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조선반도 말고 한반도로 써달라”
박철희 주일 한국 대사가 최근 일본의 한 언론사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론 기사를 쓸 때 조선반도(朝鮮半島)가 아닌 한반도(韓半島)라고 표현해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통상 한국의 신임 대사는 부임한 이후에 일본의 주요 신문사·방송국 대표와 면담을 갖는 게 관례다. 형식적인 인사 자리인데, 이날 박 대사의 발언은 일본 언론사 입장에선 ‘예상치 못한 화제’였다. 추정컨대 한국어를 못하는 일본 언론사 사장은 ‘조선반도를 조선반도라고 쓰지 말라니, 대체 무슨 얘기인지’라며 갸우뚱했을 것이다.
일본은 모든 언론이 한반도를 ‘조선반도(초센한토)’라고 쓰며, 당연히 일본인들은 한반도란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 일본 언론사 사장은 본인이 잘 모르는 주제가 나오자 즉답 없이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사석에서 박 대사에게 물으니, “일본은 한국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이니, 당연히 한국식(式) 표기인 ‘한반도’라고 써주는 게 맞지 않느냐”며 “무엇인가를 바꾸는 데 까다로운 일본이니 당장은 어렵겠지만, 대사가 말을 꺼내 놓았으니 적어도 내부적으로 공부는 할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의 영어 표기는 예전부터 ‘코리안 페닌슐라(Korean Peninsula)’였다. ‘반도(半島)’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이 ‘거의 섬’ ‘절반이 섬’이란 의미로 번역해서 쓴 일본식 한자어다. 우리는 스스로 조선이나 삼한으로 불렀지만, ‘조선반도’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조선이란 나라가 있는 땅’을 조선반도라고 지칭한 일본은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표현을 바꾸지 않고 있다. 한반도란 명칭은 대한제국이 탄생하면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작사한 ‘한반도가’에선 “동해에 돌출한 나의 한반도야, 너는 나의 조상 나라이니, 나의 사랑함이 오직 너뿐일세 한반도야”라고 노래했다.
해방 후 대한민국 헌법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고 했다. 우리의 공식 명칭은 한반도다. ‘조선인민공화국’을 우리는 ‘북한’이라고 지칭한다. 북한은 이 땅을 여전히 ‘조선반도’라고 부르며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지칭한다. 북한의 우방인 중국은 북한식 표현인 조선반도(차오셴반다오)를 쓴다. 반도(반다오)라고만 해도 조선반도라는 의미로 통한다.
국가와 영토의 이름은 때론 주권이며 이념이기도 하다. 독도를 끝까지 ‘다케시마(竹島)’라고, 동해를 ‘일본해’라고 주장하는 일본도 아마도 그런 이유이지 않겠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조선인(조센진)’이란 표현을 계속 쓰다가, 그 표현이 ‘다른 민족을 차별해온 본인들의 치부’라는 생각이 들자 조용히 ‘한국인(간코쿠진)’으로 바꿨다. 일본이 북한을 ‘기타초센’으로 부르는 건 한국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이 지배하는 땅의 이름은 한국 헌법의 명칭을 따라주는 게 ‘같은 가치를 공유한 국가’로서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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