 통해 도마뱀에게 먹일 사료를 정하곤 한다.
사람들이 운세 산업에 반응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가 사주·타로를 대하는 방식이 심상치 않다. 인스타그램에 ‘사주팔자’를 검색하면 유형에 따른 성격과 성향을 분석해주는 콘텐츠가 쏟아지고, 사주·타로를 배울 수 있는 인기 유튜브 영상 조회 수는 적게는 10만회에서 많게는 100만회에 이른다. SBS <신들린 연애>는 무속인·역술인이 연애프로그램까지 진출한 사례다. 운세를 점치는 일은 전보다 더 ‘일상’이 됐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10일부터 27일까지 사주·타로에 빠진 2030과 운세 상담사 등 10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대면·전화·메신저로 진행됐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연애·결혼·직장·재산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면서도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걸 넘어 ‘나 자신’에 대한 통찰을 얻고 싶어 했다. 가끔은 중대하고, 종종 사소한 질문을 하는 이들이 끝내 묻고자 하는 건 하나로 수렴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자기 탐구’ 시대…사주풀이도 달라진다
배하진씨(28)는 중학생 때 처음 사주카페에 갔다. 친구의 제안에 이끌린 걸음이었다. 사주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묻지도 않은 남자 얘기만 너무 많이 들었거든요.” 어린 하진씨를 앞에 둔 역술인은 ‘남자를 무시하는 사주’ ‘애 같은 남자 만날 사주’ 등의 말을 쏟아냈다. 하진씨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고 했다. 다른 풀이가 궁금했다. 성인이 돼선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사주를 보러 다녔다.
돌이켜 보면 정말 궁금한 건 ‘결혼운’도 ‘취업운’도 아니었다. 나는 어떤 성향을 지녔나, 나는 어떤 기질을 타고났나, 나의 단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하진씨는 이런 점들을 하나하나 짚어주는 역술인을 만났을 때 비로소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에는 마음이 들떴다. “대학 졸업 전, 독일로 유학을 하고 싶었을 때였어요. 한국이 너무 싫었거든요. 사주에 역마살이 있어서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꿈꿨던 게 그저 망상은 아닐 수 있겠구나.’ 마음에 드는 사주풀이를 만나면 잠시나마 살아가는 원동력이 됐어요. 실제로 독일에 가진 못했지만요.”
이민영씨(30·가명)가 사주를 접한 건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였다. 채용 시장이 얼어붙어 앞날이 불확실한 때였다. 진로 고민이 있어 사주를 봤으나 의외로 ‘언제 합격할까요?’ 같은 질문을 하진 않았다. “채용에서 탈락했을 때, 어떤 일이 내 뜻대로 안 됐을 때, 왜 운이 없었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서 사주를 봤어요. 다음 스텝을 어떻게 밟아나가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됐어요.”
민영씨는 ‘요즘 사주풀이’에 과거와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전에는 ‘자식복 있으니까 애를 낳으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출산은 원하지 않는 여성들도 많잖아요. 설령 사주에 ‘자식복’이 읽힌다고 하더라도, 출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엔 ‘반려동물’이나 ‘창작물’로 해석을 할 수 있더라고요.” 비혼·비출산 등 다양한 삶의 형태가 사주 트렌드에도 반영됐다는 것이다.
2030 여성들 수요에 맞는 ‘성평등한 사주풀이’도 인기다. 2020년 저서 <내 팔자가 세다고요?>를 출간한 페미니스트 사주상담가 릴리스(활동명)는 지난달 1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여성이 본인 인생을 알고 싶어서 갔는데 남편 얘기만 하는 게 혼인율이 낮은 나라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며 “시대의 변화를 충분히 따라올 정도는 아니지만, 역술인들의 사주풀이도 조금씩 달라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퀴어 사주풀이’를 내세운 홍보 게시물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퀴어 당사자인 하진씨는 “퀴어 사주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 없이 ‘남편’ ‘남자친구’ 등 성별 이분법을 전제로 하는 표현을 듣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사주는 단순히 ‘취업운’이나 ‘결혼운’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기질, 성향을 중심으로 풀이하는 게 특징인 것 같아요. 사주를 보는 건 ‘나’의 경험에 의미와 서사를 부여하기 위해서잖아요.”
■“그 사람은 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손님이 오면 빨리 체형을 보셔야 해요. ‘수(水)형’은 대체로 둥글고, ‘금(金)형’은 세련된 편인데….”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역술학원에서는 ‘관상 수업’이 한창이었다. 지난 8월 말 개강한 이 수업에는 열다섯 명 남짓 수강생들이 모여 있었다. 연령대는 다양했다. 정준일씨(30·가명)는 반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인문학 계열로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었던 준일씨는 ‘정신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 사주명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개업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을 갖추는 게 목표다.
준일씨는 MZ세대가 사주·타로에 빠지게 된 배경에는 ‘공교육 문제’가 있다고 본다. “(10대 때) 교육 현장에서 단 한 번도 ‘나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할 기회가 없었어요. 정체성이라는 건, 스스로 고민도 해보고 나와 남의 차이를 인지하면서 생기는 거잖아요. 어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어요. 2030이 MBTI에 열광한 것도 비슷한 맥락 아니었을까요.”
준일씨는 2030세대를 두고 “박탈된 세대”라고 표현했다. “우리 세대의 가장 큰 상실은 자기 자신인 것 같아요. 이전부터 ‘88만원 세대’니, ‘n포 세대’니, 청년들을 부르는 말들이 많았잖아요. 코로나19를 겪으면서는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잃어버린 것 같아요.”
5년째 타로 상담을 하는 마일드스톤타로(활동명)는 사주·타로 흥행 이면에서 젊은 세대가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유독 ‘인간관계’에 관해서 답을 얻고 싶어해요. ‘회사 부장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 친구는 대체 저한테 왜 그러는 걸까요?’ 같은 질문이 많아요. 타인 자체가 궁금한 마음도 있겠지만 남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겉으로 비치는 나는 어떤 모습인지 신경 쓰는 거죠.”
그는 “SNS로 자신을 노출하고 SNS로 타인에 대한 정보도 알아가는 시대인데, 당연히 사진과 동영상만으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알기 어렵지 않겠나”라면서 “가끔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봐도 될 만한 질문을 들고 상담하러 온다”고 말했다.
“2년간 거의 매일 짝사랑하는 상대 마음을 물어보러 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마치 매일 몸무게를 재듯이요(웃음). ‘오늘 사표를 내면 상사가 내일까진 일을 시킬까요?’ 이런 걸 묻기도 하고요. 스스로 판단 내리는 걸 너무 주저하게 된 건 아닐까요. 타로 상담이 고민이나 궁금증을 해결하는 수단이면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내비게이션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하진씨는 “사주·타로는 일종의 ‘콘텐츠’가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회사 점심시간에도 아무렇지 않게 사주 봤던 얘기를 하잖아요. 방송에선 다큐 소재였던 게 어느새 예능 소재가 됐고요. 사주는 자신을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개인이 자기 삶을 해석하는 데 잠시나마 ‘도움’을 받는 정도 아닐까요. 결국 자기 이야기는, 자기가 써나가는 게 맞겠지만요.”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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