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재개봉 늘고, MZ 겨냥 영화도 봇물…극장가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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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10월 극장가에서 영화 마니아들이 기다렸던 작품은 의외로 ‘우나기’이다. 일본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품이다. 1997년 영화이고 한국에서는 1999년 5월에 개봉했었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당시 초기 개봉작이었다. 이런 영화가 25년만에 재개봉 됐다. ‘우나기’는 영화 골수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 관객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이다. 이제 5,60대가 된 과거의 시네마 키드(이창동·박찬욱·봉준호 등 1990년대 시작된 일명 ‘뉴 코리안 시네마’ 시대의 영화 붐 세대)들도 이 영화를 보러 갈 태세들이다. ‘우나기’의 첫 장면을 잊을 수 없어 하기 때문이다.
여명의 어둑한 길을 자전거 하나가 힘겹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저기 저 끝에 불 빛이 보이고 카메라는 먼 거리에서 자전거 탄 남자의 등을 잡다가 이윽고 그 등 뒤까지 따라 붙는다. 헉헉대는 남자의 숨소리가 들린다. 결국 자전거가 도착한 곳은 허름한 시골 파출소. 남자가 파출소 안에 들어가자 안에 있던 순경들의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떠오른다. 카메라가 서서히 남자의 앞으로 돌아 나온다.
이런 추세의 재개봉작이 요즘 부지기수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1995)이 그렇고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세가지 색 블루, 화이트, 레드’ 시리즈(1994)도 그렇다. ‘타인의 삶’(2006) ‘비긴 어게인’(2014) 등은 그리 오래된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극장가의 ‘올드&뉴’가 갑작스러운 문화로 정착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재개봉 영화가 늘고 있는 절대적 이유는 안타까운 현실 탓이기도 하다. 외화 수입사들이 새 작품을 들여 오는 데 있어 현재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가 갖고 있던 영화들의 판권이 소멸 직전이거나 해당 작품의 리마스터링 버전이 나왔기 때문이다. 마케팅 비용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재개봉인 경우 들어 오는 관객들 머릿수가 모두 원천 수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극장으로서도 다양한 예술영화를 일정한 할당량으로 채워야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이미 검증된 작품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극장가의 예술영화 재개봉 트렌드의 시작은 이렇게 어두운 현실 탓이긴 하나, 막상 이 경향성이 대두되면서 의외의 반응을 얻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 관객들이 힘을 보태기 시작한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1만5000명의 관객을 모았다. ‘지루한’ 예술성으로 악명 높은 타르코프스키 영화 치고 1만5000명은 상당한 흥행수치이다.
중국의 10대 로맨스범죄물 ‘소년시절의 너’가 2020년에 개봉된 후 2021년에 한번, 2024년 6월에 또 한 번, 이번 8월에 다시 한번 식으로 개봉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MZ세대 공략 차원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영화 ‘빅토리’는 완성도와 입소문에 비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일단 50만 관객을 넘겼다. 아마 이후의 VOD 수익이나 OTT 조회수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오히려 이런 부가 윈도우 플랫폼에서 역주행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쨌든 MZ 관객들의 기본이 탄탄함을 입증한 사례의 영화들이다.
극장가에 언제부턴가 애니메이션이 잔뜩 걸려 있는 것 역시 멀티플렉스의 생존전략이 현재 특정 세대들을 세분해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명탐정 코난 : 시한장치의 마천루’ ‘브레드 이발소 : 빵 스타의 탄생’ ‘극장판 엉덩이 탐정 : 안녕, 나의 영원한 친구’ ‘사랑의 하츄핑’ 등등은 성인 관객들에겐 실로 ‘듣도 보도 못한’ 제목들이며 내용들이다. 12세 이하 어린이와 유아들을 겨냥한 이런 작품들은 이제 극장가에서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극장가의 뉴 노멀 시대가 정착되고 있다. 종종 엉망진창으로 보이지만 자본주의는 상당 부분 자동조절능력을 선보이고, 그것이야 말로 체제와 사회를 지속시키는 동력이 된다. 국내 영화계는 지난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거의 해체 수준까지에 도달했던 상황이었다. 이제야 그 후유증을 서서히 극복하고 있으며 아예 이 참에 새 판을 짜고 있는 것 같다. 대기업 극장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언뜻 보면 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산업 전체의 물적 토대를 풍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약이 될 수도 있다. 대기업 자본력을 영화계가 어떻게 순기능화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인생이나 극장이나 영화나 늘 그렇지만 어떻게 살고, 어떻게 벌며, 어떻게 잃느냐가 중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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