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재개봉 늘고, MZ 겨냥 영화도 봇물…극장가의 진화

2024. 10. 5. 00:4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10월 극장가에서 영화 마니아들이 기다렸던 작품은 의외로 ‘우나기’이다. 일본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품이다. 1997년 영화이고 한국에서는 1999년 5월에 개봉했었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당시 초기 개봉작이었다. 이런 영화가 25년만에 재개봉 됐다. ‘우나기’는 영화 골수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 관객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이다. 이제 5,60대가 된 과거의 시네마 키드(이창동·박찬욱·봉준호 등 1990년대 시작된 일명 ‘뉴 코리안 시네마’ 시대의 영화 붐 세대)들도 이 영화를 보러 갈 태세들이다. ‘우나기’의 첫 장면을 잊을 수 없어 하기 때문이다.

여명의 어둑한 길을 자전거 하나가 힘겹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저기 저 끝에 불 빛이 보이고 카메라는 먼 거리에서 자전거 탄 남자의 등을 잡다가 이윽고 그 등 뒤까지 따라 붙는다. 헉헉대는 남자의 숨소리가 들린다. 결국 자전거가 도착한 곳은 허름한 시골 파출소. 남자가 파출소 안에 들어가자 안에 있던 순경들의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떠오른다. 카메라가 서서히 남자의 앞으로 돌아 나온다.

극장가 ‘올드&뉴’, 이젠 새 문화로 정착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 [사진 각 제작사]
새로운 관객들을 위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이 처참하고 놀라운 오프닝 씬을 더 이상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영화 ‘우나기’는 기억에서 지우기 힘든 작품이다. 90년대 후반의 일본사회가 무엇에 지쳐 했는지, 이른바 거품경제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다들 무엇때문에 그렇게들 힘들어 했는지를 보여 준 작품이다. 기이하게도 이 영화는 25년만에 소환돼 지금의 우리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혼란에 대해 넌지시 경고하는 모양새가 됐다. 신세대 관객들이 전혀 낯설지 않게, 새로운 영화로 볼 수 있는 재개봉작이다. 신작 개봉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런 추세의 재개봉작이 요즘 부지기수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1995)이 그렇고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세가지 색 블루, 화이트, 레드’ 시리즈(1994)도 그렇다. ‘타인의 삶’(2006) ‘비긴 어게인’(2014) 등은 그리 오래된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극장가의 ‘올드&뉴’가 갑작스러운 문화로 정착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재개봉 영화가 늘고 있는 절대적 이유는 안타까운 현실 탓이기도 하다. 외화 수입사들이 새 작품을 들여 오는 데 있어 현재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가 갖고 있던 영화들의 판권이 소멸 직전이거나 해당 작품의 리마스터링 버전이 나왔기 때문이다. 마케팅 비용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재개봉인 경우 들어 오는 관객들 머릿수가 모두 원천 수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극장으로서도 다양한 예술영화를 일정한 할당량으로 채워야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이미 검증된 작품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극장가의 예술영화 재개봉 트렌드의 시작은 이렇게 어두운 현실 탓이긴 하나, 막상 이 경향성이 대두되면서 의외의 반응을 얻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 관객들이 힘을 보태기 시작한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1만5000명의 관객을 모았다. ‘지루한’ 예술성으로 악명 높은 타르코프스키 영화 치고 1만5000명은 상당한 흥행수치이다.

