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소 팔러 가는 길

2024. 10. 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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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팔러 가는 길, 전북 임실, 1977년 ⓒ김녕만
산은 높이를 원하고 물은 낮은 곳을 향한다. 들을 적시고 산모퉁이를 돌아 다른 곳에서 흘러온 물줄기를 만나면 서로 얼싸안고 정답게 흘러간다. 새벽녘에 물안개 피우며 서늘하게 깨어났다가 어스름한 저녁이면 슬그머니 어둠 속으로 저문다. 대낮에는 툭하면 동네 개구쟁이들이 몰려들어 첨벙대는 소란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로 눈부시게 빛난다. 지금 이 냇물은 서럽도록 아름다운 강이라 불리는 섬진강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굽이굽이 사람들의 사연이 함께 흘러서 서럽도록 아름다운 것일까.

어여쁜 강변 마을이 많은 임실에서 아침 일찍 소를 앞세워 내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았다. 짐을 짊어지지 않은 몸 가벼운 소를 보니 마을 건너편 우시장에 소 팔러 가는 길인 모양이다. 앞장서서 소의 고삐를 잡은 아이는 송아지일 때부터 정성껏 꼴 베고 여물 먹여 키운 정 때문에 굳이 아버지를 따라나섰을 것이다. 다시 소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테니 오늘은 정든 소와 이별하는 날이다.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소를 팔 때는 대개 집안에 혼사가 있거나 아니면 논 한 마지기를 더 장만하려는 아버지의 계획이 있을 때이다. 오늘은 이웃집 아저씨도 소를 팔러 함께 길을 나섰다. 그 뒤로 소걸음에 맞추려 자전거에서 내려서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까지, 다리 위 행렬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예전에는 여름 홍수에 섶다리가 떠내려가면 수확이 끝난 가을에 마을 사람들이 다리를 새로 놓는 수고를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했다. 물이 얕은 곳에는 징검다리가 있어서 사람은 징검다리로 건너지만 소는 물속을 철벅거리며 건너기도 했다. 점차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면서 그런 목가적인 풍경은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동시에 해마다 다리를 새로 놓아야 하는 불편함도 사라졌다. 그러므로 이제 섶다리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일은 늘 강물처럼 앞으로 흘러갈 뿐이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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