임영웅 콘서트 실황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은 팬들. [사진 각 제작사]
극장가의 뉴 노멀 시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략 전술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임영웅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이다. 공연실황 영화이다. 지난 8월말 개봉해 2일 현재 30만 9227명을 기록중이다. 전국 CGV 아이맥스관이나 스크린X관에서만 개봉했다. 스크린X와 4DX의 기술력(공연의 입체성과 사운드)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티켓 가격이 하나는 3만5000원이고 하나는 3만2000원으로 일반 영화에 비해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심지어 이들 티켓은 모두 할인 적용을 받지 못한다. 관객수 별로 평균 3만3000원을 곱한 가격의 상당 부분(부율 적용은 대체로 5:5이지만 이 영화의 경우 임영웅 측이 더 많은 비율을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고스란히 극장 수익으로 남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극장 측으로서는 순수 영화 작품을 외면하고 있다는 일부 비난에도 불구하고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CGV 본사의 황재현 전략기획담당은 “앞으로도 4DX나 스크린X 기술을 통해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콘텐트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유의 영화, 아니 이런 유의 콘텐트가 극장가에 더 나올 가능성이 높으며 어쩌면 공연실황 작품의 경우 외국의 록 밴드가 더 많고, 클래식 공연도 이에 해당이 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런 콘텐트야 말로 OTT와 극장이 차별화 할 수 있는 효능감이 뛰어난 우회적 전략일 수 있다. ‘임영웅 공연 영화’가 새로운 극장 생존 전략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는 이유이다.
김고은·노상현 주연의 ‘대도시의 사랑법’. [사진 각 제작사]
트로트 팬덤을 동원하는 노선 외에도 극장가는 MZ세대 영화들의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대표적인 MZ의, MZ를 위한, MZ에 의한 영화이다. 하지만 저예산 상업영화여서인지 6만 명 정도의 관객을 모으는데 그치고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도 주목받고 있다. 퀴어 소재를 MZ세대 로맨스물로 바꾸면서 관객몰이를 기대하고 있다. 김고은과 노상현이 주연을 맡았는데, 김고은의 팬덤이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할 계기가 될 것 같다.

중국의 10대 로맨스범죄물 ‘소년시절의 너’가 2020년에 개봉된 후 2021년에 한번, 2024년 6월에 또 한 번, 이번 8월에 다시 한번 식으로 개봉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MZ세대 공략 차원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영화 ‘빅토리’는 완성도와 입소문에 비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일단 50만 관객을 넘겼다. 아마 이후의 VOD 수익이나 OTT 조회수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오히려 이런 부가 윈도우 플랫폼에서 역주행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쨌든 MZ 관객들의 기본이 탄탄함을 입증한 사례의 영화들이다.

극장가에 언제부턴가 애니메이션이 잔뜩 걸려 있는 것 역시 멀티플렉스의 생존전략이 현재 특정 세대들을 세분해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명탐정 코난 : 시한장치의 마천루’ ‘브레드 이발소 : 빵 스타의 탄생’ ‘극장판 엉덩이 탐정 : 안녕, 나의 영원한 친구’ ‘사랑의 하츄핑’ 등등은 성인 관객들에겐 실로 ‘듣도 보도 못한’ 제목들이며 내용들이다. 12세 이하 어린이와 유아들을 겨냥한 이런 작품들은 이제 극장가에서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대기업 극장, 영화산업 키우는 순기능도
최근 관객 2만 명을 넘긴 독립영화 ‘장손’. [사진 각 제작사]
독립영화들이 틈새에서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도 요즘 극장가의 새로운 트렌드이자 개벽과도 같은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세 편의 독립영화가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장손’ ‘해야 할 일’ 그리고 ‘딸에 대하여’ 등이다. 멀티플렉스 한 구석, 즉 50~100석 내외의 예술독립영화 전용관에서 이들 영화들은 새로운 세대와 다른 유형의 관객들, 신세대 마니아 층들을 모아 가고 있는 중이다. ‘장손’은 2만을 넘겼고 ‘딸에 대하여’도 2만 가까이 모은 상태다. 언뜻 미미해 보이지만 이 영화들이 결국 대기업 극장의 주요 수입원이 될 감독, 배우들의 양성소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극장들이 현재 주요 상영 전략의 궤도에 올려 놓고 있는 상태다. 분명 긍적적인 신호이자 대기업 자본의 순기능으로 평가된다.

극장가의 뉴 노멀 시대가 정착되고 있다. 종종 엉망진창으로 보이지만 자본주의는 상당 부분 자동조절능력을 선보이고, 그것이야 말로 체제와 사회를 지속시키는 동력이 된다. 국내 영화계는 지난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거의 해체 수준까지에 도달했던 상황이었다. 이제야 그 후유증을 서서히 극복하고 있으며 아예 이 참에 새 판을 짜고 있는 것 같다. 대기업 극장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언뜻 보면 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산업 전체의 물적 토대를 풍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약이 될 수도 있다. 대기업 자본력을 영화계가 어떻게 순기능화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인생이나 극장이나 영화나 늘 그렇지만 어떻게 살고, 어떻게 벌며, 어떻게 잃느냐가 중요한 법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